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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지영 Apr 22. 2020

질문놀이의 유익함

     

질문이라고 해서 꼭 뭔가 진지한 내용만 다뤄야 하는 건 아닙니다. 질문으로도 아이들과 재미있게 놀 수 있습니다. 웃음을 주는 질문놀이는 그 자체로도 즐겁지만, 무엇보다 질문하는 습관을 키우는데 좋습니다. 평서문에만 익숙한 엄마들에게는 문장의 끝을 올리는 신선한 경험이 되고, 아이들은 물음표와 친해지는 계기가 된다고나 할까요?      


아이들과 보다 많은 질문으로 대화하기 위해 노력하던 일상의 어느날 아침이었습니다. 아침식사로 인절미를 구워줬습니다. 냉동실에 굳힌 인절미 고명을 털어내고 들기름에 구우면 말랑하고 고소한 별미가 되지요. 원래 아이들이 잘 먹는 메뉴였습니다. 그런데 아이들이 등원준비를 위해 옷 입는데 시간이 좀 걸렸습니다. 뜨거운 인절미 구이가 식어 그릇에 붙어서는 그릇과 일심동체가 된 거지요. 사실 그날 아침, 아이들은 빵을 달라고 했는데 떡도 먹자며 메뉴를 바꾼 터였습니다. 네 그렇습니다. 제가 밥에, 쌀에 좀 집착하는 엄마랍니다. 전날 저녁에 칼국수를 먹었는데 아침에 빵을 주는 게 마음에 걸려 떡을 고집했더랬죠.      


빵이 아니라는 사실이 못마땅한 둘째, 

“엄마!” 

이미 목소리에 짜증이 차고 넘칩니다. 접시에 딱 붙은 인절미를 포크로 집어올리자 그릇도 따라 올라옵니다. 

“엄마, 그릇을 먹으라는 거야?”      

실컷 생각해서 차려준 음식에 투정하면 엄마도 짜증이 납니다. 

'음, 요녀석 짜증을 내는군!' 

끓어 올라오는 속내를 꿀걱 삼키고 화제전환용으로 질문을 던졌습니다.     

“그릇을 먹으면 그릇이 되나?”     


첫째 둘째 모두 “빵”터졌습니다. 사실 그 정도의 열렬한 반응은 예상하지 못했더랬죠. 생각하는 대로 모습을 바꿀 수 있는 캐릭터인 바바파파를 떠올렸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엄마의 뜻밖의 질문에 분위기가 전환되었습니다. 자칫 아침 식사 전쟁이 될 뻔한 식탁에 말놀이가 펼쳐졌지요. 큰애가 거듭니다.

“포크를 먹으면 포크가 될까?”

“오~~ 그건 좀 무섭다.”

신이 난 둘째도 한몫합니다. 

“창문을 먹으면 창문이 될까?”


동생의 상상력에 7살 형아는 ‘말이 안 되잖아’라는 표정으로 짐짓 어른인척하면서도 올라가는 입꼬리는 감추지 못합니다. 개구쟁이 5살 둘째는 눈동자를 굴리며 또 재미있는 질문이 없나 고민합니다. 투정이라는 작용과 잔소리라는 반작용으로 짜증이 난무하는 식탁이 될 뻔한 아침을 질문이 구해냈습니다. 분위기 구원투수 역할을 해냈습니다.      


왜 그런 사람 있지 않습니까? 재미난 이야기를 하는 데도 안 웃긴 사람. 그게 바로 접니다. 유머책을 읽고 눈감고 외워보기도 했지만 다른 사람 웃기는 재주는 없는 거로, 결론을 내렸습니다. 남편은 이런 저와는 달라서 연애하는 내내 절 웃겨주었습니다. 이 사람하고 결혼해야겠다는 결론을 내린 제일 강력한 이유가 남편의 유머감각이었죠. 살다 보면 힘들 때가 있을 텐데 그럴 때 어려움을 정면돌파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설사 문제가 해결되지 않더라도 웃음으로 한바탕 털어내고 다시 새 힘을 얻는 게 더 중요하다고 생각했거든요. 그만큼 웃음은 제게 중요한 가치였습니다. 남편을 선택할 기준이 될 만큼이었으니 어느 정도였을지 짐작이 되시죠? 그리고 당시 제가 판단한 남편의 유머감각은 상당 부분 제 눈에 쓰인 콩깍지 탓이었다는 점을 짐작하시는 분은 삶의 연륜이 좀 되시는 분으로 인정해드립니다.    

  

웃기는 데는 당최 소질이 없지만 지금도 아이들과 하는 웃음놀이가 있습니다. 바로 말도 안되는 질문 던지기 놀이입니다. 이 놀이의 백미는 말이 안될수록 재미있다는데 있습니다. 아이들의 먹을 것과 입을 것, 일상의 공간을 챙기느라 질문거리를 찾을 여유가 없을 때 한번 시도해보세요. 짜증이 나는 바로 그 이유를 질문의 소재로 전환해 보세요. 밥상을 마주한 아이의 반찬투정, 양말 봉제선이 불편하다며 투덜대는 예민한 아이의 짜증, 엄마도 어디 있는지 모르는 물건을 찾아내라는 아이의 어거지 주장, 해도 해도 끝없는 집안일이 모두 황당한 질문의 소재가 될 수 있습니다.      


“두부에 귀가 있다면, 평이가 맛없다고 투정하는 소리를 듣고 어떤 기분이 들까?”

“양말은 왜 잘 신겨지지 않는 걸까? 명이 발가락을 싫어하나?”

“지우개는 도대체 어디 갔을까? 발이 달렸나?”

“청소를 도와주는 요정이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집안청소 해주는 마술 주문은 뭘까?”     


짜증을 내지 않으려는 노력에, 약간의 상상력을 양념으로 치면 생각지도 못한 질문을 할 수 있답니다. 엄마의 눈물 나는 노력에 아이들이 반응해 주면 즐거운 선물을 받을 수도 있습니다. 제 경우 아이들은 엄마의 말도 안 되는 질문에 덩달아 흥을 맞춰줍니다. 

“그러게, 발이 달렸나?”     

“애들아, 요정 찾아보자.”

“혹시 ‘휘리휘리 뿅뿅’ 주문 아닐까?” 


이런 말로 흥을 돋워주면 아이들은 금새 이리저리 뛰어다니느라 난리가 납니다.  말이 안 되는 질문은 훌륭한 놀이가 된답니다. 좀 황당한 내용이긴 해도, 엄마나 아이가 모두 재미지게 질문연습까지 할 수 있으니 일거양득인 셈이죠. 사실 평상시에 우리는 말이 되는 질문만 하려다 보니 많은 질문을 하지 못하는 면도 있거든요. 내용에 대한 압박 없이 마구마구 질문거리를 표현할 수 있다는 점만으로도 질문놀이는 유익함이 큽니다. 그러니 우리 물음표를 사랑합시다. 일단은, 마침표 대신 물음표로 끝나는 질문을 할 수 있다는 사실에 기뻐하면서 질문하는 연습을 하면 어떨까요? 의문문 억양에 익숙해지다 보면 말이 되는 질문을 건네는데도 한 발짝 더 가까워질 거라고 저는, 믿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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