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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법과의 만남 Feb 13. 2020

민법 제187조, "등기를 요하지 아니하는 부동산물권"

제187조(등기를 요하지 아니하는 부동산물권취득) 상속, 공용징수, 판결, 경매 기타 법률의 규정에 의한 부동산에 관한 물권의 취득은 등기를 요하지 아니한다. 그러나 등기를 하지 아니하면 이를 처분하지 못한다.


어제 우리가 공부한 것과 비교하면서 보면 좋습니다. 어제 공부한 것은 '법률행위에 의한' 부동산 물권 변동에 관한 것이었습니다. 오늘 공부할 것은 '법률행위가 아닌 경우'에 부동산 물권 변동에 관한 것입니다.

(사실 어제와 같은 논의에서 많은 법학 교과서에서는 '물권행위'의 개념과 물권행위의 독자성/무인성에 관한 학설의 내용을 함께 설명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 내용은 초심자가 접근하기에는 너무 어렵기 때문에 추후 필요한 경우 간단히 공부하는 식으로 하고 지금은 넘어가도록 하겠습니다.)


제187조에 따르면, 법률행위가 아님에도 불구하고 부동산 물권이 바뀔 수 있는 경우로 상속, 공용징수, 판결, 경매를 예시로 들고 있으며, '기타 법률의 규정'이라고도 하여 그 외에도 몇 가지 더 있을 수 있음을 말하고 있습니다. 


법률행위와 법률행위가 아닌 것에 대해서는 엄격히 구별할 필요가 있다고 하였습니다. 법률행위는 의사표시를 요소로 하는 법률요건이며, 기억이 잘 안 나시는 분들은 민법 제4조에서 법률행위에 대해 공부한 내용이 있으니 그 부분을 복습하고 오셔도 좋겠습니다.


제187조는 이처럼 법률의 규정에 따른 부동산 물권의 취득은 '등기를 요하지 아니한다'라고 말합니다. '취득'이라고 하고 있는데, 표현상으로는 취득만을 의미하는 것 같지만 학설은 해석상 취득하는 것만을 따지지 않고 물권의 소멸이나 변경에도 제187조가 적용되는 것으로 봅니다. (추후 민법이 개정되면 표현을 명확히 하는 것도 좋아 보입니다.) 즉, 제187조에 의한 부동산 물권 변동에 대해서는 딱히 등기를 하지 않더라도 효력이 발생하게 됩니다. 제186조와는 매우 중요한 차이점이 있으므로 꼭 기억해 두시기 바랍니다.


자, 그럼 왜 이런 조문을 두었는지는 뒤에서 설명하기로 하고, 제187조 본문의 내용을 하나씩 들여다 봅시다.


먼저 상속입니다. 상속은 [총칙]에서 공부했던 바와 같이, 법률행위가 아닙니다. 그러나 철수가 죽어서 그의 아들이 철수의 재산을 상속 받게 되면, 부동산의 물권 변동은 분명히 일어납니다. 예전에는 부동산의 소유자가 철수였지만, 이제는 철수의 아들이 되는 것이니까요. 법률행위가 아닌데도 부동산 물권 변동이 일어나는 것입니다. 따라서 상속을 받아 부동산 물권이 변동되는 경우에는 제187조에 따라 등기를 하지 않더라도 그 효력이 발생하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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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용징수란 국가나 지자체 등이 공익사업을 실시할 때 필요한 경우 개인의 재산권을 강제로 가져가는 것을 말합니다. "와, 국가가 개인의 재산을 빼앗아 가는 건가요?" 분노하실 수도 있겠지만, 날강도 마냥 막 가져가는 것은 아니고 법률에 따라 보상을 해주고 가져갑니다. 그리고 아무때나 국가가 빼앗는 것이 아니고 엄격한 요건도 충족하여야 합니다. 공용징수에 대해 상세한 설명은 행정법 교과서 등을 참고하시면 되겠습니다. 이러한 공용징수의 경우, 국가 등은 등기를 별도로 하지 않아도 부동산의 소유권을 취득할 수 있게 됩니다.


판결은 이미 아시겠지만 재판의 결과로 나오는 것입니다. 다만, 조심할 것은 제187조에서 말하는 판결은 모든 판결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형성판결만을 의미한다는 점입니다. 도대체 형성판결이 뭘까요? 판결(특히 본안판결을 말합니다만, 여기서는 일단 그 부분에 대한 설명은 생략하고 진행하도록 하겠습니다)은 크게 3가지 종류로 나누어 볼 수 있습니다. 이행판결, 확인판결, 형성판결이 그것입니다.




설명이 길어질 수밖에 없지만, 판결의 종류를 알아보기 전에 먼저 민사 판결문이 도대체 어떻게 작성되는가, 그 양식에 대해서 알아 보도록 합시다. 상식의 차원에서도 알아 두면 좋습니다. 요즘은 판사가 판결문을 작성할 때 별도의 시스템에 접속해서 쓰게 됩니다. 보통 사건명이나 당사자 표시 같은 것은 알아서 시스템에서 해주므로, 판사가 특히 신경써서 작성하는 부분은 [주문], [청구취지], [이유]입니다.


판결문에서 '주문'이란 마법을 쓸 때 외치는 주문이 아니라, 주문(主文)이라는 뜻으로, 직역하자면 주된 문장을 뜻하며, 실제로는 판결의 결론에 해당하는 부분을 말합니다. 예를 들어 "원고의 청구를 기각한다"와 같은 문장이 바로 주문입니다. 판사가 생각을 해보았는데, 생각해보니 결론은 원고의 청구가 말이 안된다, 이런 식으로 쓰는 겁니다.


판결문의 '청구취지'란 재판으로 원고가 얻고자 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적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철수가 영희에게 빌려 주고 못 받고 있는 돈을 소송을 통해 받아 내고자 한다면, 그 재판의 청구취지는 "피고는 원고에게 5,000만 원을 지급하라."가 될 것입니다. 보통 청구취지는 소장에 적혀 있는데, 판결문에도 청구취지를 적습니다.


판결문의 '이유'란 예상하시다시피 앞서 말한 <주문>(결론)이 어떻게 도출되었는지 그 이유를 설명하는 부분입니다. 원고의 청구를 기각한다는 결론이 도출되었다면, 왜 그런 결론이 도출되었는지에 관한 판사의 논리가 있겠지요. '이유' 부분을 읽음으로써 이를 알 수 있습니다.


그러면 이러한 사전 지식을 가지고, 이제 다시 판결의 3유형에 대해 알아봅시다. 먼저 이행판결이란, 원고의 주장대로 피고에게 일정한 행위를 이행하도록 명령하는 판결입니다. 대표적으로 위에서 말한 "피고는 원고에게 5,000만 원을 지급하라."라는 청구취지가 바로 이행판결의 판결문에 등장하는 예시라고 하겠습니다.


이행판결의 경우 그 판결에 따른 '이행'이 별도로 이루어져야 비로소 권리관계가 변동되는 것입니다. 이 부분이 가장 중요합니다.


예를 들어 방금 말한 이행판결이 있다고 하더라도, 피고의 계좌에서 자동으로 5,000만 원이 빠져나가 원고의 계좌에 입금되지는 않는 것입니다. 또는 소유권이전등기를 해주라는 내용의 판결을 재판을 통해 얻어냈다고 하더라도, 이는 이행판결이므로 실제로 소유권이전등기가 '이행'되기 전까지는 부동산의 소유자가 바뀌지 않습니다. (소유권이전등기 이행판결의 경우 승소한 사람이 '부동산 등기법'에 따라 단독으로 등기를 신청할 수 있기는 합니다. 참고로만 알아 두세요.) 


다음으로 확인판결이란, 어떠한 사실을 법원이 확인하는 의미의 판결입니다. 대표적으로 원고의 청구를 법원이 '기각'하는 기각판결의 경우, 원고의 주장이 옳지 않다는 것을 법원이 확인하는 의미가 있으므로 확인판결에 해당합니다. 이러한 확인판결이 나오는 소송의 경우 청구취지가 보통 "원고와 피고 사이에, ~라는 사실을 확인한다."라고 적히게 됩니다.


다음으로 형성판결이란, 판결 그 자체만으로 법률관계를 변동시키는 판결을 말합니다. 예를 들어 이혼 소송에서 판결이 나오는 경우, 그 판결에 따라 바로 이혼의 효과가 발생하게 됩니다. 아내가 이혼 소송에서 이겼다고 해서 남편이 이혼을 '이행'하여야 이혼이 실제로 이루어진다는 것은 말이 되지 않지요. 이 경우 청구취지는 "원고와 피고는 이혼한다."가 될 것입니다.


설명이 길어졌지만, 어쨌건 제187조에서 말하는 '판결'은 형성판결을 의미합니다. 논리상 이행판결과 확인판결은 제187조에서 말하는 판결에 해당되기 어렵습니다. 이행판결은 애초에 '이행'이 있어야 권리관계의 변동이 발생한다는 개념인데, 제187조의 적용을 받는다고 하면 등기 없이도 효력을 발생하게 되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부동산 소유권이전등기의 이행 판결을 받은 사람(승소한 사람)은 굳이 등기 절차를 밟을 이유가 없겠지요. 괜히 등록세 더 내게요? 어차피 등기 없이도 소유권이 이전된다는데. 확인판결 역시 권리 또는 법률관계의 존부를 확인하는 것에 불과하므로, 제187조를 적용하기가 어렵습니다.


판례 역시 "민법 제187조에 소판결이라고 함은 판결자체에 의하여 부동산 물권취득의 형성적 효력이 생하는 경우를 말하는 것이고 당사자 사이에 이루어진 어떠한 법률행위를 원인으로 하여 부동산소유권이전등기절차의 이행을 명하는 것과 같은 내용의 판결은 이에 포함되지 않는다고 할 것"이라고 하여(대법원 1970. 6. 30. 선고 70다568 판결) 같은 입장입니다.




다음으로 경매를 봅시다. 흔히 경매라고 하면, 영화나 드라마 같은 곳에서 나오는 장면을 떠올립니다. 피카소의 그림 같은 비싼 물건을 가져다 놓고, 수십 명의 사람이 모여서 서로 "나는 10억 원!", "아니, 나는 11억원 부르겠습니다" 이런 식으로 가격을 다투는 것을 상상합니다.


그런 상상과 완전히 다른 것은 아닙니다. 다만 여기서 말하는 경매란 <소더비>나 <크리스티>와 같은 영화에 나오는 그런 경매가 아니라, 국가기관이 주체가 되는 경매로서 '임의경매' 또는 '강제경매'를 의미하는 것입니다. 양자에 대해서는 추후에 상세히 설명할 기회가 있으므로, 여기서는 법원에서 실시하는 경매를 거쳐 부동산을 사들이게 된 사람은 그 매각대금을 모두 납부함으로써 바로 소유권을 취득하도록 정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지나가는 것으로 만족하도록 하겠습니다.

민사집행법
제135조(소유권의 취득시기) 매수인은 매각대금을 다 낸 때에 매각의 목적인 권리를 취득한다.

제268조(준용규정) 부동산을 목적으로 하는 담보권 실행을 위한 경매절차에는 제79조 내지 제162조의 규정을 준용한다.


그런데 지금까지의 논의 내용을 보다 보면, 궁금한 부분이 생깁니다. 도대체 제187조와 같은 규정은 왜 필요한 걸까요? 모든 부동산 물권의 변동에 그냥 등기를 하라고 해버리면 안 되는 걸까요?


그 이유에 대해서 여러 가지 학설의 논의가 있습니다만, 대체로 다음과 같은 논거를 듭니다. 예를 들어 위에서 말씀드린 공용징수나 경매, 판결 등의 경우, 국가기관이 실시하는 행위라서 등기가 없더라도 적법 절차나 거래의 안전을 보장하기가 쉽습니다. 이웃사촌인 철수와 영희 간에 부동산 거래를 하는 것은 솔직히 언제 어디서 몰래 했는지 알 수가 없지만, 공용징수나 경매는 그 절차도 공개되는 등 누구나 쉽게 알 수 있는 행위라고 하겠습니다. 공시제도가 왜 존재하는지를 생각해 보면, 좀 더 쉽게 이해가 가실 겁니다.


상속의 경우에는 누군가가 죽음으로써 실시되는 것인데, 누군가 죽자마자 등기하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고(현실적으로 쉽지 않을 뿐더러, 상속인이 누구인지 확정되지 않는 경우도 있으므로 논리적으로도 어려운 경우가 있습니다), 그렇다고 등기하지 않은 재산이라고 하여 주인이 없는 것으로 내버려 둘 수도 없는 상태이므로 등기가 없더라도 일단 물권 변동의 효과가 있도록 하고 있는 것입니다.


자, 그럼 이제 마지막으로 제187조 단서를 봅시다. 제187조 단서는, "등기하지 아니하면 이를 처분하지 못한다."라고 하고 있습니다. 이건 무슨 말일까요?


일단 제187조 본문에서는 상속 등의 경우에는 등기를 안 해도 부동산 물권 변동이 가능하도록 정해 두고 있습니다만, 그렇다고 해서 등기가 안 된 부동산을 시장에 마구 유통하게 내버려 두는 것이 괜찮은 걸까요?


처음 상속을 받을 때에야 그렇다고 쳐도, 상속 받은 부동산을 누군가에게 팔 수도 있는 건데, 등기가 제대로 안 된 부동산이 철수에게서 영희로, 영희에게서 민수로... 계속 주인이 바뀌어 나간다면 큰 문제가 생길 수 있는 겁니다.


따라서 제187조 단서에서는 일단 등기 없이 부동산 물권을 취득하더라도, 그 부동산을 다른 사람에게 파는 등 처분할 때에는 최소한 등기를 하여야 한다고 정하고 있는 것입니다. 즉, 상속을 받은 사람이 물려 받은 부동산을 등기하지 않고 옆집 사람에 팔아 버릴 경우, 옆집 사람은 그 부동산을 유효하게 취득하지 못합니다.


어제에 이어 오늘도 상당히 길고 복잡한 내용을 다루었습니다. 단순하게 설명하려고 노력하였지만, 아무래도 모든 것을 생략하고 넘어가기에는 곤란하고, 그렇다고 상세하게 모두 다루기에는 어려운 부분이 많아 이 정도로 타협하여야 할 듯 합니다.


물권법의 기초적인 부분부터 하나씩 공부하여야 하다 보니 초반부에는 어쩔 수 없이 좀 힘든 부분이 있을 거에요. 다소 긴 내용이 앞으로도 이어지겠지만 힘내시기 바랍니다.


내일은 동산물권의 양도에 대해서 공부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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