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워하게 될 줄 알면서 보내는 시간
그립다... 그때의 오후 4시 20분. 나를 세상에서 제일 사랑해 주는 사람을 만나길 기다리다 포옹하고 데이트하고 함께 수다 떨며 크게 웃던 순간들... 내가 마련한 모든 것에 함박웃음으로 세상 좋아하던 표정... 울애기...
-오후 4시에 하원하는 아이 데리러 가는 짧은 영상 댓글
경험해보지 않으면 알 수 없는 감정이다. 영상보다 댓글 보고 공감을 많이 받고 눈물 흘리게 하는 댓글로 어린이집 다니는 아이 부모님들이 열광하는 글이다. 알 수 없는 아련함이 댓글로 드러났다. 이해 안 되는 상황과 설명할 수 없는 감정이 누군가의 글로 정리가 되기도 하다 보니 댓글 공작이 성행하나 보다.
아기를 키우며 느끼는 감정들은 어쩌면 비슷한 감동이다. 육아의 감동은 공감을 통해 증폭된다. 인간의 감정은 몇 가지 틀을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제아무리 산전수전에 공중전까지 겪었다고 해도 더 아픈 상흔을 가진 용사들이 천지다. 누구나 겪는 어려움이 나에게는 어마어마한 고통이기도 하다. 고통의 크기, 받아들이는 정도는 다르다. 나만 힘든 게 아니다. 저마다 사정이 있고, 누구나 자신의 길에서는 사투를 벌인다. 우리가 살면서 느끼는 수많은 감정들은 우리는 스스로 얼마나 설명할 수 있는가. 스스로를 이해하면서 살아왔는가. 나도 모르는 나를 상대방이 이해해주지 않는다고 서운해하지는 않았던 가.
고작 16가지 MBTI로도 사람의 성향을 어느 정도는 설명이 가능한 만큼, 사람 사는 게, 사람 생각하는 게 사실 그렇게 다양하지 않고 거기서 거기라는 말도 된다. 그래서 감정을 쓰고 공유하게 되면 누군가는 공감한다. 글을 쓰면서 나도 모르는 내 감정과 내 생각을 메타인지할 수 있게 도와준다. 자기계발서에서 강조하는 일기쓰기, 감사일기가 효과가 있는 이유일 것이다. 기록은 기억보다 정말 강하다.
라디오에서 좋아하는 노래가 나오면 더 좋은 것처럼, 이 감정을 다른 사람들도 공유되고 있다고 생각하는 기쁨. 내 감정이 이런 감정이었구나, 하고 깨닫는 순간. 내 인생이 사랑으로 흘러넘친다. 세상에 뿌려진 사랑들이 환하게 웃고 있는 것만 같다. 온 우주가 그렇게 사랑스럽다.
평생 효도를 다 한다
아기가 주는 기쁨은 살면서 느껴본 것과 차원이 다른 기쁨이다. 언어로 미처 다 표현할 수 없는 정도로. 경험하지 않은 것도 다 알면 인생이 재미없을 것이다. 모든 순간이 기쁘지는 않다. 때로 힘들고 해야 할 일이 많아서 버겁다. 어린이집에 아이를 데리러 가는 것도, 키우는 것도, 해야 하니까 하는 것뿐이다. 지나 보니 그때가 좋은 때로 기억이 나는 건 아마 그 시간에 사랑이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아이가 사랑을 더 준다는 말도, 지금이 가장 귀여울 때라고 하는 말이, 두렵기도 하다. 이 시간도 지나가버릴 텐데, 오늘 하루가 어두워지는 것처럼 시간은 금방 흐르고 말 텐데. 귀여움의 정점을 지나면, 미운 나이도 찾아오고 사춘기도 찾아와서 지금이 너무나 그리워지지는 않을까. 아기는 아기 때 평생 효도를 다 한다고 하는데, 그만큼 이뻐도 왠지 아쉬운 느낌도 든다. 귀여운 아기가 주는 사랑, 효도를 못 받아서가 아니라 내 인생의 좋은 시절이 얼마 남지 않았을까 봐.
아이가 더 이상 사랑받지 못하면 어떡하지, 하는 두려움도 가끔 밀려온다. 이렇게 관심받고 사랑받던 아이가 골칫덩이가 되고 민폐를 끼치게 된다면 얼마나 슬퍼질까. 마음의 준비를 해야 한다. 어린 시절은 지나가고 그 아기와도 이별을 해야 한다. 사랑이 떠나갈 때. 좋은 추억이 있었다고 위로하고 마는 것처럼 너무나 슬프지만, 정해져 있는 헤어짐이다.
위안이 되는 것은 슬픔도 거기서 거리라는 사실이다. 인간의 삶이 정해진 클리셰 안에서 돌고 돈다면 어떤 틀에서 울고 웃고, 공감하며 산다. 사람 사는 이야기에는 변함없는 주제들이 있다. 그래서 한 사람의 인생 자체가 고전이 될 수 있다. 모든 클리셰를 온몸으로 느껴보기 위해 사는지도 모르겠다. 다 안다고 생각했는데 닥쳐보면 아무것도 몰랐던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