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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준스키 Oct 22. 2023

의미 붙이기 기술

달리는 이유

기저귀를 갈며 인생의 의미를 생각하다


아기가 기저귀를 거부할 때가 있다. 설득으로는 잘 못 알아듣고, 연극이나 놀이로 프레임을 바꾸면 순순히 해주기도 한다. 그렇게 시간을 보내다 보면, 인생의 의미에 대해서 생각해 보게 된다. 이런 시간을 보내기 위해 지금을 살아왔나. 아기에게 기저귀를 채우기 위해 보내는 이 시간의 존재 의미는 무엇인가.


인생에 무슨 의미가 있을 것인가에 대해서, 시지프스만큼 공감과 위로를 받는 신화 속 인물도 없을 것이다. 집과 회사를 오가는 쳇바퀴 속에 사는 마치 내 모습 같다며 위로를 받는다. 끊임없이 산 위로 바위를 밀어 올리고 다시 굴러내려 온 바위를 다시 들어 올리는 삶. 시지프스가 못나서가 아니었다. 오히려 영특한 인간이어서 신의 영역에 도전했지만, 결국 거짓말도 하고 미움을 받아 끊임없이 돌을 밀어 올리는 형벌을 받게 된 것이다.


지루하고 때로 화나는 육아 공방이 시지프스의 형벌과도 같이 느껴질 때, 그의 영특함에 대해서 떠올려본다. 내가 멍청해서가 아니다. 세상에  함부로 살아온 사람 아무도 없다. 감히 신의 일에 끼어들어 형벌을 받은 것이 아닐까. 한 사람을 키우는 일은 신의 영역이니 말이다. 


다시 굴러 떨어질 돌을 밀어 올리듯 인생에 의미는 원래 없다. 원래 없는 의미를 애써 찾으려 하는 순간부터 다시 사춘기가 시작된다. 욕망과 비합리적인 현실의 괴리 속에서 부조리함을 느끼고 무의미한 인생에 절망하며 진짜 의미 없는 삶을 살게 될 수도 있다. 그러니 의미를 찾지 않고 명분이 없으면 더 힘든 것이 인생이다. 없는 의미를 가져다붙여야 버틸 수 있다.  

 

Happiness is running at your own pace


살랑이는 봄 냄새, 선선한 가을 냄새가 나는 계절이면 경치 좋은 곳에서 마라톤 대회가 열린다. 출발할 때는 선선한 공기와 사람들의 건강한 열기로 상쾌하지만 점점 페이스는 떨어지고, 숨이 많이 차올라 생사의 기로에 선다. '내가 왜 돈 내고 이 힘든 고행을 하고 있나' 하는 생각이 드는 순간 그대로 포기하고 도망가기도 쉽다. 포기하지 않으면 결국 도달하고, 완주의 기쁨은 주로에서의 고통을 잊게 한다.


함께 달리지 않는다면, 장거리 마라톤 완주는 누구나 할 수 있는 일은 아닐 것이다. 달리다 보면 페이스 맞는 사람들이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며 서로의 주로를 방해하며 힘을 주기도, 오기를 부리게도 한다. 한 러너의 등짝에는 "행복은 자신의 속도로 달리는 것이다."라고 쓰여있었다. 러너가 러너에게 하는 말이면서, 스스로에게도 하는 말. "당신의 속도가 가장 좋은 속도"라는 말은 남들 따라다니지 않아도 충분히 행복할 수 있다는 말이기도 하다. 내 페이스를 모르고 남들 따라가다 보면 쉽게 지친다. 자신과의 사투를 벌이는 사람들에게, 남의 속도가 아닌 나에게  맞는 페이스대로 가라는 것이다. 


누구나 저마다의 목표를 가지고 달린다. 무엇이 더 고귀하고 잘났는지 비교하기 어렵다. 그리고 모두 쉽지 않은 일이다. 나만 인생의 주로에서 사투를 벌이고 있는 것이 아니다. 완주한 나만 대단한 것이 아니다. 무언가를 끝까지 해낸 모습, 자신의 스피드로 달리는 행복한 러너의 모습은 모두 멋지다. 


끝까지 달리게 한 이유


마라톤 주로에서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던 어느 아저씨의 등짝에는 '우리 아들 수능대박'이 쓰여있었다. 그분의 아들이 수능을 잘 쳤을지, 아빠의 마라톤 완주로 힘을 얻었을지 모르지만 그 마음만은 내게도 남아있을 만큼 영원하다. 유난스러운 아버지의 퍼포먼스에 별 관심이 없었을지 모르지만 그 마음만큼은 아들이 알아주면 좋겠다. 인생의 힘든 고통을 이겨내고 살아온 소중한 가치가 바로 자신이었다는 사실을, 그 사랑의 깊이를 언제쯤 알게 될까. 


아이가 태어나기 전에도 나는 달릴 수 있었다. 수능대박 아저씨도 그랬을 것이다. 갑자기 나타나 달리는 이유와 명분 그 자체가 되는 아이. 사랑의 깊이를 알아주지 않더라도 아이가 고맙다. 우리 부모님은 내가 달릴 수 있게 해 주셨고, 아이는 달릴 이유를 만들어 주었다. 인생의 주로에서 사투를 버틸 수 있게 하는 힘. 


지금은 기저귀를 하느냐 마느냐로 실랑이를 벌이는 아들이 나중에 다시 출발지점으로 돌아올 걸 왜 그리 힘들게 달리느냐고 물을지 모른다. 그때 이렇게 말할 것이다. 시지프스도 아들이 수능을 앞두었다면 바위를 끝까지 산 정상으로 밀어올리는데 진심이었을 거라고. 아빠도 너 수능 대박을 위해 끝까지 달릴 테니 공부나 열심히 하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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