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준스키 Oct 22. 2023

네가 최고라고, 사실을 말해주기

비교의 행복을 넘어서기

SNS 쓸 때 쓰자


3개월 넘는 긴 여행을 떠난 적이 있다. 홀로 여행 중 가끔씩 사무치는 외로움에 힘들기도 했다. 멋진 곳에서는 꼭 사랑하는 사랑하고 다시 와야지, 하는 생각을 자주 했다. 그때 생존신고를 하는 곳, 마음의 안식처, 자존감을 높여주는 곳은 내 SNS였다. 적어도 그 안에서는 그때의 나는 따봉을 많이 받는 부러움의 대상이고 멋진 생각을 하는 철학자이자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존재였다.


모기 겐이치로 박사는 <아침의 재발견>에서 '아침에 인스타그램에 사진을 하나 올리고, 트위터에 한마디 끄적이고, 페이스북에 좋아요 한 번 누르고 하루를 시작하라'라고 다. SNS 활동으로 뇌가 쾌감을 느끼게 되면 하루의 시작을 활기차게 열 수 있다고 주장한다. 서로에게 자극을 주고, 자기 성장의 기쁨을 느끼라고 한다. 그렇게만 된다면 SNS는 정말 좋은 기능을 가진 도구일 것이다.


다른 사람들로부터 긍정적 자극을 받고, 선한 영향력을 행사하며 함께 발전하기만 한다면 얼마나 좋을까. 긍정적인 측면도 많기는 하다. 온라인 일기장으로 쓰면 생각이 정리되고 새로운 아이디어가 떠오를 수 있다. 어떤 목표를 세우고 도전하는 모습을 보인다면, 공표의 효과로 목표를 이루는데 큰 도움이 될 수 있다. 나중에 올릴 인스타 피드를 상상하면서 그것이 동기부여가 되어, 어떤 목표를 향해 열심히 달려가는, '생생히 그리는 꿈은 현실이 된다'문장을 체험할 수도 있다. 그렇게 SNS는 삶을 더 나아지게도 만든다. 잘 쓰면 그렇다.


우리 부부도 SNS를 참 열심히 했던 젊음이었다. 역사적으로 유행한 SNS는 다 따라다녔다. 싸이 미니홈피, 카카오스토리, 페이스북, 인스타 모두 남들 하는 대로 하거나 어쩌면 더 열심히 했다. 어렸을 때는 그것이 기회가 되기도 했고, 삶의 원동력이기도 했다. 친구를 만나는 창구이기도 했고, 소식을 전하는 안부의 메신저이기도 했다.


지금의 인스타는 적나라한 비교 시스템이다. 기껏해야 파도 타고 스크랩하던 라떼는 이 정도 전국적, 세계적인 비교는 하기 힘들었다. 세계적으로 기회를 얻을 수도 있지만 비교도 세계적으로 일어난다. 무작위로 맞춤형 광고를 찍어내는 세상의 비현실적인 모습이 내 모습이 되지 못해 좌절감을 느끼는 모습이 흔해졌다.


비교의 행복 내려놓기


집에서 대화가 늘고, 진짜 큰 소리로 웃기 시작한 시간이 많아진 것은, 티비를 없애고 우리 부부가 함께 SNS를 지워버리기로 한 시점 이후였다. 진심으로 행복하다고 느끼는 순간이 많아졌다. 그전에는, 육아하면서도 만나는 육아 광고와 쏟아지는 아이템 자랑들이 도움도 되었지만 비교질을 하고 있음을 알아차렸다. 목도 못 가누는 아기의 성장 단계를 개월수에 맞추어 다른 아기와 비교해보고 있던 것이다.


내 자식이 잘 나야 남들보다 잘난 것 같고. SNS를 계속하다 보면 있는 그대로 잘 커주는 데에 감사를 느끼는 것이 아니라 비교와 걱정, 욕망의 굴레 속에서 전전긍긍하며 살게 될 것 같았다. 내 아이에게 좋은 옷 입히고, 좋은 것 먹이고, 좋은 곳에서 자게 하고 싶은 것과는 다르다. 남들보다 조금 더 낫게 한국사회에서 행복을 누리고 살려면 그런 심리도 무시할 수가 없다. 일종의 세뇌로 그렇게 살아왔기 때문에  가슴속 깊은 곳에서는 그런 마음이 들 수밖에 없다. 그래야 잘 사는 것 같아서.


인간은 경험해보지 않은 것에 대해서 자신의 한계에서만 상상하는 경향이 있다. 끊임없이 비교하면서 살아왔기 때문에, 그러지 않는 것을 상상하기 힘들었다. 비교를 통해 자극을 받고 우월감을 느끼는 것도 무시할 수 없다고도 생각했다. 비교 자체를 끊어낼수록, 열등감과 불행은 줄어들 수도 있지만 삶의 동력이 소실될 수도 있다. 하지만 비교우위에 서서 느끼는 심리적 우월감은 위태로운 행복이라는 사실을 나이 들어 알았다. 내가 최고가 아닐 수 있다는 것을 받아들이는 사춘기 같은 과정을 겪은 뒤였다.


정치뉴스나 이슈에 대해 양심적인 의견을 내세우면서 깨어있는 시민인 척하는 것도 그만두기로 했다. 나는 모든 분야에 대해 무적의 지식과 논리를 가진 달변가도 아니라는 것을 받아들이기 시작했고, 다른 편에서 보면 선지자인척했던 내가 얼마나 가소로워 보였을까 싶어 부끄러워졌기 때문이다. 선민의식을 가지는 것은 내가 행복해지는 방법 중에 하나다. 내가 세상에 좋은 영향을 주는 멋진 사람이 된 것만 같은 느낌을 준다. 그건 쉬운 행복이어서 깨지기도 쉽다.


있는 그대로 소중하다는 말


아이를 보고 있으면, '넌 있는 그대로 소중하단다' 언젠가 들었던 그 말이 이해된다. 아이를 키우다 보면 부모 마음을 비로소 알게 된다. 생각해 보면 나도 그런 존재였던 것이다. 나도 아기 때 그런 모습이었겠지. 있는 그대로, 존재로서 아름답고 소중한. 우리 아기처럼, 있는 그대로 소중했던 나다. 아이를 보며 다시 나를 사랑하게 되었다.


아이를 낳고 키우며 SNS를 끊을 수 있게 되었다. 함께하는 시간이 얼마나 소중한지, 아이와 눈 맞추고 함께하는 지금을 살기 위해 인생을 살아왔다고 믿어지게 할 그런 순간들을 만들어 준다. 앞으로도 새롭게 등장할 SNS와도 거리두기 할  생각이다. 다른 사람들이 어떻게 생각하는지 관심 가질 필요는 있지만 그들이 나를 어떻게 생각하는지 보다 내가 스스로 어떻게 생각하는지가 훨씬 중요하다. 이래라저래라 시키고 참견하는 말들은 또 얼마나 많은가. 행복한 모습이라고 알려져 있는 모습을 인생의 목표로 잡아서 살고 있지는 않았던가. 귀여운 아기를 보고 있으면, 인생의 목표는 이미 이루어진 듯하다. 최고의 작품도 만들어낸 듯하다. 언젠가 아기에게, 이렇게 말할 것이다..


 '네가 인생을 살면서 최고가 될 수도 있고, 그 길에서 좌절을 겪게 되고 아파할 수도 있지만 아빠에게 너는 내 인생 최고의 걸작이야. 너를 키운 건 인생에서 가장 잘한 일이란다.'





이전 09화 지금이 가장 좋을 때라는 말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