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잔별 Nov 24. 2023

할 수 있는 건 다 해보기로 했다

우울증에 걸린 사람에게, 여느 위로가 큰 도움이 안 되는 이유는 그들에겐 그 위로를 받아들일 마음의 공간이 너무 부족하다는 사실 때문이다. 마음의 여유나 무엇을 하고자 하는 의욕이 거의 바닥난 이들에게 산책을 하라든지, 어떻게든 힘을 내보라고 말하는 것은 별다른 도움이 되지 않는다. 의욕이  없다는 게, 사람을 얼마나 무기력하게 만드는지 나도 알지 못했었다. 아무것도 하지 않지만 격하게 더 아무것도 하기 싫은 상태. 나의 경우엔, 나를 위해 정성스럽게 해 오던 요리를 거의 멈추었다는 게 일상에도 변화를 가져오기 시작했다. 생각해 보면 요리만큼 의욕적이고 적극적인 행동이 얼마나 있을까 싶다. 재료 손질에서부터 조리와 치우는 일까지 수고로운 일들도 귀찮아하지 않으니 말이다.


의욕이 없는 현실은 크게는 일상을 멈출 만큼 가공할 만한 위력이 있다. 그런 생활이 길어지면 진짜 아무것도 못하게 될까 봐, 삶의 방향이 이렇게 그냥 흐를까 봐 두려웠다. 하지만, 나는 억지로 힘을 내는 일 따윈 하지 않기로 했다. 조금씩 내가 할 수 있는 일들을 찾았다. 이를테면 가벼운 산책부터, 가족들과 가까운 사람들을 만나는 것, 요가를 시작했고, 믿을 수 있는 사람이 주는 일을 했다. 아직 요리를 하는 경지까지는 도달하지 못했지만, 이사를 하면서 인테리어를 내 취향에 맞게 바꾸고 가까운 지인들을 초대하기도 했다. 어떻게 보면 거의 일상이 제자리로 돌아온 것처럼 보였다.


그런데, 내 삶에서 빠져 있는 게 있었다. 바로 재미와 즐거움 행복 같은 긍정적인 기분들. 그리고 여전히 아직은 부족한 의욕. 앞으로는 무엇을 해도 인생의 재미를 못 느끼는 인간으로 살아가게 되는 걸까.


이번에는 약간 무리를 해 보기로 했다. 오랜 고민 끝에 독서모임으로 유명한 유료 회원제 모임을 가입했다. 모임은 한 달에 한번 진행이 되는데, 독후감을 반드시 제출해야 하고 모임장이 발제한 질문을 심도 있게 토론하는 방식이다. 나는 <행복의 뇌과학>을 논하는 모임에 가입을 했기에, 뇌과학자님의 짧은 강연도 포함이 되었다. 책을 읽고 강연을 듣고, 토론을 하면서 적잖이 자극을 받았다. 세상에는 이렇게 열정적인 사람들, 자신의 행복을 적극적으로 추구하는 이들이 많구나.


'나도, 다시 행복해지고 싶다.' (그래도 되겠지...?)


긍정적이고, 나름 진취적으로 삶을 살아왔지만, 이제는 인생의 재미와 긍정을 믿지 않게 된 내가, 다시 긍정에로의 길로 눈을 돌린 것이다.


'그래, 이번에는 할 수 있는 건 다 해보자!' 싶었다. 이런 마음이 올라오게 된 것만으로도 정말 큰 발전이라고 생각한다.


그 첫 번째가 용기를 내서 4개월짜리 독서모임을 가입한 것이다. 독서모임에서 뇌과학자님이 가르쳐주신 몇 가지를 매일은 아니지만 실천해보고 있다. 걷기보다 러닝이 뇌의 긍정성에는 더 폭발적인 힘이 있다고 하셨기에, 숨을 헉헉대면서도 간헐적으로 러닝과 걷기를 병행하는 산책을 하고 있고, 혼자 지내는 것보다 억지로라도 사람들을 만나는 게 좋다고 하셔서 사람들과의 만남도 조금씩 늘려가려고 하고 있다. 가까운 대학동기들과 한 달에 한번 만나 서로의 신상을 응원해 주는 소모임도 만들어졌다. (이건 물론 억지로가 아니라 여러 가지 서로의 니즈가 합쳐져서 자연스럽게 성사가 되었다.) 또한 자신의 스트레스 요인을 객관적으로 들여다보기 위해 팩트와 감정을 되짚어보는 Brain writing, 그리고 감사 일기도 꾸준히 써보기로 했다. (이들의 효과는 몇 달 후 다시 리뷰해 봐야겠다.) 감사가 좋다는 건 알고 있었지만, 직접 글로 써 보는 건 다르다는 것도, 몇 번 감사 일기를 직접 써보면서 체혐했다.


이렇게 나는 내가 할 수 있는 건 다 해보는 중이다. 지속성이 얼마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이런 시간들이 분명 나를 더 나은 곳으로 데려다줄 것임을 믿는다. 믿어보기로 한다.


다시 인생의 재미와 즐거움, 행복을 느끼는 소소한 행복형 인간이 될 수 있을까?


여전히 가슴 한켠엔 숙제처럼 자리 잡은 처리하지 못한 감정들이 많다.


할 수 있는 만큼 하면 된다.

무리하지 않는 선에서,

자신을 지켜가면서,

있는 그대로를 바라보면서.


나는 충분히,

너무나, 행복해질 가치가 있는 존재 :)




이전 04화 인생의 재난이 지나간 자리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