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콜릿이 잔뜩 박힌 초코머핀을 노트북 키보드 앞에 두고, 오늘의 두 번째 커피를 내려 마시며 이 글을 쓰고 있다. 책상 한 켠엔 어제 구운 고구마와 잘 익은 귤이 서너 개 담긴 바구니가 놓여있다. 겨울을 대비하는 비상식량처럼, 언제나 그 자리에.
어제는 눈이 펑펑 오더니, 오늘은 요가하러 나갔다가 하마터면 미끄러질 뻔했다. 밤새 내린 눈이 지저분하게 도로를 메우고, 꽁꽁 얼어버린 것이다. '젠장, 춥다, 추워.'를 외치며 외출을 최소한으로 줄이고, 그동안 루틴처럼 지켜오던 걷기 운동도 포기하고 집에만 틀어박힌 채 칩거 중이다. 다행히도 내겐, 넷플릭스가 있고, 도서관에서 빌려온 책이 3권이나 있고, 게다가 며칠 전엔, 겨울 취미의 최고봉이라는 뜨개질까지 시작했다. 혼자라도 심심하지 않게 보낼 환경은 이미 완벽하다. 넷플릭스를 뽑아내느라 늘 열기를 뿜어내는 우리 집 TV와 작은 온열 스토브를 온종일 돌려가며, 어찌 보면 게으르지만, 나대로는 규칙적인 겨울을 나고 있다.
나는 겨울을 극도로 싫어한다. 안 그래도 추위를 많이 타는 체질인데, 올 겨울은 북극한파인지가 또 몰려와서 지구 온난화를 다시 한번 절감하게 하고, 올해도 지구환경보호에 더 적극적으로 참여하지 못한 나를 자책하게 했다. 평소에도 자외선 따윈 가볍게 무시하고 해를 갈망하며 햇빛자리를 선호하는 내게 영하 10도가 넘는 동장군은 엄청난 햇빛 갈증과 약간의 우울을 가져다줬다.
사람 피를 흡입하는 드라큘라처럼 찐득한 초코머핀을 빨아들이며, 오늘도 실패로 끝난 다이어트를 약간 상기하면서 글을 쓰고 있자니 좀 생뚱맞지만, 지난가을 아파트 산책로에서 마주친 두꺼비 친구가 떠올랐다.
친정집 아파트는 산 밑에 위치한 데다 자연친화적으로 산책로를 조성해 두어, 약간 작은 숲 같은 구조로 되어 있다. 나무의 종류도 다양하고 꽃도 사계절 다른 꽃이 핀다. 지난가을엔, 엄마와 언니랑 자주 산책을 나가며 자연을 구경하는 일에 빠져있었는데, 이곳에서 나는 처음으로 두꺼비라는 녀석을 만나게 된다. 그것도 세 번씩이나!!! 각각 다른 산책로에서 다른 날, 다른 시간에 말이다. 처음엔 사람이 가까이 가도 피하지 않는 녀석이 신기했고, 이 녀석을 이렇게 근거리에서 보는 게 처음이라 낯설었고, 개구리보다 몸집이 큰, 게다가 둔한 녀석이 왜 사람들 지나는 길까지 나왔을까, 사람들이 혹시 밟고 지나가진 않을까 걱정이 되어 산책길마다 자주 녀석을 찾게 됐다. 나중에 알 게 된 건, 비오기 전 후에 두꺼비들이 자주 나온다는 사실인데, 언니는 내 우려대로 어느 날, 로드킬을 당한 두꺼비를 보기도 했다고 했다. ㅜㅜ
'그러니까, 네 집에서 나오지 말란 말이야, 두꺼비 녀석들아, 인간들은 널 보호해 주지 못한다고...'
슬프고 안타까웠다.
그런데, 어느 날부턴가 자주 보이던 두꺼비들이 아예 보이질 않았다. 궁금해서 찾아보니 한국의 멸종 위기종 인 두꺼비는 기후변화 지표종이기도 하며, 11월부터 2월까지 겨울잠을 잔다고 한다. 환경 변화에 민감한 두꺼비들은 올해 겨울이 이렇게 추울 줄 미리 알았던 걸까. 일찍부터 보이질 않아 걱정을 좀 했었다. 하지만, 두꺼비들은 이 겨울잠에서 깨면 자연스럽게 번식을 시작할 것이고, 또다시 위험한 로드킬을 감행할 것이다. 언제 인간에게 밟힐지 모르지 삶이지만, 그들은 그들만의 방식으로 잘 살아가겠지.
두꺼비에게 긴 동면의 시간이 필요하듯, 인간에게도 잔뜩 웅크리는 시간이 필요하다. 비록 춥고 혹독한 이 겨울이 다른 계절보다 지루하고 길게 느껴질지도 모르지만, 다음 봄을 위해 당연한 듯 겨울잠에 들어가는 두꺼비들처럼, 우리도 제시간에 찾아온 계절에 당연한 일들을 하며, 다음을 위해 힘을 비축해 두는 정신이 필요하지 않을까.
우울하다고, 춥다고, 지루하다고, 도대체 이 추위는 언제 끝나냐고... 투털 투덜대면서 손이 노랗게 될 때까지 귤을 까먹다가 문득 지난가을의 두꺼비 생각이 났다. 모든 게 당연하다는 듯 느릿하지만, 제 속도대로 삶을 살아내는 그들의 삶이, 자연의 이치가 경이로웠다. 어찌 보면, 당연하게 살아낸 하루가 고맙고 대견하기도 했다.
우리는 이 계절에 웅크리고 있지만, 절대 멈추고 있지는 않다. 그 당연한 걸 나는 다시 깨닫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