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민법 공부를 시작하고 나서 초유의 사태(?)가 벌어졌습니다. 네, 오늘 조문은 '삭제'된 조문입니다. 원래 있다가 없어졌다는 거죠. 법이 개정되면서요. 그러니까 없는 조문인 건데요, 그런데도 왜 오늘 공부를 해야 하느냐? 왜냐하면 삭제된 조문도 왜 없어졌는지 알게 되면 공부에 도움이 되기 때문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이게 없어지기 전에는 어떤 조문이 있었는지 일단 한번 봅시다.
제436조(취소할 수 있는 채무의 보증) 취소의 원인있는 채무를 보증한 자가 보증계약당시에 그 원인있음을 안 경우에 주채무의 불이행 또는 취소가 있는 때에는 주채무와 동일한 목적의 독립채무를 부담한 것으로 본다.
바로 위 조문입니다. 이 조문은 민법이 제정되었던 1958년부터 있었던 아주 연식 있는(?) 규정이었는데, 2015년 민법 개정에 따라 60살을 못 채우고 삭제되었습니다. 무언가 문제가 있다고 생각했으니까 삭제했겠지요? 어떤 문제가 있었는지 한번 봅시다.
(구) 제436조는 취소의 원인있는 채무를 보증한 자가 보증계약 당시에 그 원인을 알았다면, 주채무의 불이행(취소)가 있는 경우 주채무와 동일한 목적의 독립채무를 부담한 것으로 보았습니다. 이게 무슨 말일까요? 예를 들어 보겠습니다. 철수는 나부자에게 1억원의 채무를 지고 있습니다. 그리고 영희는 그 주채무의 보증인입니다. 그런데 철수와 나부자 간의 기본계약은 사기에 의한 것으로, 철수에게는 취소권이 있다고 합시다.
영희는 취소사유가 있는 계약인 것을 알면서도, 해당 채무를 보증하는 보증계약을 체결하였습니다. 이후 철수가 취소권을 행사하였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영희는 1억원의 독립채무를 나부자에게 지게 된다는 것입니다. "아니, 주채무가 없어졌는데 왜 보증인이 그 채무를 덮어써야 합니까?" 이렇게 생각하실 수 있습니다. 사실 사정을 알고도 보증계약을 체결했다는 이유에서 어느 정도 책임을 좀 질 수는 있는데, 그렇다고 해서 독립적인 채무를 새롭게 부담시키는 것은 좀 심하지요. 그게 심하다고 생각하는 학자들이 실제로 많았기 때문에 제436조는 없어지게 된 것입니다.
즉, "보증인이 보증계약당시 주채무 발생 원인에 관하여 취소의 원인이 있음을 알았다는 것만으로 그에게 독
립채무를 부담시킬 만큼 어떤 비난의 소지가 있다고 할 수 없고, 반증의 소지를 차단하는 것도 타당하지 않다는 점"이 주요한 학계의 지적사항이었고, 이처럼 입법한 사례가 다른 나라에서도 찾아보기 힘들다는 점도 비판을 받았었습니다(최성경, 2013). 따라서 지금은 제436조가 없어졌으므로, 취소권을 행사하게 되면 주채무와 함께 보증채무도 없어지고 보증인은 자유의 몸(?)이 됩니다.
오늘은 처음으로 삭제된 조문에 대해 살펴보았습니다. 때로는 없어진 것도 왜 없어졌는지 살펴보는 것이 의미가 있습니다. 내일은 채권자의 정보제공의무와 통지의무에 대해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참고문헌
최성경, "민법개정안을 계기로 한 보증제도 연구", 「법학논집」제18권제2호, 2013, 190-191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