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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참파노 Mar 18. 2022

불놀이

폭력의 대화

5살 아이는 불을 좋아했다. 그렇게 불이 좋을 수 없었다. 가끔 쓰레기를 태우는 아버지를 보고 있노라면 타오르는 불이 주는 따스함이 마음까지 느껴졌다. 1985년의 그해의 기억이다.  아이의 가족은 집이 없었다. 대신 가족들이 같이 생활하는 단칸방이 있었다. 아이의 눈에는 그 단칸방은 참 넓었다. 운동장처럼 여겨졌으니 말이다. 가족들이 모두 누워도 한 사람이 더 누울 만큼의 공간이 남았다. 그렇게 그 단칸방은 아이에게는 크고 넓었다. 부모들이 돈을 벌기 위해 오랜 시간 밖으로 나가 있으면 그 넓은 공간은 아이의 독차지가 되곤 했다. 햇볕이 창문을 통해 그 방안을 가득 채웠다. 아이는 그 공간에서 그 햇볕을 온몸으로 맞이했다. 아이가 불을 좋아하고 불이 주는 따스함을 좋아한 이유는 아이의 마음이 언제나 추웠기 때문이었다. 부모가 돈을 벌기 위해 밖으로 나가 있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그렇게 혼자만의 시간이 길수록... 아이는 스스로와 대화했고 스스로와 대화할수록 마음은 추웠다.

 

아버지가 아들에게 대화하는 방법의 대부분은 폭력이었다. 몸을 제대로 가누지 못하고 밥을 먹다가 숟가락을 떨어뜨려도 폭력의 대화였고 아버지의 의견에 불만족을 보여도 폭력이었다. 아버지에게 5살 아이의 애교 어린 잔꾀도 폭력이라는 대답이 돌아왔다. 그렇게 아이의 마음은 추울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그렇게 아이의 단칸방이라는 공간은 아이에게 춥고 추웠다.

 

 어느 날이었다. 옆집의 아이가 자랑을 하던 말이 기억이 났다. 자기는 아버지와 함께 텐트를 가지고 여행을 다녀왔고 아버지가 피워주는 모닥불을 보며 캠프파이어를 했노라고 말이다. 아이는 그날 처음 알았다. 모닥불놀이가 캠프파이어라는 것을 말이다. 왜인지는 모르지만 아이는 옆집의 아이가 부러웠고 아버지가 피워주는 불이 참 부러웠다. 그때 아이의 마음속에서 작은 소망이 샘솟았다. 아이 자신도 그런 따스함을 자신의 단칸방 안에서 누려보리라고 말이다. 아이는 자신의 단칸방으로 따뜻하게 밝히고 싶었다. 아이는 동네 이곳저곳을 돌며 신문지며 종이조각을 주워 모으기 시작했다. 그 종이들이 가슴에 풍성하게 모였을 무렵, 단칸방으로 들어갔다. 아이는 돌멩이를 동그랗게 놓았고 그 안에 종이들을 찢어 차곡차곡 쌓았다. 하얀 종이조각들이 수북이 쌓였을 무렵 아이는 라이터를 켜서 종이에 붙였다. 이내 종이는 벌건 불을 내며 타들어갔고 그 온기가 아이의 얼굴에 전해졌다. 잠깐이었지만 분명히 그 방안에 온기를 전했고 자신의 마음에도 따스한 온기를 전했다. 아이는 꽤나 흡족했고 만족스러웠다. 그렇지만 타버린 재와 돌들을 치우고 나니 검게 그을린 장판이 보였다. 검게 그을린 장판처럼 아이의 마음이 검게 그을리기 시작하며 두려움이 찾아들었다.

 

혼자만의 공간에서 아버지가 돌아오기까지 아이는 두려움에 떨었다. 그을린 장판을 보며 아이의 아버지는 폭력의 대화를  것이 분명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예상은 전혀 빗나가지 않았다. 그을린 방을 보며 아버지는 아이를 집어던졌다. 가끔 TV에서 보던 프로레슬러들이 하는 행동을 아버지는 아이에게 했다. 높은 곳에서 떨어질 적에 아이는 바람을 가르고 공중을 가르는 기분을 느꼈다. 두려움 가운데서 느껴지는  기분이  오묘했다. 아버지는 발길로 아이를 질렀으며 뺨을 여러 차례 후려쳤다. 아이는 숨이 막혔고 극한의 공포를 느꼈다. 말을 하고 싶었지만 겁에 질려 아무 말도 나오지 않았다. 그냥 폭력의 대화를 몸으로 고스란히 받아들이는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열화와 같은 폭력의 대화가 지나가고 죄책감을 느끼기 시작했던 아버지는 아이에게 물었다.

 


"왜 불장난을 했어? “

 

아이는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숨이 넘어갈 듯 울먹일 뿐이었다.

 

“왜 불장난을 했냐고?”

 

마음에 없는 온화함을 아버지는 쥐어짜 내며 물었다.

 

아이는 아버지의 그 말에 긴장이 풀려버리며 목 놓아 울었다. 긴장이 풀린 아이는 이제는 속마음을 말할 수 있겠다 싶어 용기 내서 더듬더듬 말하기 시작했다.

 

“따뜻하고 싶었어요... 우리 집도... 내 마음도...”

 

1985년, 아이의 기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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