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인과의 관계에서 불편한 마음이 생기거나 미묘한 감정이 올라올 때 그 불편감을 알아차리는 게 매우 중요하다는 사실을 다시 한번 깨달았다. 뭔가 이상하다고 느끼거나, 미묘하다는 건 불확실하다는 것이고, 딱 꼬집어서 표현하거나 끄집어내기가 힘들다는 것이다. 그래서 대부분 그런 상황에 처해졌을 때, '왜 저 사람이 나한테 저렇게 말하지?'라고 생각하거나 '왜 이상하게 기분이 나쁘지?' '내가 예민한 건가...'라고 생각하게 된다.
그런데, 내가 예민해서라면, 모든 관계에서 저런 기분이나 감정을 느껴야 하는 것 아닌가. 하지만 특정 상황이나 관계에서만 그런 감정이 올라온다면, 필시 이것은 내가 예민해서만은 아닐 것이다.
몇 주 동안 인간관계에 대한 고찰을 하면서 지냈다. 이전 글에서도 썼듯이 가까운 지인에게 크게 실망하는 이벤트, (나에게 부정적인 영향을 많이 주는 일)가 있었다. 처음엔 내가 왜 이러지... 이상하게 기분이 나쁘네, 에서 시작했는데, 곧 이 관계의 본질을 파악하게 됐다. 그리곤 분노하고 괴로워했다. 속상하고 슬프기까지 했다. 하지만,이것이 나에게 전혀 도움이 안 된다는 사실을 깨달으면서 조금 명확해지는 게 있었다.
거의 10여 년을 이어온 관계의 실체가 까발려졌고, 이 오랜 관계의 본질을 알아버리게 된 것이다. 그동안 이 관계를 유지해 오며 당연히 좋은 점도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보다는 부정적인 영향을 훨씬 더 많이 줬다는 점. 그래서이 관계에서 종종 불편함을 느꼈었다는 것이다.
가장 나쁜 것은 나에 대한 주관적인 평가나 어떤 일에 대한 단언, 나를 있는 그대로 인정해주지 않고, 그것도 모자라서 교묘하게 깎아내리려는 행동들이었다. 그것이 무의식적으로 자신도 모르게 행해진 것이었을지라도, 상대방에게는 아주 안 좋은 영향을 줄 수 있다. (* 타인에 대한 평가는 진짜 조심해야 한다.)
그래도 친한 사람의 범주에 들어있었기에, 그냥 넘겼던 부분들이 많았었는데, 이것이 가장 큰 나의 실수였다.
내 감정을 정확하게 알아차리지 못했었기에, 그저 기분이 나쁜 채로 넘어갔던 일들이 결국에는 터지고 말았고, 한번 나의 감정을 알아차리고 보니, 이제 다시는 예전처럼 모르는 척 넘어갈 수 있는 관계가 될 수 없는 것이다.
진즉에 조금 더 내 감정을 들여다볼걸. 관계가 불편해질 것을 우려해서 그냥 내 감정을 어물적 넘어가주지 말 걸. 솔직하게 기분 나쁜 지점들에 대해서 한 두 번 이야기를 해 보았었으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지금은 이미, 너무 많이 온 느낌이다.
그러니까 내가 내 감정을 알아차리지 못해서, 알아주지 않아서 일이 더 커진 느낌이다. 힘들거나 외롭거나 슬프거나, 기분이 나쁠 때, 스스로 그대로의 감정선을 따라가자고, 그 감정을 알아봐 주자고 생각해 본다. 괜히 센 척, 나는 전혀 힘들지 않다고, 외롭지 않다고, 기분 나쁠 일도 아니라며 넘어가지 말고, 내 마음속에 이런 감정이 왜 올라왔는지 찬찬히 들여다보자고.
그 과정을 반복하다 보니, 이제 조금 차분해졌다.
어렴풋하게나마 내가 지금 무엇을 원하는지도 알 게 된 거 같다.
결국에는 '나'에 대한 집중과 행복으로 귀결되었는데, 실은 아직도 많이 심란하고 어지러운 상태. 그래도 내 마음을 알아봤으니, 아직 온전하지 않은 마음이 더 상처받지 않게, 스스로라도 물어봐주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