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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잔별 Jan 17. 2022

타인의 불행을 행복의 척도로 삼지 말 것

학창 시절에 별로라고 생각했던 애가 나중에 소문을 듣자 하니, 돈도 많이 벌고 결혼도 잘하고  나가는 사람이 되었다고 했을  , 묘한 질투심을 느꼈던  같다.  별로였던 애가 지금은 그렇게  나간다고? ! 하는 마음에 속으론 은근히 그녀의 불행을 바랐을지도 모르겠다.  예전부터 별로였던 애가 지금도 여전히 별로인  살아간다는 말에도 묘하게 고소함을 느꼈던  같기도 하다. 역시, 그럼 그렇지! 하는 근거 없는 동감. 나도 당황스러운 감정이었다. 지금은 연락도 하지 않는 타인의 불행을  행복의 저급한 연료로 소비했던 것이다. 물론 다행스럽게도, 그런 일이 지속되진 않았고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한두  그랬었다는 얘기다. 누가 뭐래도 나만  살면 되는  아닌가? 나만 그렇지 않으면 되는  아닌가? 싶으면서도 진짜 솔직하게는 이왕 사는  남보다 내가   살고 싶었다. 나의 기준이 남들에게도 기준이 되는 삶을 바랐던 거다.


도대체 그 '기준'은 어디서부터 왔을까?


나이 들수록 예전에는 쓰지 않던 감각들이 살아나서 세상을 보는 시야가 많이 달라졌음을 느낀다. 과거엔 느끼지 않았던 것에 깊게 공감하고 신경 쓰이는 일들이 생겨났다. 동시에 걱정과 염려도 많아졌는데, 아마 나는 그렇게 꼰대가 된 것 같다. 어쩔 수 없는 꼰대가 되었지만, 나이 들수록 좋은 어른이고 싶다는 생각도 많이 하는 요즘이다. 어린아이에게 가해지는 학대나 사회적 약자에게 행해지는 폭력적인 일들에 분노하면서, 이 세상이 더 이상 악해지지 않게 해달라고 기도한다. 그리고 타인의 행복을 기꺼이 축하할 수 있는 마음을 가진 어른이기를, 그것이 남을 향한 위로보다 우선시되는 사람이고 싶다. 더불어 타인의 불행을 나의 행복의 크기를 재단하는 척도로 삼는 일은 특히 경계하고 지양하고 싶다. 이는 결국 모두가 불행해지는 지름길이 아닐는지.


자존감이 낮은 사람들은 자신의 행복을 내면이 아닌, 다른 사람들과의 관계나 상황 즉 타인에서 찾는다. 때문에 남의 이목을 지나치게 의식하는 경향이 있다. 내 감정이 나에 의해서가 아니라 타인에 의해 결정된다. 어릴 때부터 끊임없이 비교를 당하고 자란 사람들은 '비교'에 의해 나의 가치가 결정되는 경험을 많이 해왔기에 자존감이 낮은 어른이 되기 쉽다. 나도 저 친구처럼 예뻤다면, 공부를 잘했다면, 키가 컸다면, 돈이 많은 부모 밑에서 자랐다면, 더 좋은 교육을 받았다면, 나도 지금 내 모습이 아닌 '저 사람'처럼 됐을지도 모르는데...  나는 저 사람보다 이것이 부족하고 외모가 별로고, 집안 환경도 좋지 않아서 지금 이런 모습이다.라고 내 인생에 타인의 모습을 투영시켜 '행복'이나 '성공'의 기준으로 삼는다. 반복되는 비교는 결국 자신을 더 깊게 망가뜨리고 황폐하게 만들 뿐이다.


자존감이 높은 사람일지라도 타인과 자신의 삶을 잠시 비교해보거나 타인의 상황에 내 상황을 대입해보는 상상을 한두 번쯤은 해봤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다만, 자존감이 높은 사람이라면 이를 자신의 절대적인 행복의 기준으로 삼지는 않을 것이다. 자존감(self-esteem)은 자신을 존중하고 사랑하는 마음이다. 꾸준히 내면을 돌보고 스스로 존중하는 마음이 깊은 사람이라면, 타인의 삶이 자신에게 큰 영향을 줄 수 없음을 깨달을 것이고, 그래서 어느 날, 타인의 행복이나 불행이 크게 다가올 때 스스로 경계하는 마음을 내세울 수 있으리라.


언제 불행이 올지 반대로 언제 행복이 올지 아무것도 계획할 수 없는 인생. 그야말로 한 방으로'인생역전' 잘 풀리는 사람들이 있는가 하면, 승승장구할 것 같던 인생을 살던 이들이 한 번에 나락으로 추락하는 것도 여럿 보았다. 그래서 잘 될 때나 안 될 때나 인생의 긴 끈을 느슨하게 잡고 감정의 큰 동요 없이 앞으로 걸어가는 일이 중요하다는 생각을 해 본다.


타인의 행복이나 불행에 크게 연연하지 않고 그저 나의 길을 가 보는 것. 그 안에서 만나게 될 위험이나 돌발상황을 안전하게 피하고, 내게 다가오는 행복을 행복으로 인식하는 것. 타인의 그 무엇보다, 내가 그저 나이기에 오는 만족감과 완전함을 알아가는 인생을 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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