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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법 제279조, "지상권의 내용"

by 법과의 만남
제279조(지상권의 내용) 지상권자는 타인의 토지에 건물 기타 공작물이나 수목을 소유하기 위하여 그 토지를 사용하는 권리가 있다.


마침내 우리는 어제 제278조까지 공부하여, 물권편(제2편) 제3장 [소유권]을 완료하였습니다. 오늘부터는 물권편의 네 번째 장, [지상권]을 시작합니다.


지상권(地上權)이란, 한자를 직역하자면 '땅 위에 관한 권리' 정도가 되겠습니다. 제279조는 지상권을 "다른 사람의 땅에 건물, 공작물, 수목(樹木: 나무)을 소유하기 위하여 그 땅을 사용할 권리"로 정의하고 있습니다. 이게 구체적으로 무슨 뜻일까요?


예를 들어 보겠습니다. 철수는 양지바른 땅 1,000평의 소유자입니다. 그리고 그 땅 위에는 10층짜리 건물이 하나 서 있는데, 그 건물의 소유자는 영희입니다. 이 경우, 영희는 자신의 건물을 남의 땅 위에 갖고 있는 셈이 됩니다. 영희는 건물에 세를 주든지, 아니면 자신이 직접 사용하든지 해서 어떻게든 이익을 볼 수 있습니다. 그런데 철수는 영희의 건물이 자기 땅 위에 있기 때문에, 그 땅을 이용해서 다른 걸 하고 싶어도 할 수가 없습니다. 이대로 가면 철수만 손해를 보게 되는 것이지요.


그래서 이러한 경우 영희와 철수 사이에 지상권설정계약을 맺고, 영희(지상권자)가 철수(지상권설정자)의 땅 위에 존재하는 건물('타인의 토지에 건물')을 소유하기 위하여 그 땅을 사용할 수 있는 권리를 정하게 됩니다. 그리고 영희는 지상권에 따른 대가로 사용료를 철수에게 (계약에 정해진 대로) 지급하면 됩니다. 이를 지료(地料)라고 하며, 흔히 '땅세'라고도 부릅니다. 이렇게 되면 영희는 비록 남의 땅 위에 건물을 갖고 있기는 하나 땅주인(철수)의 허락을 받아 자유롭게 건물을 쓸 수 있으니 좋고, 철수는 비록 자기 땅 위에 남의 건물이 있기는 하나 땅세를 받아먹을 수 있기 때문에 서로 윈윈이 됩니다.


땅은 당연히 부동산이고, 우리가 앞서 공부하였듯 부동산 물권 변동의 효력은 등기하여야 효력이 발생하므로, 철수와 영희 사이에 체결된 지상권설정계약도 등기가 완료되어야 지상권이 성립하게 된다는 점 잊지 마세요.

제186조(부동산물권변동의 효력) 부동산에 관한 법률행위로 인한 물권의 득실변경은 등기하여야 그 효력이 생긴다.


참고를 위하여 지상권설정등기 신청서 양식을 예시로 첨부하도록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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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mage002.jpg 출처: 대법원 인터넷등기소 등기신청양식(예시)


여기서 기초지식을 좀 다지고 가야 할 듯합니다. 우리가 처음 물권을 공부할 때, 물권이란 물건에 대한 권리라고 했습니다. 반면 채권은 어떤 사람이 다른 사람에게 어떤 행위를 청구할 수 있는 권리이므로 물권과는 다릅니다. 물건과의 관계를 다루는 물권과 달리, 채권은 사람 간의 관계를 다루기 때문입니다. 물론 둘 다 '재산권'에 해당한다는 공통점은 있습니다.


또한, 물권의 경우 법률이나 관습법에 의하지 않고는 마음대로 만들 수 없다고 하였던 것을 기억하시나요?(제185조 참조) 제185조를 배울 당시에는 내용이 번잡해질까 봐 상세히 다루지 않았지만, 여기서는 본격적으로 물권의 종류에 대해서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제185조(물권의 종류) 물권은 법률 또는 관습법에 의하는 외에는 임의로 창설하지 못한다.


제185조에서 말하는 '법률과 관습법'에 의해서 현재 대한민국에서 인정되는 '물권'의 종류는 크게 8가지라고 할 수 있습니다. 크게는 '점유권'과 '본권'으로 나눌 수 있습니다. 본권의 의미에 대해서는 전에 공부한 적이 있었습니다(제192조 부분 참조). 점유권은 물건의 사실상 지배라는 상태에 대해서 인정해 주는 권리입니다. 다만 점유권은 점유를 정당화하는 권리는 아니며, 점유할 수 있는 권리로서 점유권과 구별되는 것을 본권이라고 한다고 하였습니다.


본권은 우리가 지금까지 열심히 공부한 '소유권'과 '제한물권'으로 나뉘는데요, 소유권의 경우 이제 익숙하실 테니 넘어가겠습니다. 제한물권이란, 말 그대로 물권은 물권인데 어떤 부분이 좀 제한되는 물권입니다. 소유권의 경우 단순 명쾌합니다. '내가 A라는 물건의 소유자라면, 나는 이 물건을 처분할 수도, 부술 수도, 내가 마음대로 사용할 수도, 남에게 빌려줄 수도 있다'는 것이지요. 소유권이란 그만큼 절대적인 권능을 포함하고 있습니다.


반면, 제한물권은 그렇지 않습니다. 물건에 대한 권리기는 한데 나사가 하나씩 빠져 있습니다. 대표적인 것이 바로 우리가 방금 공부한 '지상권'입니다. 위의 사례에서 철수의 땅을 사용하고 있는 영희는 '땅'이라는 물건에 대해서 권리를 가지고 있지만(물권), 소유권을 가진 것은 아니고 단지 그 땅에 자신의 건물을 굴릴 수 있는 권리를 가졌을 뿐입니다. 그러니까 영희는 절대 철수의 땅을 자기 마음대로 팔아 버릴 수 없는 것입니다. '소유권'이 없으니까요.


이처럼 나사가 하나씩 빠진 제한물권은 크게 2종류로 분류합니다. 하나는 물건이 가진 사용가치를 지배하려는 목적을 가진 물권입니다. 앞서 본 지상권이 바로 여기에 해당한다고 할 수 있겠지요. 영희는 남이 소유한 땅 그 자체를 가지려는 것이 아니라, 그 땅을 잠시 빌려 쓰려는 것 아니겠습니까? 그러니까 그 땅의 사용가치를 지배하려는 의도라고 할 수 있지요. 이러한 형태의 제한물권을 어려운 한자어로 용익물권(用益物權)이라고 부릅니다.


한편, 제한물권 중에는 사용가치가 아니라 물건이 갖는 교환가치의 지배하려는 목적을 가진 물권이 있습니다. 대표적인 예가 바로 저당권입니다. 저당권의 경우 우리가 정식으로 공부한 적은 없지만 지금까지 여러 차례 예시로 등장하여서 아마 익숙하실 텐데요. 남한테 돈을 빌리면서 담보로 자신의 땅을 저당 잡히는 경우 내게 돈을 빌려준 사람은 내 땅에 저당을 잡은 '저당권자'가 되는 것입니다.


이러한 저당권은 땅의 사용가치를 이용하려는 것이 아닙니다. 저당권자는 사실 그 땅이 어떻게 생겼는지도 몰라도 됩니다. 그냥 그 땅의 값어치를 담보로 삼아 자신의 채권을 안전하게 하려는 것이지요. 이와 같이 채권의 담보를 위해서 교환가치를 지배하는 형태의 제한물권을 한자어로 담보물권(擔保物權)이라고 부릅니다.


지금까지 공부한 물권의 종류를 표로 도식화하면 다음과 같이 나타낼 수 있을 것입니다.


픽토그램.jpg 출처: 직접 작성


오늘 우리가 공부한 지상권은 '물권'이며, 그중에서도 제한물권으로서 '용익물권'에 해당합니다. 또한 본권에 해당하기 때문에 지상권자는 당연히 땅을 '점유할 권리'도 가집니다. 물권의 기초에 대한 논의를 통하여, 지상권에 대해 더 많은 내용을 이해하실 수 있게 되었으리라 생각합니다.




지상권은 2가지 방법에 의해서 성립합니다. 하나는 위의 사례에서와 같이 사람 간의 법률행위(지상권설정계약이나 지상권 자체를 다른 사람에게서 사들이는 행위 등)과 등기를 통해서 성립하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따로 계약과 같은 법률행위가 없더라도 법률의 규정에 의해서 자동으로 지상권이 성립하는 것입니다. 후자의 경우를 법정지상권(法定地上權)이라고 하며, 추후에 중요하게 다룰 예정입니다.


그런데 여기까지 공부하다 보면, 이런 질문을 하시는 분들이 있었습니다. "그럼 주변에 땅을 빌려 쓰는 사람들은 지상권자였던 거군요?"


대답은 그럴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다, 입니다. 사실은 아닐 가능성이 큽니다. 왜냐하면, 우리 민법 하에서 남의 땅을 빌려 쓸 수 있는 제도가 2가지가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는 바로 오늘 공부한 지상권이고, 다른 하나는 바로 임차권입니다. 도대체 둘은 뭐가 다른 걸까요? 왜 이렇게 제도를 만들었을까요?


임차권은 임대차계약에 따른 권리로서 '채권'입니다. 물권이 아닙니다. 채권은 사람 간의 관계를 규율한다고 했죠? 예를 들어 다음과 같은 경우를 생각해 봅시다.

1. 철수가 자신의 땅을 영희에게 사용하도록 해 주고, 지상권설정계약을 한 후 영희(지상권자)로부터 땅세를 받는 경우

2. 나부자가 자신의 땅을 김흥부에게 사용하도록 해 주고, 임대차계약을 한 후 김흥부(임차인)로부터 임대료를 받는 경우


만약 1번 케이스에서 철수가 사정이 생겨 자기 땅을 제3자에게 팔았다고 해봅시다. 영희는 지상권(물권)의 권리자이므로, 여전히 땅에 대한 자신의 권리(지상권)를 새로운 땅 주인에게 주장할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주인은 바뀌었어도 땅을 그대로이고, 영희가 가진 권리는 '물건'에 대한 권리이지 '사람'에 대한 권리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2번 케이스에서는 얘기가 다릅니다. 만약 나부자가 땅을 제3자에게 팔았다면, 김흥부는 자신이 가진 임차권을 새로운 땅 주인에게 요구할 수 없습니다(토지임차권 등기와 같은 예외는 고려하지 않도록 하겠습니다). 채권은 '특정한 사람'에 대해 행위를 요구할 수 있는 권리이고, 김흥부가 가진 권리는 '나부자에게 그의 소유 땅을 빌려주도록 요구할 수 있는 권리'이므로 사람이 바뀌면 그 권리도 소용이 없어지는 것입니다. 새로운 땅 주인이야 이전 주인(나부자)이 무슨 조건으로 계약을 했건 알 바 아닙니다.


결국 토지소유자 입장에서는 1번과 2번 케이스 모두 세를 받는 것은 동일하다면, 굳이 지상권 제도를 사용할 이유가 없습니다. 혹시 자신이 돈이 필요해서 땅을 팔려고 해도, 지상권이 걸려 있으면 잘 안 팔릴 겁니다. 왜냐하면 지상권자는 주인이 바뀌어도 여전히 지상권을 주장할 수 있으니까요. 새 주인 입장에서는 기존 지상권자를 내쫓고 땅에 다른 걸 해보고 싶은데, 그렇게 못하게 되는 겁니다. 살 마음이 사라지겠죠.


그 외에도 지상권의 경우 임차권 제도에 비해서 토지소유자에게 불리한 규정들이 많습니다(구체적으로 어떤 부분이 불리한지는 차차 지상권에 대해 공부하면서 알아볼 것입니다). 결국 현실에서는 토지소유자들이 임차권을 내주지 지상권을 내주는 경우가 흔치 않고, 그래서 아까 현실적으로는 '지상권자가 아닐 가능성이 크다'라고 대답했던 것입니다. 물론 개인의 선택하는 것이므로 상황에 따라서는 임대차를 하지 않고 지상권설정계약을 하는 경우도 있긴 합니다.


오늘은 지상권 파트의 기초를 다지기 위해서 좀 길게 설명을 드렸습니다. 내일은 지상권의 존속기간에 대해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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