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조(법원) 민사에 관하여 법률에 규정이 없으면 관습법에 의하고 관습법이 없으면 조리에 의한다.
처음부터 묘한 문장이 나옵니다.
본론부터 말씀드리면, 민법 제1조는 민사에 관하여 민법의 법원으로 인정되는 범위와 그들 간의 적용순위를 정하고 있습니다.
"민사"란 무엇일까요? 여기서 민사(民事)란, 한자에서 알 수 있듯이 사람들 간의 상호 생활 관계를 말합니다.
예를 들어 보겠습니다.
만약 철수가 영희에게 돈을 빌려주었는데, 영희가 돈을 갚지 않으면 어떻게 될까요? 철수는 치를 떨며 돈을 받아내려고 할 것입니다. 그런데 철수는 야만인이 아닙니다. 따라서 영희의 집 대문을 부수고 들어가서 돈을 가지고 나오기는 싫습니다. 그럼 철수는 어떤 절차와 행위를 통해서 돈을 받아야 할까요?
제1조는 이러한 철수의 고민에 무엇부터 시작할지를 던져 주고 있습니다.
"법률에 규정이 없으면"이라는 말은, 철수가 먼저 법률을 보아야 한다는 말입니다. 철수는 인터넷에 검색을 해서 [민법]이라는 이름의 성문법을 검색하고, 거기서 채권자로서 자신이 무엇을 할 수 있는지, 영희에게 얼마의 지연 이자를 요구할 수 있는지, 영희가 돈을 안 갚으면 최종적으로 어떻게 법원에 소송을 제기할 수 있는지를 알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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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민법]이나 다른 법률들을 봐도 관련된 내용이 없는 경우라면 어떻게 될까요? 이런 경우 민법 제1조는 법률에 규정이 없으면 [관습법]에 의한다고 합니다. 관습법이란 무엇일까요? 한 가지 짚고 넘어갈 것은, "관습법"과 "관습"은 다른 것이라는 점입니다.
관습은 일반적으로 사회 구성원들이 장기간 반복하여 시행함으로써 굳어진 관행입니다. 그런데 이것만으로는 관습'법'이 되기에 부족합니다. 관습법이 되기 위하여는 이러한 관행을 법규범으로까지 인식하는 사람들의 강력한 법적 확신이 필요해요.
이처럼 관습법이 관습보다도 까다로운 요건 하에 인정되는 것은, 글자로 쓰이고 공인되지 않은, 어찌 보면 허공에 떠도는 듯한 관행이라는 문화현상에 법적 효력을 부여하여야 하는 상황이기 때문입니다. 그냥 고착화된 관행이 있다고 해서 그걸 '법규범'으로 인정해 주면 될까요? 옳지 않은 관행도 있지 않을까요? 때문에 우리의 판례는 어떠한 관행이 법적 규범으로까지 인정되기 위하여는 전체 법질서에 반하지 않는 정당성과 합리성도 갖추어야 한다고 강하게 말하고 있습니다(대판 2005.7.21, 2002다1178).
마지막으로 철수는 '관습법으로도 규율되지 않으면 뭘 봐야 되지?'라고 생각합니다. 민법 제1조는 이때 [조리]를 보라고 하고 있습니다. 조리가 뭘까요? 일상적으로는 잘 안 쓰는 말이에요. 조리, 이것은 '사물의 도리' 또는 '법의 일반원칙'을 말합니다. 쉽게 생각하면, "정상적인 인간이 보통 생각할 때 당연히 이래야 한다고 생각하는 정도"로 이해하면 편합니다.
예를 들어, 옛날에는 우리나라에서 여자는 종중의 구성원이 될 수 없었습니다. 그리고 그것이 사회적으로 당연하게 여겨졌고 불합리하다고 여겨지지도 않았습니다. 여자가 종중의 구성원이 될 수 없다는 것이 '관습법'이었던 겁니다. 그러나 시대가 변하고 양성평등의 가치가 뜨겁게 부각되면서, 판례는 더 이상 종래의 관습법(여자는 종중의 구성원이 될 수 없다)은 헌법 정신에 위배되어 법적 효력이 없다고 하고, 그에 따라 민법 제1조에서 말하는 조리에 의하여 보충될 필요가 있다고 하면서 여자도 종중의 구성원이 될 수 있다고 보는 게 합당하다고 본 바 있습니다.
오늘은 간략하게 민법의 법원과 적용 순서에 대해서 보았습니다. 사실 관습법에 대해 다루려면 명인방법이나 법정지상권, 분묘기지권 등에 대해서도 이야기하여야 하지만, 오늘은 이 정도로만 해도 충분합니다.
*이 글은 교양을 위한 것으로, 실제 소송수행이나 법률 상담을 위한 목적으로 제공되는 것이 아님을 알려 드립니다. 그런 상황이 오신다면 법률사무소를 찾아 정식으로 상담을 받으시길 추천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