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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준스키 Oct 22. 2023

귀여움의 숫자

인생은 기적 

몇 개월이에요? 


22개월 인생이 즐거운 아들과 신나게 산책하다 보면 들리는 말들이다. 지나가는 사람들마다 귀엽다고 한하는 소리가 뒤통수너머로 들려온다. 내 아이가 귀엽다는 말이 하차감보다 더 좋은 느낌이다. 아이가 귀염상인 것 말고, 아기로서 귀여움이 무르익는 서너 살의 그 시기가 존재하는 것 같다. 머리는 크고 몸이 아직 작아 4~5 등신 정도 되는 신체조건이 큰 몫을 한다. 이제 말이 트이기 시작하는, 필터를 거치지 않는 목소리와 꼬물거리는 몸짓. 

 

"요만할 때가 제일 귀엽지, 몇 개월이에요?"


손주까지 손수 키워보신 할머니가 아기가 몇 개월쯤인지 가늠도 하지 못하시는 걸 보면, 생각보다 그런 기억은 빨리 잊힌다. 매달 성장 단계가 달라지는 아기를 키우다 보면 다른 아기들이 몇 개월 정도 되었는지 얼추 예상이 가능하다. 개월수 단위로 친구들과 성장 단계를 비교하며 발달이 느린 건 아닌지 걱정하곤 한다. 성장 과정을 종합운동장 원형트랙을 달리는 것이라고 보면,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는 옆 트랙의 아기가 엄청 신경 쓰인다. 트랙을 다 돌면 다른 시합을 하게 될 텐데, 그 시합에 참여하고 있다 보면 그때 신경 쓰였던 옆 트랙 아기는 생각조차 나지 않을 것이다.


학창 시절에 그렇게 중요했던 세상의 끝에 육신을 데려다 놓을 것 같은 시험 성적 발표도, 졸업하고 나면 까맣게 잊고 사회생활을 하다 보면 계절이 바뀌어도 방학이 언젠지도 모르고 산다. 그때는 중요한데 지금은 기억도 나지 않는 것들로 얼마나 많은 상처를 받고 눈치를 보고 걱정하며 살았었는지. 다만 그때 그 시기도, 숫자들도 잘 기억나지 않지만 그때 진심을 다했던 순수했던 시절이라는 것이 아련히 기억에 남는다. 평생 가는 기억은 아마도 그런 진심일 것이다. 지나가는 아이에게 눈치 볼 것 없이 부끄럼 없이 말을 건네는 것도 소중했던 육아의 기억 덕분일 것이다.  


기억이 사라지더라도 남는 것


영아의 기억은 대부분 사라진다. 언어를 배우지 못해 언어로 표현되는 경험을 저장할 수 없기 때문이라고도 하고, 뇌 발달이 진행 중이라 기억에 필요한 해마와 전두엽의 발달이 미숙하기 때문이라고도 한다. 자신이 이토록 사랑받고 귀여웠던 것을 잊게 되다니, 인생에서 가장 귀여움이 절정인 시절의 기억을 잊고 살아가다니, 너무 아까운 기억상실이 아닐 수 없다. 


행복한 아이는 지금을 산다. 내일도 아니고, 모레도 아니고, 어제 걱정도 아니고 지금을 산다. 그렇게 살아야 행복하다는 천사의 메시지 인가. 지금을 사는 3세 이전의 아기들도 평생을 가지고 가는 기억이 있다. 사랑받았던 기억이다. 김주환 교수는 살면서 필연적으로 만나는 좌절과 실패를 극복해 내는 회복탄력성이 강한 사람들의 공통적인 특징이 있다고 했다. 어린 시절에 무조건적으로 자신을 사랑해 주고 기댈 언덕이 돼 주는 어른이 적어도 한 명은 있었다는 것'이다.


영유아기가 아니어도 사랑은 인생의 전부다. 행복한 기억, 사랑했던 기억은 마음에 새겨진다. 온몸에 새겨진다. 그게 살아가는 힘이자 살아가는 이유다 된다. 임사체험을 하고 우주의 사랑을 느끼는 것보다 살면서 경험하는 사랑의 경험담이 진짜다. 숫자보다 더 중요한 것들이 분명히 있다. 기억나지도 않는 것에 매달리기보다 사랑에 매달리는 것이 낫다. 

 

옹알이는 천사의 언어라고 한다. 마음에서 마음으로 전달되는 언어다. 자신을 좋아해 주는 사람은 귀신같이 알아보기도 한다. 생각도 흐릿, 눈도 흐릿, 기억나지도 않는 아기의 세계 속에도 사랑이 자리 잡고, 아기도 마음을 알아본다. 우주 전체의 암흑물질은 95% 이상을 차지한다고 하는데, 인간의 무의식도 마찬가지다. 우리가 인지하지 못하는 두뇌활동의 대부분을 무의식이 차지하고 있다고 한다. 무의식의 언어는 언어보다 훨씬 더 깊은 울림으로 전달될 것이다. 



인생의 무게로 넘어질 때 필요한 것 

커다란 실패 속에서도 돌이킬 수 없는 상황에서도 인생은 어떻게든 살아진다. 그것조차 삶의 일부고, 소중히 여겨야 한다고 수많은 현자들이 이야기했다. 자신이 반드시 성공할 것임을 믿고, 그것을 알고 있다면 인생의 무게에 짓눌려 쓰러지는 경험은 과정이고, 그조차 소중한 내 인생의 일부라는 것이다. 오래된 노래 "우리가 저마다 힘에 겨운 삶의 무게로 넘어질 때 그 순간이 바로 우리의 사랑이 필요한 거죠"는 아직도 불린다. 결국 사랑만이 남는다.   


인생에 어느 때고 소중하지 않은 시기는 없다. 그러니 세 살 때뿐만 아니라 언제고 사랑이 필요하다. 아이의 지금 시기가 소중하듯 그 소중한 시기를 잘 지켜나가는 아빠의 지금도 너무나 소중하다. 아인슈타인이 기적에 대해서 말했다고 한다. 인생에는 두 가지 삶이 있는데 한 가지는 기적 같은 건 없다고 믿는 삶이고 한 가지는 모든 것이 기적이라고 믿는 삶이라고. 인생은 하루하루가 기적이다. 


그렇게 살자. 오늘 하루가 기적인 것처럼. 아인슈타인이 이렇게 말할 것 같다. 

"아니, 기적이라니까, 기적인 것처럼 살 게 아니고 기적 그 자체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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