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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잔별 Jan 26. 2024

엄마를 슬프게 해서 미안해

내가 어려운 일을 당했을 때, 그 누구보다 아파하고 나를 걱정해 줄 사람이 지구상에 단 한 사람 있다면, 그것은 바로 '우리 엄마'일 것이다. 그리고 내가 기쁜 일이 생겼을 때 역시 그것이 마치 자기 일인 것처럼, 기뻐하고 감사하게 여겨줄 이 역시도 '우리 엄마'일 것이라고 생각한다. (전자의 경우, 그러니까 힘들고 아픈 일을 당했을 때는 무조건 우리 엄마밖에 없다는 생각이 바로 떠올랐고, 그래도 기쁜 일의 가정하에서는 엄마 말고도 몇몇 사람의 얼굴이 스치기는 했다.)


인간은 모름지기 자기 일이 아닌 경우, 자기 일처럼 생각하기가 어려운 동물이다. 당연한 논리다. 내가 직접 겪은 일이 아닌데, 어찌 내가 겪은 일처럼 생생하게 기쁨이나 아픔을 느낄 수 있겠는가, 다만, 헤아려 짐작하고 그 가까운 마음을 함께 느끼려고 노력하는 것일 게다. 사실 이런 정도는 아주 최상급 공감이고, 대개 자신이 겪지 않으면, 쉽게 공감하기가 힘들다. 최악의 경우는, 나만 아니면 된다고 느끼거나 행동하는 일이고.


나이를 먹고 이런저런 인생의 풍파를 겪으며 다행히 나는 좀 더 진화된 인간으로 성장했다고 생각한다. 예전엔 이해할 수 없는 일들을 이해하려고 하고, 자기 객관화의 중요성을 알게 됐다. 무엇보다 어떤 기준이나 목적을 위해 살지 않는다. 그 기준이나 목적이라는 것들이 사실은 쉽게 변하거나 절대적이지 않다는 것을 알게 됐기 때문이다. 또한 현재의 나를 인정하고 자족하는 삶을 살기 위해 부단히 노력한다. 이 부분은 우리 엄마에게서 배운 삶의 지혜이다. 70여 년의 엄마의 삶을 돌아보면, 오직 '가족'이라는 명제가 남는다. 언제나 가족을 위해 배려하고 내어주는 그녀의 삶에서 여전히 많은 것을 배우게 되고 감사하는 삶으로 나아가게 된다.


2022년은 나에게도, 우리 가족에게도 감당할 수 없을 만큼 힘들고 괴로운 한 해였다. 누군가로부터 비롯된 불행은 아니었지만, 나 때문에 가족들도 무거운 아픔을 겪게 됐다는 게 너무 고통스러웠다. 그래서 마음 놓고 아파할 수도 없었다. 내가 힘들어하면 나보다도 더 힘들어할 가족들, 그리고 엄마의 고통이 너무나 선명하게 보였다. 그런 가족들의 고통과 진심 어린 위로, 묵묵한 지지를 바탕으로 버티고 버텨 현재를 마주할 수 있게 됐다. 나는 이제부터 더 잘 살면 되는 것이다. 과거에 매몰되지 말고, 미래에 사로잡히지 말고, 오직 현재를  살자. 나에 대한 집중으로 나아가자. 그리고 주변을 돌아보자. 나를 위해 매일 기도 하시는 부모님이 있고, 나의 행복을 누구보다도 빌어 줄 사람들이 곁에 있다. 그리고 가능하면 엄마를 다시 기쁘게 해드리고 싶었다.


그런데, 아직도 나는 엄마를 자주 슬프게 하는 것 같다. 엄마는 정말 나를 위하는 사람이니까, 내가 이런 이야기를 해도 다 들어주는 사람이니까, 내가 숨을 쉴 공간은 그래도 엄마니까,라고 생각해서 뱉은 말들이 사실은 엄마를 아프게 하거나 슬프게 하지는 않았는지, 내가 너무 내 생각만 하고 사는 건 아닌지, 나는 여전히 엄마에게는 너무 서툰 어른인가 싶다.


일전에 엄마한테 인간관계의 힘듦과 가족들에게 서운한 점을 이야기했다. 이야기를 하다 보니 서러움이 폭발했다. 차오르는 눈물을 참기가 힘들었다. 잘 지내려고 매 순간 노력하고, 나를 돌보며 살아가고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매 순간 인생은 시험의 연속이고, 도전이다. 여전히 버겁고 힘겹다. 그리고 그날은 유난히 외롭다고 느꼈던 날이기도 했다.


내 이야기를 다 들으신 엄마가 말씀하셨다. '그래도 앞으로의 네 인생은 얼마든지 펼쳐질 수 있다고, 딸아, 잘 살아, 잘 살자, 엄마가 미안해.'라고 하시는 게 아닌가. 엄마가 미안할 일이 뭐가 있느냐는 말이다. 엄마란 존재의 한 없는 사랑을 이해할 수 없다. 감히 이해할 수가 없는 것이다. 여전히, 아직도, 어리석은 딸은 생각한다. 다짐에 가까운 말을 조그맣게 내놓는다.


엄마를 슬프게 해서 미안해.

나는 이제, 더 잘 살아볼게,
엄마를 슬프게 하지 않을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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