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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잔별 Jan 06. 2024

 아프다, 서럽다, 혼자다

2024년 새해를 송구영신 예배와 함께 감사한 마음으로 맞이했다. 1월 1일은 본가에서 엄마가 끓여주신 떡국을 먹고 전 날 새벽에 잠든 관계로, 대략 빈둥거리거나 누워서 안락하게(?) 보내고 집으로 잘 돌아왔다. 1월 2일은 간략하게 업무만 처리하면 되었지만, 문제가 터졌다. 그날이 예상보다 빨리 돌아온 것이다. 나는 지극히 심한 생리통 보유자이다. 행여나 급할 때 떨어질까 봐 여성 전용 진통제를 두 통씩 쟁여둔다. 내 경우엔 타이레놀도 들지 않는다. 허리부터 배는 물론이고 머리까지 아픈 게 컨디션이 영 좋지 않았다. 입맛이 뚝 떨어졌지만, 독한 약을 4시간 주기로 투약해 주어야 하기 때문에 뭐라도 먹어야 했다. 억지로 먹은 누룽지죽이 문제였을까. 저녁부터 편치 않던 속 때문에 잠을 잘 수가 없었다. 진통제에 소화제까지 때려 부어도 조금도 나아지질 않았다. 급체를 한 건지 윗배가 딱딱하게 굳어있고, 엄청나게 아프고, 손발은 혈액순환이 되지 않아 차디차다. 게다가 생리통까지 겹쳐서 하늘이 샛노랗게 보일 지경.  


이렇게 극심하게 아플 때 약을 사다 주거나 병원에 데려갈 사람이 없다는 게 서러워지는 지점이다. 혼자 살면 모든 걸 혼자서 처리해야만 한다. 그러니까 아파도 모든 건 혼자서! 밤새 끙끙 앓고, 자다 깨다 잠을 거의 이루지 못했다. 새벽에 거실 소파에 앉아 119를 불러야 하나 잠깐 고민했다. 정말 죽을 것만 같았다. 이대로는 안 될 것 같아서 수지침 도구를 꺼내서 엄지손가락을 찔렀다. 눈물이 찔끔 났다. 양손을 다 땄는데도 나아질 기미가 없었다. 그렇게 새벽 내내 혼자 앓으면서 그날만 되면 나를 살뜰하게 보살펴주었던 남편 생각에 또 눈물이 났다. 언제나 다정했던 남편은 이제 내 곁에 없고 나는 싱글 침대에 누워서 오로지 혼자서 아픔을 견뎌야 했다. 그래, 혼자라는 건, 이런 거였지. 아픈 것도 셀프. 치료도 셀프. 마음 다 잡는 것도 셀프. 어차피 인생은 셀프라지만, 이렇게 아플 때는 누구라도 곁에서 도와줘야 한다. 아픈 사람한테 그러는 거 아니다.ㅠㅠ


차곡차곡 잘 견뎌내고, 겨우 겨우 균형을 잡아가던 마음에 균열이 생기는 순간. 서러움이 왈칵 밀려들고, 혼자라는 사실을 실감한다. 앞으로 더 많은 시간, 더 많은 이런 순간들이 생길 것이다. 그때마다 울 수는 없는데, 나는 이제 어째야 하나... 새해벽두부터 사람 마음을 슬프고 아프게 하다니 하늘도 참 무심하다 싶었다.


이전에도 혼자 살았으면서... 괜히 유난스럽다 싶다가 또 그런 게 아니다 싶다. 진심으로, 앞으로 혼자 살면서 아프거나 외롭지 않으려면 몸도 마음도 더 건강해져야 되겠다 싶다. (그런데, 아프고 싶어서 아픈 사람이 어디 있냐고... 아픈 순간은 불쑥 찾아오는데 그걸 어떻게 대비하냐고...오...)


이번 한 주 그렇게 바짝 아프고 서럽게 보냈다. 친구들과 오랜만에 만나려던 모임도 나가질 못했고, 며칠을 죽으로 연명하면서 자극적인 마라샹궈를 견뎌내 주었던 나의 건강한 위장을 그리워하면서... '아프니까 중년이다'를 떠올리다, 그래도 새해인데 좀 더 긍정적으로 마인드맵을 짜 보자고 애써 마음을 부여잡으면서... 그나마 이번 주 녹화가 미뤄져서 일이 별로 없었다는 사실을 감사해하면서.


누구나 서러워지는 순간이나 지점이 있을 텐데, 어떤 순간들인지 갑자기 궁금해진다. 그리고 혼자 사는 사람들이 아플 때, 어떻게 이겨내는지 극단의 처방책이 있는지도. 나는 그냥 혼자서 죽을 둥 살 둥 견뎌내다가 다음 날 오후가 되어서야 겨우 약국에 가서 여러 가지 약물을 처방받고 난 후에 조금 나아졌다.


예전에도 알고 있었지만, 혼자 사는 건 쉽지 않다. 혼자서 잘 사는 건 더더욱, 혼자서 멋지게, 건강하게 사는 건 더더욱 그렇다. 나이를 더해감에 따라서 난이도는 더 높아지는 것만 같다. 이건 확실히 그렇다.


갑자기 2024년 새해 소망이 생겼다. 혼자서, 지금보다, 더 멋있고 건강하게 살아보는 것. 주변의 소중한 인연들과 건강한 관계 맺기, 내게 온 일들에 감사하며 성실하게 잘 해내기. 일이든 사람이든 '진짜'라고 생각되는 것에 '진심'을 다하면서, 스스로 만족할 만한 2024년을 한번 살아보겠다. 그러니까, 결론은 아프지 말아야 한다. (아프면 시원한 맥주에 마라샹궈 못 먹는다.)


모두에게 건강하고,

행복한 새해가 되기를 빌어본다.

진심으로!

Happy New Yea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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