질문국어, 하세요?
우리나라가 영어 교육에 투자하는 시간과 돈은 엄청 납니다. 그런데도 영어는 아직까지 많은 사람들의 발목을 잡는 콤플렉스입니다. 생활하는데 필요한 기본적인 의사소통 능력을 발휘하는데 필요한 충분한 어휘와 영어에 대한 지식을 갖췄는데도 입에서 말이 터지지 않으니 “해도 안되나봐”라는 탄식은 당연합니다. 생각해보면 우리가 영어에 투자하는 시간은 초등 3학년부터 고등학교까지만 잡아도 9년, 대학 가서 투자하는 시간까지 더하면 총 13년입니다. 강산이 한번 너끈히 바뀌고도 남을 시간인데, 말문을 못 여는 사람들이 대부분입니다.
왜 그럴까요? 두 가지 이유가 크지 않을까요? 먼저 우리는, 영어로 하는 표현이 아니라 영어에 관한 지식습득을 목표로 공부했습니다. 예를 들어 사람들이 보통 영어 공부하기로 했다고 작심하면 제일 먼저 무엇을 공부할까요? 놀랍게도 많은 사람이 영문법 책을 고릅니다. 문법이 약해서 영어가 잘 안된다고 보는 것이지요. 저는 문법을 이렇게 정의합니다. 약속. 문법은 한 언어로 특정 뜻을 표현하는 방법을 정해놓은 약속입니다. 물론 정확한 의미를 알기 위해서는 어느 정도의 영문법 실력은 필요합니다. 그런데 우리나라에서 고등학교까지 졸업한 사람들이라면 영문법 지식은 차고도 넘친다고 봐야 맞을 겁니다. 기본적인 의사소통을 하기에 이미 족합니다.
그런데 우리는 생각해 봐야 합니다. 영문법을 배울 때, “주어 다음에는 동사가 와. 그리고 보어가 오거나 목적어가 오지.”라고 배우는 게 말하는 데 도움이 될까요? 아니면 “I love you. 널 사랑해. 라는 말은 이렇게 하는구나. 아, 그러고 보니 영어는 목적어를 서술어 뒤에 쓰는구나. 술어가 먼저 오고 목적어네!” 이렇게 배우는 게 더 도움이 될까요? 전자로 배우면 영어에 관한 지식을 배웠다고 봐야 합니다. 후자의 경우에는, I love you. 라는 영어표현을 하나 배운 셈이죠. 영문법을 다져서 영어 콤플렉스를 벗어버리려는 분들이 꼭 생각해봐야 할 점입니다. 이제 영어에 관한 지식은 그만하셔도 됩니다. 말하고 싶은 영어표현을 배우세요.
제가 생각하는 영어 무력감 두 번째 원인은 이렇습니다. 다른 모든 공부가 그렇듯 영어 공부도 어느 정도의 암기가 필요합니다. 언어이기 때문에 외울 게 좀 더 많을 수도 있지요. 그런데 여러분은 영어를 어디로 외우셨나요? 머리로 외우신 분? 입으로 외우신 분? 아마 대부분 머리로 외우셨을 겁니다. 그러다 보니 말로 표현할 순간에 머리로 검증하기에 바쁩니다. “나? 나는 I, 사랑한다는 love지, 너‘를’ 이니까 동사 뒤에 들어가야겠지, 주어 +동사+목적어니까.” 열심히 머리로 생각했는데 이미 말할 상황은 지나갔습니다. 많이 겪어보셨지요? 머리로 배운 영어는 머리로 이해하는 데 도움은 주겠지만 말로 표현하는 데는 별 도움이 안 됩니다. 결국, 언어는 말로 표현되니, 입을 훈련해야 합니다. 사실 우리말 발음은 영어와 달라서 말 그대로 혀와 입 모양 등 조음기관이 훈련되야 특정 소리를 낼 수 있습니다. 이 점을 고려하면 영어 공부는 일종의 근육훈련입니다. 그러니, 소리 내어 말하며 외워야 외국어 공부를 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아무튼 이런저런 이유로 우리는 영어에 관한 지식은 많지만 정작 영어로 말하기는 잘못합니다. 그리고 질문도 마찬가지입니다. 왜 질문을 해야 하는지 필요성에 대해 너무나 잘 알고 있는데, 정작 질문을 하려면 입이 막힙니다. 뭘 물어봐야 할지, 어떤 말로 시작해야 할지 너무 막막합니다. 한마디로 질문은 제게 외국어였습니다. 받아 본 적이 별로 없고, 해본 적은 더더군다나 별로 없었거든요.
그래서 전 질문하기 위해, 질문에 대한 지식을 얻기 위해서가 아니고 직접 질문을 하기 위해 외국어를 배우듯 질문을 배웠습니다. 영어, 중국어, 일어를 배우는 것처럼 '질문국어'를 배웠습니다. 외국어 학습의 시작은 따라 말하기 입니다. 즉, 큰소리로 읽기죠. 제일 먼저 시작한 일은 아이들한테 할 수 있는 질문을 적어보는 일이었습니다. 책을 읽으면서 아이들한테 적용할 수 있는 질문을 발견하면 일단 핸드폰으로 사진을 찍거나 제 앞으로 문자를 보내서 기록했습니다. 큰 소리로 반복해서 읽었습니다. 아이한테 말하듯 억양까지도 넣어서 말입니다. 아이 이름을 앞에 넣어가며 연습했습니다. 경험해 보니, 질문거리를 먼저 확보해서 질문하다 보면 덤으로 질문하는 습관은 따라왔습니다. 처음이 어렵습니다. 질문거리를 확보하는 게 먼저입니다.
사실 습관이 되기까지 어느 정도 의식적인 노력이 필요합니다. 질문할 거리를 찾아야 했으니까요. 글짓기 하듯 질문노트에 질문을 적어야 했습니다. 따로 시간 내서 크게 읽으며 머리가 아닌 입술에 질문을 붙여놓기도 했습니다. 이쯤에서 의견을 달리 하는 분도 있을 겁니다.
“질문하지 않는 지금도 육아에 드는 시간과 노력이 상당한데, 아이들이 더 크고, 말이 좀 통할 때 질문하는 대화 시작하면 어떨까요?”
아이들이 어릴수록 그런 생각이 드는 건 당연합니다. 아이들과 나누는 대화가 한정적일 수 있으니까요. 그런데, 지금 질문해야 그때 할 수 있습니다. 언제쯤이면 아이들과 말이 될까요? 요즘 아이들 사춘기 빨리 와서 엄마 아빠가 말된다고 느끼면 이미 방문을 닫아 버릴 수도 있습니다. 그때까지 질문으로 아이들과 대화하지 않고 일방적인 지시나 요구하는 대화만 하다가 어느날 갑자기 아이들에게 생각을 물어보면 아이들도 어안이 벙벙 할 겁니다. 아이들과는 지금도 말이 됩니다. 유치하다고 치부하는 대신 아이들의 표현에 조금 여유있게 반응한다면 주옥같은 말을 하는 아이들을 발견하게 될 겁니다.
아이들과의 질문대화 하려고 할 때 아이가 질문하면 어떻게 하나는 점도 큰 부담입니다. 아이가 질문하기 시작하면 답을 해야 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죠. 그런데 아이들의 질문에 꼭 답해야 하나는 생각을 버리면 아이들의 질문을 독려하는 게 훨씬 쉬워집니다. 꼭 모든 질문에 답하지 않아도 된다는 말입니다. 그럼, 아이가 묻는 질문에 답을 못할 때는 어떻게 말해야 할까요? 이렇게 말하면 됩니다.
“그래, 참 좋은 질문이구나.”
“와, 그런 의문을 갖다니 대단한데! 엄마는 그런 생각 못했거든.”
맞습니다. 답은 아니죠. 감탄사입니다. 하지만 이런 감탄에 아이들은 신나 합니다. 이번 질문에 답은 즉각적으로 얻지 못했을지언정 아이들은 더 큰 것을 배웠습니다. 바로 질문하는 태도죠. 엄마의 감탄과 칭찬으로 아이 속의 질문 본능은 더욱 강화됩니다. 그것만도 충분하지만 한 걸음 더 나갈 수도 있습니다. 이런 질문을 덧붙이는 겁니다.
“엄마도 잘 모르겠는데 우리 함께 찾아볼까? 어떤 책을 찾아보면 알 수 있을까?”
즉시 찾아볼 수 있는 책이 집에 있다면 대화가 계속될 수 있습니다. 검색을 통한 확인도 도움이 됩니다. 당장 그 자리에서 문제의 답을 찾지 못해도 괜찮습니다. 다음에 서점이나 도서관에 가서 찾아볼 거리가 생겼습니다. 기억해서 찾아봐도 좋고 설사 그렇지 않아도 괜찮습니다. 아이는 질문을 받았고, 다음번에는 더 구체적으로 질문에 반응하는 모습을 보일 겁니다. 여기서 가장 중요한 건, 아이와 질문대화 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아이는 질문하는 법을 배우고 있습니다.
자녀와 질문대화를 시작하면 버려야 할 욕심이 하나 있습니다. 바로 만루홈런에 대한 환상입니다. 완벽한 질문을 던지겠다는, 뭔가 문제의 핵심을 꿰뚫는 질문을 하겠다는 의지입니다. 듣기만 하면 탁하며 무릎을 칠 수 있는 혜안을 주는 질문을 하겠다는 바람입니다. 마치 서예가가 큰 붓들어 일필휘지로 명언을 써내려가듯 말입니다. 물론 멋있어 보이긴 하겠네요. 하지만 타자는 일단 쳐야 합니다. 방망이를 휘둘러야 안타든 홈런이든 칠 수 있는 거죠. 큰 거 한 방 노리느라 조개껍데기처럼 굳게 입을 닫아버리면 삼진아웃 당하기에 십상입니다. 소박하지만 우리 어른들이 말씀하시는 삶의 지혜가 있습니다: 천리길도 한 걸음부터입니다. 한 번의 질문대화에서 의미 있는 결론에 이르겠다는 욕심부리지 않기. 질문대화를 계속할 수 있는 비밀이 여기에 있습니다.
아이들에게 생각할 여유를 주는 것도 중요합니다. 아이들은 이런 말을 자주했습니다.
“엄마, 그때 ~ 한 거 있잖아. 생각해 봤는데 ~ 더라구.”
한참 전에 질문했던 내용인데 용케도 잊지 않고 의견을 말합니다. 질문했을 당시에는 뾰족이 답하지 못했던 내용이었습니다. 질문이 중요한 이유를 하나 더 발견합니다. 질문은 아이들이 생각할 수 있도록 돕습니다. 우리가 요구하지 않을 때조차도 말입니다.
홈런은 타석에서 방망이를 휘둘러야 나옵니다. 큰 붓 들어 단숨에 써 내리는 사람은 한 일자 (一)를 묵묵히 써 내린 긴긴 시간이 있을 겁니다. 질문도 마찬가지입니다. 감탄을 불러일으키는 질문은 하늘에서 뚝 떨어지지 않습니다. 질문해야 합니다. 수도 없이 반복해서 질문하는 연습을 하면, 부분적으로만 보이던 진리가 어느 순간 온전히 보는 것처럼, 한순간 눈이 열리는 질문도 할 수 있을 겁니다. 그때까지는 오늘도 뚜벅이입니다. 한 걸음 한 걸음 뚜벅이처럼, 고쳐 다시 물어볼지언정 아이에게 일단 질문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