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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잔별 Nov 17. 2023

인생의 재난이 지나간 자리

이만하면 행복하다 싶은 순간들이 자주 있었다.

하지만, 길지 않았다.

인생은 그리 호락호락하지 않았다.



삶에 불행의 그림자가 드리울 때 미리 알아차릴 수 있다면, 우리는 그 불행을 피할 수 있을까.


앞으로 너는 무언가를 잃을 것이고 거대한 슬픔이 쓰나미처럼 밀려들 것이니 마음의 준비를 단단히 해 두어라.라고 누군가 말해 준다면?


알고 겪는 슬픔이 덜 슬플까.

모르는 게 약이라고, 그 편이 좀 덜  아플까.


하지만, 우리는 모두 앞날을 알지 못한 채 살아간다. 지금의 일상이 앞으로도 비슷하게 이어질 거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안일하게 살아간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미래를 알 수 없다는 사실이 모두에게 공평하다면, 닥친 현실이 누구에게나 공평하지 않다는 게 인생의 함정이다. 그리고 함정에 빠진 후에만 그것이 함정이었음을 알 수 있다. 그래서 함정인 것이다.


인생이 뒤통수를 (*졸라 세게) 후려갈겼다. (*저 표현이 적확하므로 쓰기로 했다.) 전혀 예상하지 못한 방식으로, 예기치 않은 순간에. 인생 전체를 집어삼키면서.


그간 지켜왔던 신념(남에게 해를 가하지 않으면 스스로도 해를 당하지 않을 것)이나 스스로를 지탱해 왔던 의지는 아무 소용이 없었다. 당장은 어떤 일이 벌어졌는지조차 알아차리기 어려웠다.


나는 인생에게 배신당했다.


인생이 갑자기 행로를 틀어 한 순간 저 깊은 슬픔의 우물로 떨어뜨렸을 때 할 수 있는 일이 없었다. 다만, 이 고통의 생각들을 멈출 수만 있다면, 내일 아침 눈을 뜨지 않아도 좋다. 온 세상이 멸망해 있었으면 하고 바랐을 뿐이다. 그동안 마음의 방에 차곡차곡 채워놓은 따듯한 온기와 사랑의 기억, 지나간 젊은 날의 찬란함과 다가올 미래에 대한 희망의 빛이 스위치 OFF상태로 꺼져버렸다. 목구멍에서 뜨거운 눈물이 차오르듯 슬픔의 우물만 깊어질 뿐이었다. 한 번도 경험해보지 못했던 세계가 그곳에 있었다.


그동안 내가 믿었던 안전한 세계가 깨져버렸고, 그 속에서 나는 철저하게 혼자였다. 나는 믿었던 인생에게 배신당했다. 원망이 그쪽으로 가면 할 수 있는 게 거의 없다. 원망은 분노가 되고 슬픔의 우물엔 부정적인 감정들만 쌓여간다. 시간은 아주 느리게 흘러갔다.


행복도

희망도

미래도

긍정이 모두 사라진 세계.


멈춰버린 시간 속에서 아주 오래, 천천히, 생각하고 또 생각했다.


나는 스스로의 힘으로 제어할 수 없는 불가항력적인 일을 '인생 재난'이라고 명명하기로 했다. 살아가면서 누군가는 선함과 악함의 구분 없이, 재난을 당하게 될 수도 있는 것이다. 평생 재난을 겪지 않고 살게 되는 운 좋은 사람들도 많을 테지만 말이다. 하지만 여전히 불공평하다고 생각한다. 재난급 불행을 왜 내가 겪어야 하는지, 나는 로또급 행운을 바란 게 아닌데, 왜 나였어야 하는지. 왜 우리에겐 이런 일들이 벌어지는 것인지.


간신히 몸과 마음을 추슬러 그토록 바랐던 일상으로 돌아왔다. 일상은 여전히 잘 굴러가고 있었다. 다들 그렇게 별다를 것 없이, 조금의 희망을 품고서. 인생이 언제 뒤통수를 후려갈길지 모르므로 계속 안일하게, 평범을 꿈꾸면서. 그것이 평범인지 아닌지도 모르면서.


알 수 없으므로 '안일'한 삶은 그래서 '평범'하다 여겨진다.


누군가 말해주었다. 재난이 있었으므로 재난이 없었던 때로 돌아가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그래도 분명 그 재난의 기억과 고통들은 희미해지고, 어떻게든 살게 되더라고.


인생 재난이 지나간 자리.

폐허가 된 마음에도 다시 꽃을 피울 수 있을까.


뒤통수를 얻어맞았지만,

다시 안일하게 평범하게 살아가고 싶어 진다.


오늘은 여기까지만 생각하기로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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