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76조(압류, 가압류, 가처분과 시효중단) 압류, 가압류 및 가처분은 시효의 이익을 받은 자에 대하여 하지 아니한 때에는 이를 그에게 통지한 후가 아니면 시효중단의 효력이 없다.
뭔가 어디서 본 것 같은 조 제목입니다. 제175조와 제176조는 조의 제목이 똑같습니다. 헷갈리니까 좀 다르게 써주면 좋을 텐데... 어쨌건 일단 이렇게 제목이 되어 있으니, 어쩔 수 없습니다.
제176조의 문장은 좀 복잡하게 되어 있습니다. 표현이 조금 이상하기도 해서 단번에 이해가 안 가실 수도 있습니다. 일단 한번 천천히 소리 내어 읽어 보시고, 다음의 예를 보시기 바랍니다.
철수(채권자)는 옆집의 영희(채무자)에게 1억 원을 빌려 주었습니다. 우리는 제153조에서 ‘기한의 이익’이라는 개념에 대하여 공부하였던 바 있습니다. ‘시효의 이익’도 유사하게 생각하면 됩니다. 시효의 이익이란, 시효에 의하여 권리를 취득하거나 권리가 상실됨으로써 받게 되는 이익을 말합니다.
여기서 영희(채무자)는 철수가 가진 채권의 소멸시효가 완성될 경우 돈을 갚지 않아도 되므로, 시효의 이익을 받을 자라고 할 수 있습니다. 통상 시효의 이익을 받을 자는 채무자라고 봅니다.
*제176조에서는 “시효의 이익을 받은 자”라고 표현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마치 시효가 완성되어서 이미 시효의 이익을 받아 버린 사람을 의미하는 것처럼 오해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이런 표현은 부적절하고, 정확하게는 “시효의 이익을 받을 자”라고 수정할 필요가 있다는 의견도 있습니다(양창수, 2005). 결국 제176조를 풀어 써보면, “압류, 가압류 및 가처분은 시효의 이익을 받을 자(채무자)에 대하여 하지 아니한 때에는 이를 채무자에게 통지하지 않으면 (채무자에 대한) 시효중단의 효력이 없다”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보통은 압류, 가압류 및 가처분이 시효의 이익을 받을 자(영희)에게 이루어질 것으로 생각할 겁니다. 예를 들어 영희가 돈을 갚지 않자 철수가 영희의 계좌에 가압류를 걸어 버리는 것을 상정할 수 있지요. 그런데 이러한 압류 등이 항상 채무자에게 직접 이루어지는 것은 아닙니다.
이런 경우를 생각해 봅시다. 철수는 영희에게 1억 원을 빌려주기는 하였는데, 영희가 영 미덥지 않았는지 자신이 믿을 만한 무언가를 가져와야 돈을 주겠다고 하였습니다. “뭘 믿고 너에게 그 큰 돈을 빌려줘!” 이렇게 말하는 거지요.
이에 영희는 자신의 언니에게 부탁하여 담보를 제공해 달라고 하였습니다. 영희의 언니는 그녀가 소유한 부동산 A에 저당권을 설정하여 주었습니다(이러한 방식을 물상보증이라고 합니다. 용어가 어려운데 일단 그러려니 하고 넘어가겠습니다).
물상보증, 저당권이나 근저당권 등에 대해서는 상세히 설명하기에는 너무 분량이 많이 필요하기 때문에 나중에 물권편을 기약하기로 하겠습니다.
영희는 끝내 철수에게 돈을 갚지 못했고, 화가 난 철수는 약속한 대로 보증을 섰던 ‘영희의 언니’ 소유의 부동산 A에 대하여 (저당권에 기해) 압류를 하고 경매에 부쳐 버렸습니다. 부동산을 경매에서 팔렸으며, 그 돈으로 철수는 자신의 1억 원을 회수할 수 있었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압류’가 채무자 본인(영희)이 아닌 제3자(영희의 언니)에게 이루어졌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이것이 바로 제176조에서 지적하고 있는 상황인 거지요.
지금까지 공부한 바에 따르면, 압류가 있는 경우 원칙적으로 시효중단의 효과가 발생하여야 합니다. 그런데 만약 ‘영희’ 본인은 부동산의 경매가 있었는지도 모르고 있었다면 어떨까요?
위 사례에서의 압류는 영희가 아니라 영희의 언니에게 이루어진 것이므로, 영희는 철수가 이미 1억 원을 회수한 줄도 모르고 있을 수 있습니다. (물론, 현실에서는 언니가 영희를 가만두지 않았을 테니까... 그럴 가능성은 낮습니다만 어디까지나 이론적으로 가정해 보는 것입니다)
사정을 모르는 영희는 돈을 안 갚고 기다리고, 철수에게 돈을 빌린 지 10년이 경과하였다고 생각하여 “신난다. 소멸시효가 완성되었다!”라고 생각할 수도 있는 것입니다. 혹은 철수가 1억 원을 회수한 줄도 모르고 영희가 철수에게 1억 원을 다시 변제할 수도 있습니다. 어쨌건, 제176조에서 말하고자 하는 것은 최소한 이러한 상황이 채무자 본인에게 통지되어야 시효중단의 효과를 발생시켜 주겠다는 것입니다.
위 사례의 경우, 언니 소유의 부동산이 경매된다는 경매개시결정이 영희에게 송달되면, 영희는 그 사실을 알게 되므로 제176조의 요건은 충족되는 것이라고 하겠습니다. 그러면 그 결정이 영희에게 도달한 시점부터 (철수가 가진 영희에 대한 채권의) 시효는 중단되게 됩니다.
오늘은 압류 등이 시효의 이익을 받을 자가 아닌 사람에게 이루어진 경우에 시효중단의 효과는 어떻게 보아야 하는지에 대하여 공부하였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앞서 공부한 제169조에 따르면, 시효의 중단은 당사자와 그 승계인 간에만 효력이 있다고 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니까 사실 제169조만 놓고 봤을 때는 위 철수-영희-언니 간의 사례에서 당사자는 언니여야 합니다. 하지만 제176조가 존재함으로 인하여 제169조에서는 시효중단의 효력을 받지 못했던 영희(채무자)까지 (통지라는 조건이 충족되면) 효력을 받게 되는 결과가 됩니다. 결국 제176조는 제169조에 규정된 시효중단의 상대적 효력에 대한 예외를 정하고 있는 규정이라고 하겠습니다(김용덕, 2019).
우리의 판례 역시, “물상보증인에 대한 임의경매의 신청은 피담보채권의 만족을 위한 강력한 권리실행수단으로서, 채무자 본인에 대한 압류와 대비하여 소멸시효의 중단사유로서 차이를 인정할 만한 실질적인 이유가 없기 때문에, 중단행위의 당사자나 그 승계인 이외의 시효의 이익을 받는 채무자에게도 시효중단의 효력이 미치도록 하되, 다만 채무자가 시효의 중단으로 인하여 예측하지 못한 불이익을 입게 되는 것을 막아주기 위하여 채무자에게 압류사실이 통지되어야만 시효중단의 효력이 미치게 함으로써, 채권자와 채무자간에 이익을 조화시키려는 것이, 민법 제169조에 규정된 시효중단의 상대적 효력에 대한 예외를 인정한 민법 제176조의 취지라고 해석되는 만큼, 압류사실을 채무자가 알 수 있도록 경매개시결정이나 경매기일통지서가 우편송달 (발송송달) 이나 공시송달의 방법이 아닌 교부송달의 방법으로 채무자에게 송달되어야만 압류사실이 통지된 것으로 볼 수 있는 것이다.”라고 하고 있으므로 참고 바랍니다(대법원 1990. 1. 12. 선고 89다카4946 판결).
내일은 승인과 시효중단에 대하여 공부하겠습니다.
*참고문헌
김용덕, 「주석민법 총칙3(제5판)」, 한국사법행정학회, 2019, 996면(전원열).
양창수, “民法典 制定過程에 관한 殘片”, 「저스티스」 통권 제85호, 2005, 90-91면.
20.1.23. 작성
23.1.4. 업데이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