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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준스키 Jul 28. 2018

몸뚱이만이 무기가 되는 세상

마라톤 찬양


좋은 차가 좋아질 때가 있다


오래된 흔한 국산 차를 몰고 있다. 연비도 좋고 딱히 불편감도 없어 잘 타고 다닌다. 나는 장난감 자동차와 차 광고에 홀려 자동차를 좋아하는 소년이 아니었고, 내 로망에는 뚜껑 열리는 빨간 스포츠카나 존재감 넘치는 크고 검은 차가 들어있지도 않았다. 승용차라는 것은 본래의 목적에 맞게 안전하고 안락하게 내가 원하는 곳으로 이동하는 기능에만 충실하면 된다고 생각했다.


어떤 순간엔 차 욕심이 차오를 때가 있다. 자동차 광고에서처럼 바다가 보이는 드라이브코스를 홀로 달릴 때가 아니다. 오히려 아주 차가 많이 보일 때다. 비교할 때 욕심이 생긴다. 시비라도 붙을 것 같은 상황이 되면 더욱 그렇다. 경적이 들리면, 양보를 받지 못하면 행여 내 차가 무시당한 건 아닌가 하는 자격지심에 좋은 차를 가져야겠다는 욕심이 생기는 것이다.


(---) 그래서 한국 사회에 수없이 일어나고 있는 갑질은 바로 그런 존재감의 상실에서 비롯된 분노가 원인이었다. 결국 존재감이 약한 사람들이 자신의 존재감이 위협받을 때, 대개 갑질을 통해 그 관계를 갑을 관계로 규정하고, 상대방으로부터 자신의 존재감을 확인하는 매우 불쌍한 방어적 악순환에 빠지게 되는 것이다. 그래서 대기업 오너의 가족이든 식당 손님으로 온 보통사람이든 택시를 탄 승객이든 이들의 갑질의 시작은 대부분 '너 나 무시하지?'로 시작해서 '내가 누군지 알아!'를 외치게 된다.
 
이 문제를 해결하는 길은 궁극적으로 하나밖에 없다. 더 많은 한국인들이 자신의 존재감을 타인과의 관계가 아닌 자기 스스로에게서 찾을 수 있게 될 때, 한국 사회의 갑질 문제는 저절로 해결될 것이다.

-허태균,『어쩌다 한국인』中


"내가 누군지 알아?"  나이 든 사람들이 성낼 때 자주 하는 말이다. 허태균 교수는 이 말이 자존감의 부족에서 나온 말이라고 한다. '당신이 누구인지 내가 알게 무어라 말인가'하고 의아해 하기보다, 그 말을 하는 가련한 존재에게 잠시나마 동정의 시선을 보내본다면, 정말이지 서글픈 외침이 아닐 수 없다.


비교를 세뇌하는 사회

이제 나의 친구들은 더 이상 우리가 사랑했던 동화 속의 주인공들을 이야기하지 않는다. 고흐의 불꽃같은 삶도 니체의 상처 입은 분노도 스스로의 현실엔 더 이상 도움될 것이 없다 말한다. 전망 좋은 직장과 가족 안에서의 안정과 은행계좌의 잔고 액수가 모든 가치의 척도인가. 돈 큰 집 빠른 차 여자 명성 사회적 지위 그런 것들에 과연 우리의 행복이 있을까. 나만 혼자 뒤떨어져 다른 곳으로 가는 걸까. 가끔씩은 불안한 맘도 없진 않지만 걱정스러운 눈빛으로 날 바라보는 친구여 우린 결국 같은 곳으로 가고 있는데 

언제부턴가 세상은 점점 빨리 변해만 가네 나의 마음도 조급 해지지만
우리가 찾는 소중함 들은 항상 변하지 않아 가까운 곳에서 우릴 기다릴 뿐

-신해철 노래, <나에게 쓰는 편지> 中


우리 무의식 속에는 성장할 때 사회가 세뇌한 대로, 거의 모든 것에 대한 서열이 있다. 학교에서 배우는 사회화 과정 자체가 줄 세우기 과정이다. 학교에서 서열화는 관리하고 통제해서 효과적으로 교육하기 위한 방법이지만, 우리가 편견 없이 편견을 가지게 만드는 주범이다. 줄 세우기에 익숙해진 어른이들이 상상하는 '좋은 삶'에는 무의식 중에 (남보다)라는 괄호가 있다.


실제로 그것들이 필요한지, 오래된 허영을 빼면 가치가 있는지 모른 채 욕망하는 많은 것들. 어쩌면 그 욕망이 바로 삶 자체일지 모른다. 사람은 욕망하기에 도전하고, 욕구가 있기에 행동하고, 열망하는 것을 꿈꾸고 이루어갈 때 행복감을 느낀다. 심리학자 에릭 클링거는 "인간의 뇌는 목적 없는 삶을 견딜 수 없으며 뇌의 시스템은 목적이 있는 행동을 위해 디자인되어있다."라고 했다. 


어차피 욕망하는 삶, 목적이 있는 삶을 살아야 한다면 그것이 조금 더 건강하고, 다른 사람들도 소중하게 여길 수 있는 것들이라면 더 의미 있는 삶이 되지 않을까. 그리고 그런 삶들이 모이면 좋은 사회가 되지 않을까.


달리기, 몸뚱이만이 무기가 되는 세상 


태초에 아이가 있었고, 그래서 태초에도 달리기가 있었다. 아이들은 달리면서 웃고, 뛰어놀면서 훌쩍 자란다. 달리기는 누구나 할 수 있는 놀이이자, 온전히 내 몸 만을 사용하는 그것도 아주 한없이 쥐어짜 쓰는 멋진 운동이다. 특별한 장비도 필요 없다. 물론 허영심을 자극하는 비싼 장비도 많다. 이를테면 GPS 시계, 브랜드 러닝화, 기능성 스포츠웨어. 이게 다 없어도 달리면서 느끼는 행복감에는 차이가 없다. 좋은 차를 소유해 타고 달리는 것과는 다른 종류의 순수한 행복감.


마라톤 대회에서는 평범한 길바닥에 몸뚱이만이 무기가 되는 순수한 세상이 펼쳐진다. 

가쁜 숨을 몰아 쉴 때, 다른 가진 것을 다 버리고 싶은 마음이 생긴다. 

억지로 버리지 않아도 내가 아닌 것들은 모두 버리게 된다. 바로 그때 순수한 행복감이 찾아온다. 


행복한 사람들이 많은 사회일수록 좋은 세상이다.

행복하려면 행복한 사람 곁에 가야 한다. 

내가 행복한 순간을 찾아가는 건 나를 위해서도, 사회를 위해서도 꼭 해야할 일이다.



100일 동안 쓰면 이루어진다! 프로젝트 실행 중입니다. 
거꾸로 만드는 100일 기념일, 2일 차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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