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인턴블로그 Take9
20150630 한국 복귀 삼주 차, 올해의 반토막
마지막 비문
태어나서 처음 가본 해외여행, 중이병 시절, 대학교 한 학기, 인턴 5개월
미국은 어쩌면 내가 원했던 것 보다 더 많이 마주친 나라였다.
초등학교 3학년 때부터 의무교육이었고, 뜨거운 영어 사교육 열풍에 같이 뜨거워했고, 가장 낯익은 외국어여서 그랬는지 아니면 그냥 노출이 잦았는지
접할 기회도 많았고, 동경하던 시절도 부정할 순 없다.
하지만 더 이상 미국에 갈 일은 없을 것 같다.
미국은 분명 배울 점이 많은 나라다.
낯선 이에게도 웃음과 친절을 아끼지 않는 사람들, 돈 많은 사람들의 기부 문화와 그로 인해 가능했던 다양한 창작과 표현, 수 많은 연구들, 자신이 옳다고 믿는 일에 나서는 걸 주저하지 않는 사람들, '차보다 사람이 먼저죠'의 실사판 차도 위 모세의 기적, 뭐가 그리 당당한지 내게 그리 소리를 질러대던 노숙자들, 금요일 퇴근시간이면 곳곳에 보이는 꽃을 든 남자, 여자, 좁은 엘리베이터에서는 백팩을 벗어 들고 타는 배려, 차도 바로 옆 자전거 도로에서는 좌회전할 때 왼 팔을 90도로 들어주는 센스, 인종이나 출신 국가에 대해서는 여전히 짓궂은 것 같지만 적어도 한국보다는 훨씬 부드러운 성역할과 고정관념, 나와 너무 다른 타인을 이해할 수도 받아들일 수도 없지만 결혼이라는 미친 짓 해볼 테면 어디 다 같이 한번 해보자는 최근의 Love Wins 대법원 판결, 미국 최초의(1733) 계획도시 Savannah에 두 블록 건너 하나씩 있던 공원, 게다가 엄청 큰(4000 m2) 공원인지 울창한 광장 인지도 있어서 이 사람들은 그 옛날부터 얼마나 풍요로워서 이런 믿기 힘들게 살기 좋은 도시를 구상하고 있던 건지, 아무튼 나라가 부강해서 그런가 자기 밥그릇에 연연할 필요 없는 쿨함, 높으신 분들의 의전lessness, 내 일만 제대로 한다면 상사보다 늦게 출근을 하던 일찍 퇴근을 하던 가타부타 않는 파격적인 일터, 테라스 기대는 의자에 앉아 악기와 와인을 즐기는 저녁이 있는 삶, 많은 이가 테라스를 가질 수 있는 그 정도의 영토, 먹고사는 일 말고도 자원봉사나 여가 활동에서 또 다른 자아를 만들어가는 사람들, 다수와 일치하기보다 자기만의 길을 닦아보려는 자긍심, 누구나 누릴 수 있는 무료 박물관의 놀라운 퀄리티, 안전에 대한 확실한 우선순위, 공간이 넉넉지 않다면 보통 화장실 두 칸보다 장애인 화장실 한 칸을 만드는 정도의 감수성, 그리고 그로 인해 길어진 화장실 줄을 기꺼이 기다릴 수 있는 시민의식
하늘과 땅이 같은 모습인 나라는 지구 어디에도 없겠지만
미국은 그러기 위해 노력하는 것 같아서 좋았다.
하지만 역시 내가 걸어온 만큼만 내 세상인지
내가 길러진 방식과 일생 대부분 몸담았던 문화가 익숙하고 편하다.
공공기관에서 말 한마디 붙여보려면 오만 반나절을 기다려야 하고, 이것이 여유인지 속 터짐 인지 확실한 일처리인지 그를 빙자한 게으름인지, 역시 한국이 기적을 이룬 것의 팔 할은 8282 정신(이고 기쁨을 잃은 팔 할도 8282?)인지, 부자들이 안 타서 그런지 도심에서조차 형편없는 대중교통, 평화를 사랑하지 않는 세계 경찰, '정'이란 것을 일대일로 치환할 순 없겠지만 만날 때마다 반가워해주면 뭐해 말하다 말고 딴 사람 만나러 익스큐즈미 하고 가버리면,
듣는 사람의 입장을 고려하기보다는 자신이 해야겠다는 말을 하는 것은 나로서는 놀랄 일이다.
나 방금 민주주의가 어색하다고 말한 거니...?
나는 선진국의 갖춰짐이나 선진함(?) 보다는 발전 중인 국가들의 가능성에 매료되는 것 같다.
이제 중국에 가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