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리는 이유
기저귀를 갈며 인생의 의미를 생각하다
아기가 기저귀를 거부할 때가 있다. 설득으로는 잘 못 알아듣고, 연극이나 놀이로 프레임을 바꾸면 순순히 해주기도 한다. 그렇게 시간을 보내다 보면, 인생의 의미에 대해서 생각해 보게 된다. 이런 시간을 보내기 위해 지금을 살아왔나. 아기에게 기저귀를 채우기 위해 보내는 이 시간의 존재 의미는 무엇인가.
인생에 무슨 의미가 있을 것인가에 대해서, 시지프스만큼 공감과 위로를 받는 신화 속 인물도 없을 것이다. 집과 회사를 오가는 쳇바퀴 속에 사는 마치 내 모습 같다며 위로를 받는다. 끊임없이 산 위로 바위를 밀어 올리고 다시 굴러내려 온 바위를 다시 들어 올리는 삶. 시지프스가 못나서가 아니었다. 오히려 영특한 인간이어서 신의 영역에 도전했지만, 결국 거짓말도 하고 미움을 받아 끊임없이 돌을 밀어 올리는 형벌을 받게 된 것이다.
지루하고 때로 화나는 육아 공방이 시지프스의 형벌과도 같이 느껴질 때, 그의 영특함에 대해서 떠올려본다. 내가 멍청해서가 아니다. 세상에 함부로 살아온 사람 아무도 없다. 감히 신의 일에 끼어들어 형벌을 받은 것이 아닐까. 한 사람을 키우는 일은 신의 영역이니 말이다.
다시 굴러 떨어질 돌을 밀어 올리듯 인생에 의미는 원래 없다. 원래 없는 의미를 애써 찾으려 하는 순간부터 다시 사춘기가 시작된다. 욕망과 비합리적인 현실의 괴리 속에서 부조리함을 느끼고 무의미한 인생에 절망하며 진짜 의미 없는 삶을 살게 될 수도 있다. 그러니 의미를 찾지 않고 명분이 없으면 더 힘든 것이 인생이다. 없는 의미를 가져다붙여야 버틸 수 있다.
Happiness is running at your own pace
끝까지 달리게 한 이유
아이가 태어나기 전에도 나는 달릴 수 있었다. 수능대박 아저씨도 그랬을 것이다. 갑자기 나타나 달리는 이유와 명분 그 자체가 되는 아이. 사랑의 깊이를 알아주지 않더라도 아이가 고맙다. 우리 부모님은 내가 달릴 수 있게 해 주셨고, 아이는 달릴 이유를 만들어 주었다. 인생의 주로에서 사투를 버틸 수 있게 하는 힘.
지금은 기저귀를 하느냐 마느냐로 실랑이를 벌이는 아들이 나중에 다시 출발지점으로 돌아올 걸 왜 그리 힘들게 달리느냐고 물을지 모른다. 그때 이렇게 말할 것이다. 시지프스도 아들이 수능을 앞두었다면 바위를 끝까지 산 정상으로 밀어올리는데 진심이었을 거라고. 아빠도 너 수능 대박을 위해 끝까지 달릴 테니 공부나 열심히 하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