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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준스키 Oct 22. 2023

내 자식이 소중한 만큼

우리는 모두 소우주

컴플레인의 목적


내 자식이 소중한 만큼 누군가의 자식도 소중하다. 다 아는데 못 푼 시험문제처럼, 이렇게 당연한 사실을 망각한 채 갑질이 일어난다. 진상은 내가 어느 정도의 진상인지 잘 모르는 경우가 많다. 갑질이 갑질인 줄도 모른다. 당연한 권리인 줄로 착각하는데, 이 착각이 착각인 줄도 모른다. 메타인지가 부족한 진상들은 누군가가 자신들의 모습을 알려주어도 알아차리지 못할 것이다.  인생을 한바탕 연극이라고 하고 내 인생이라는 한 편의 연극을 본다고 생각하면 쉽게 갑질할 수 없을 텐데, 연기에 너무나 몰입한 나머지 진상인 줄 모르고 그만 갑질을 저질러 버리는 무책임한 배우들이 널려있다.


보통의 부모라면 아이와 관련한 일에서는 아이가 불편을 줄 수 있어 미안해하고, 조심한다. 내 새끼가 소중한 만큼 다른 사람도 소중하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배려는 당연한 것이 아닌데도 자기 자식을 타인이 자기 자식처럼 키워주길 바라는 것이 당연히 권리라고 생각하는 부모들이 있다. 스스로의 인생을 혼자서는 온전히 책임지지 못하는 사람이라서 그런 걸까.


모든 악성 민원은 목적을 가지고 있다. 에너지가 소모되는 일이라 목적 없는 할큄은 없다. 자신이 겪은 불편을 배상받고 싶거나, 사과와 위로를 받고 싶어서이다. 민원인의 생각 속에서 피해자인 내가 옳기 때문에, 결론은 이미 정해져 있다. 논리는 필요 없고 말꼬리는 화를 돋우는데 좋은 재료가 된다. 감정을 풀어내는 데는 배상이 필요하다. 많은 이유들의 포장을 벗겨보면 결국은 돈이다. 돈이 사람을 움직이게 하고, 돈이 돌지 않으면 학교도 회사도 존재하지 않는다. 우리가 사는 세상의 존재 방식이 그렇다. 사랑만이 사람을 움직이게 한다면 좋겠지만 그런 세상이 있기나 할까. 


 그녀가 중환자실에서 본 것


어떤 경험은 삶을 다르게 만든다. 죽음 가까이에 갔던 사람들은 삶을 다르게 산다. 그전으로 돌아갈 수가 없다. 임사체험을 하고, 극적으로 병을 극복한 아니타 무르자니라는 작가가 있다. 『그리고 모든 것이 변했다』는 책에서 그 경험을 너무도 아름답게 담아냈다. 중환자실 죽음 가까이에서 임사체험을 하는 동안 "우리 모두가 연결되어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전체 생명과 떼려야 뗄 수 없이 복잡하게 얽혀 있고, 우리는 모두 '하나'이며 각자는 집단적 전체에 영향을 주고 있다"라고 한다. 


우리는 사랑으로 이어진 하나다. 이 논리적으로 이해되지 않는 말은 임사체험을 경험한 인플루언서들에게서 공통적으로 들을 수 있는 말이다. 무르자니는 자신의 심각한 병을 낫게 한 치유의 핵심은 '나를 사랑하는 것'이라고 했다. 자신을 소중히 여겨본 적도, 스스로를 소중히 여기라는 격려를 받아본 적도 없었지만 '내가 되는 것'이 곧 '사랑이 되는 것'임을 이해하면서 살아났다고 한다. 


내가 사랑이라는 것을  알면 상대방 또한 사랑이라는 것을 알게 될 텐데, 그런 하나의 존재를 할퀴는 것은 원래 우주의 모습이 아닐 것이다. 건강하지 못한 컴플레인은 자신의 분노와 욕심의 표출이다. 나를 사랑하는 법을, 내가 그 자체로 사랑이라는 것을 배우지 못했을 것이다. 하나로 연결된 우주에서 어떤 것이 좋은 인생이다 아니다 할 수 없겠지만, 사랑이라는 존재를 할퀴는 것은 분명히 좋은 선택이 아니다. 


아직 분리되지 못한 유아들


아기는 엄마와 분리된 것을 인정하기 힘들어한다. 탯줄을 끊고 처음 스스로 숨을 쉬고 울음을 터뜨리면서 독립이 시작되지만, 생각은 아직 엄마의 뱃속 편안한 공간에 머물러있다. 아프고 힘들수록 엄마 품에서 잠들고 싶어 한다. 본능적으로 느끼는 정서적 안정감은 생존에 필요한 도움을 얻을 수 있는 존재의 온기로부터 온다. 육아의 최종 목표는 독립이라고 한다. 태어날 때부터 엄마와 한 몸이었기 때문에 그 과정이 순탄치 않다. 사랑으로 이어져있지만, 현실은 분리되어 살아야 한다.


법륜스님은 『스님의 주례사』에서 서로에게 기대지 않고 스스로 설 수 있어야 부부로서 행복할 수 있다고 했다. 내 운명이 나에게 달려 있고, 행복과 불행이 내 손안에 있다는 것을 알아야 비로소 함께 행복해질 수 있다. 결혼할 만큼 나이를 먹어도 스스로의 행복과 감정을 다른 존재에 의존하고 분리되지 못하는 어른들이 있다. 스스로 생각하는 법을 모르고 살아온 여전히 유아.


죽음의 수용소에서 살아 돌아온 빅터프랭클은 "자극과 반응 사이에 있는 공간에서 우리가 성장하고 행복할 수 있는 선택을 할 수 있다"라고 했다. 올바른 선택을 내리려면 그 공간을 인지하고 멈추는 의지와 여유가 있어야 한다. 자극과 반응의 짧은 사이에도 공간이 필요할 만큼 인간은 그렇게 대단한 지적 생명체가 아니다. 


전쟁과도 같은 육아 현장에서는 시간적, 물리적 공간을 둘 틈을 만들기 힘들다. 그래서 어린이집에 보내거나 조력자를 구해 시간과 공간을 분리해 버리는 편이 건강한 육아일 수 있다. 민족과 국가라는 개념이 사실상 사람이 만들어낸 허상인 것처럼, 하나로 뭉친 가족이라는 개념도 환상일 수 있다. 가족이라도 거리를 두고 있을 때 독립된 존재라는 현실을 마주할 수 있고, 그럴 때 오히려 사랑을 비로소 느끼며 하나가 될 수 있다. 


태양계의 모든 행성과 은하계의 모든 별들은 사실은 각자 돌고 있는 별이다. 지구는 달을 돌고, 지구는 태양을 돌고, 태양은 우리 은하의 중심을 적당한 거리를 두고 돌고 있다. 거리를 둘 수록 더 오래간다. 성장할수록 더 먼 거리를 두고 돌아야 한다. 사랑으로 이어져있는 하나의 우주에서, 하나의 존재는 하나의 소우주이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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