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준스키 Oct 22. 2023

매일 변하는 것을 예쁘게 어루만지기

아이는 짧은 삶 아껴 살라고 보내는 시그널

매일 세포가 교체되는 개수, 3,300억 개 


아기를 깨끗하게 씻기고 나오면 정성스럽게 보습 로션을 발라준다. 내 몸에는 이렇게 발라본 적이 없는데 이 아기가 거친 세상으로부터 부드러운 보호를 받는 것처럼 정성을 다해 구석구석 어루만져준다. 아기 피부는 얇아서 쉽게 건조해진다고 한다. 피부가 마르면 바이러스와 세균들이 우리 이쁜 아가에게 침입할 수도 있으니, 로션을 발라주는 일은 세상의 나쁜 것으로부터 보호를 해주는 보호자의 성스러운 의식이 아닐 수 없다. 


아기를 구석구석 어루만져주다 보면 매일 같이 사이즈가 조금씩 달라지는 것이 느껴진다. 이 작은 몸이 어떻게 더 늘어나고 있는지 신기하다. 이 미끌미끌한 로션이 보호해 주는 아기 피부는 곧 사라질 것이다. 하루에도 수없이 많은 세포가 생기고 사멸하면서 아기의 몸은 빠르게 변해간다. 아기가 더 빨리 변할 뿐, 내 몸의 세포들도 매일 다른 나로 만들어준다. 


성인의 몸은 30조 개가 넘는 세포로 이루어져 있고, 매초 수백만 개, 매일 3,300억 개의 새포가 새로 만들어지고 사라진다고 한다. 아기의 세포는 적지만 매일 자라니 회전율은 더 높을 것이다. 그러하니 이 순간, 이 아이와 마주하는 지금은 한 번뿐이다. 모든 순간은 한 번뿐이다. 이렇게 작고 소중한 존재의 순간을 마주할 수 있다는 것에 감격하다가, 다시 오지 않을 시간을 붙잡아두려 부질없이 자꾸만 문지른다. 아가야 오늘도 사랑해. 말없이 말한다. 


사랑이 있는 고생이 행복이다 


백세 철학자 김형석 선생님이 이렇게 말씀하셨다. "모든 남녀는 인생의 끝이 찾아오기 전에 후회 없는 삶을 찾아야 한다. 그것은 사랑이 있는 고생이다. 사랑이 없는 고생은 고통의 짐이지만, 사랑이 있는 고생은 행복을 안겨주는 것이 인생이다."


'사랑이 있는 고생'이라고 하면 아이를 사람으로 키워내는 일 만한 것이 없다. 잘못 들으면 인생의 즐거움이니 기쁨이니 하는 소리로 출산 독려하는 꼰대의 문장이 된다. 아이를 낳지 않기로 선택한 사람들이 의미 없는 인생을 살리라 저주하는 것은 아닐 것이다. 다만 어렸을 때 어른들이 공부 열심히 해야 더 만족스러운 직업을 가질 수 있을 것이라는, 확률 높은 인생 게임의 비책을 한 가지 일러주는 것과 같다. 아기를 사람으로 길러내는 일은 높은 확률로 인생에서 가장 의미 있는 일 중에 하나로 여기게 될 테니 말이다. 


누군가 내게 내 자식이 태어나서 어떠냐고 묻는다면 너무 신기하고 행복하다고, 내 새끼는 정말 다르다고, 꼭 낳아보라고 할 것이다. 부모님들의 결혼하고 애 낳으라는 명절 잔소리는 싸우자고 하는 말이 아니었다. 안 그래도 여기저기서 주제넘은 참견, 이래라저래라 하는 말들로 오염되어 있는데 싸우자고 달려들어서 좋을 게 없다. 무언가 해보라고. 경험하라고. 아이를 낳아야 한다고 하는 어르신들도 진심으로 그 행복한 경험을 해보라고 하고 싶어서, 좋은 뜻으로 하는 말씀이었던 것이다. 알고 보니 명절 잔소리는 악플 같은 공격이 아니라 내돈내산 강추 블로그 같은 말이었다.


짧은 삶 아껴 살라고 보내는 시그널 


매일 아이는 자신만의 방식으로 신호를 준다. 돌이 된 아이는 울다가도 고개를 흔들면 도리도리를 해주고, 손바닥을 펼쳐 보이면 하이파이브도 해준다. 학습에 의한 자동반사인지, 부모에 대한 서비스인지는 알 길이 없지만 엄마아빠의 기억을 기쁨으로 채워준다. 민망할 정도로 다른 사람을 빤히 쳐다보기도 한다. 궁금한 존재와 예쁘고 멋진 것들을 잘 알아본다. 신기한 것이 있으면 눈치 보지 않고 끊임없이 관심을 준다.


아기의 행동은 어른들의 시선에서 자주 예상 밖이지만 이해할 수 있다. 너무도 솔직하기 때문이다. 체면과 부끄러움 때문에 못하는 것들을 아기들은 필터 없이 한다. 숨기는 법도 모르지만 생존이 중요한 시기여서 솔직해야만 하긴 할 것이다. 어른들은 체면과 감정이 더 중요할 때가 있다. 그럴 필요가 없을 때도 말이다. 아기가 

가르쳐준다. 에너지 낭비하지 말고 더 솔직하게 더 표현하고 행복하라고. 


천체 사진을 보면 우주에서 보내는 어떤 신호가 있을 것 같은 신비로운 느낌을 주지만  우리가 보는 예쁜 천체 사진은 실제와 다르다. 전파로 관측하고 수집된 데이터를 가시광선 영역으로 예쁘게 작업한 것이다. 인간의 눈으로 실제 가서 보면 그렇게 보이지 않을 텐데, 인스타 필터 사기 사진보다 보정정도는 훨씬 더 하다. 관측한 신호를 해석하고 예측할 뿐이다. 데이터를 통해 상상해서 그려낸 그림이다. 


첨단 과학이 외계인의 신호를 포착하려 시도하고 우주에서 보내는 메시지를 분석하려 하는 동안 이미 우주는 시그널을 보내고 있었다. 아기는 세상을 따뜻하고 행복하게 살라고 보내는 명확한 신호다. 사랑스러운 것을 더 사랑스럽게 어루만지라고. 소중한 것을 더 소중하게 하라고.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