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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잔별 Dec 08. 2023

바쁜 게 약입니다

헤야 할 일이 많으면 머릿속이 온통 뒤죽박죽이다. 어떤 일부터 처리해야 할지 머릿속에선 우선순위를 가려내고, 순위가 정해지면 할 일을 쳐내느라 온 신경이 집중된다. 당연히 자기 전에도 해야 할 일을 헤아리게 되고, 못다 한 일에 대해서는 스트레스가 쌓인다. 가능한 용량의 뇌가 풀 가동된다. 윽. 생각만 해도 스트레스가 올라온다. 그런데, 요즘의 이런 일상이 나에겐 나쁘지만은 않다.


가뜩이나 생각이 많아지고 하릴없이 쓸쓸해지는 연말이 아닌가. 날씨는 구리구리한 회색빛이고, 찬바람은 부는 데다 따듯하게 손 잡아 줄 이도 없는 연말이다. 이 와중에 시간마저 많다면, 나는 어떤 생각들을 하면서 어떤 하루를 보내고 있을지 생각만 해도 아득하다. 다른 잡념이 끼어들 틈 없이 일이나 할 수 있다는 게 감사한 나날을 보내고 있다. 그야말로 바쁜 게 약이라는 말이 실감 나는 요즘이다. 오늘도 하루 종일 머리를 쥐어뜯으며 스타벅스에서 분노의 자판을 한참 두들기고 집에 돌아와서 맥주를 벌컥벌컥 마시면서 생각했다. 아, 다행이다. 일도 하고 돈도 벌 수 있으니 그래, 이만하면 괜찮은 거다.


그렇지만, 당연히 시발비용은 발생한다. 어제는 깃털처럼 가볍고 따듯하다는 구스패딩을 큰 고민 없이 질렀고, 오늘은 마음 놓고 맥주를 마실 있는 권한을 자가 허락했다. 비록 어깨는 결리고 눈도 침침하지만, 바빠서 다행, 이라고 생각한다. 적게 벌더라도 내 일상을 챙길 수 있는 소소한 삶을 추구했던 나는 일시적으로 워커홀릭이 되어보기로 했다.


그러니까 인간은 그 어떤 것도 장담하지 말고, 어떤 것도 단언하지 말아야 한다. 언제, 어떤 상황에서 자신이 어떻게 변할지 아무것도 알 수 없으니까. 다만 중요한 것은, 그 어떤 순간에도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을, 할 수 있는 선 안에서 해 나가면서, 자신을 지켜가면 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어쨌든 나는 나답게 살고 있다.


지금의 나는 이런 모습이고, 이런 모습들 뒤에는 또 어떤 모습이 올지 알 수 없으므로, 현재의 바쁜 나를 독려해 주고, 지지해주고 싶다. (너, 진짜 겁나, 열심히, 지금 현재로는 엄청나게 최선을 다하고 있다고.)


문득 다른 이들은 어떻게 살고 있을지 궁금해진다.

각자의 인생 길이 다르더라도 종국에는 모두 행복해지고 싶은 바람으로 모이지 않을까. 그런 바람들을 진심으로 응원하고 지지한다.



지나간 추억의 가요나 들으며 한 없이 울거나 웃고 떠드는, 바쁘지 않은 시간이 그리워지는 겨울밤. 서로의 굴곡 많은 인생 이야기나 시시콜콜한 수다. 다른 이의 이야기가 궁금해진다. 만약에 살다가 어디서든 만나게 되면, 서슴없이 말할 수 있으면 좋겠다. 술도 고프고 사람도 고픈 이 겨울이 바빠서 참 다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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