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웃소싱보다 인하우스
아이들에게 질문하는 법을 교육해야 한다고 하면 대부분 동의합니다. 그런데 아무래도 질문을 많이 해본 적이 없다 보니, 직접 하는 게 좀 어렵습니다. 그래서 차선으로 학원 선생님이나 학교 선생님들이 질문하는 역할 담당해주기를 기대합니다. 물론 교육현장의 많은 선생님께서 아이들과 질문으로 대화하기 위해 노력하고 계십니다. 그런데 아웃소싱(?)에 의지하기보다 부모님이 직접 아이들에게 질문할 때 유리한 점이 있습니다. 부모님만큼 아이들을 개별적으로 잘 알고 관심이 많은 사람은 없습니다. 질문은 결국 상대방을 향한 호기심에서 출발합니다. 상대의 생각을 알고 싶은 마음에서 출발하니까요. 질문대화의 최적임자가 부모님인 이유입니다.
게다가 질문을 받으면 누구나 긴장됩니다. 질문대화에 익숙하지 않은 아이들은 질문받으면 적지않게 당황합니다. 질문은 곧 생각하라는 요구이기 때문입니다. 질문받은 문제에 대해 생각하는 일이 부담스러울 때, 질문하는 사람이 나를 세상에서 가장 사랑하는 부모님이라면 아이들은 훨씬 편안한 상태에서 질문에 집중하고 답을 고민할 겁니다. 부모님이 자녀를 위한 최고의 질문자인 까닭입니다.
만약 이런저런 이유로 어린이집 담임선생님이나 학교 선생님 보다 짧은 시간 아이와 함께 하는 부모님이라면 더더욱 질문해야 합니다. 질문대화를 통해 자녀들을 더 잘 알아갈 수 있기 때문입니다. 사실 아이들에게 질문하며 대화하면 더 편해집니다. 엄마도 몰라서 질문하는 거니까요. 엄마가 모든 문제의 답을 갖고 있지 않다는 사실을 인정하면 정말 편안하게 대화할 수 있습니다. 엄마도 모르니, 함께 답을 찾아가는 과정에서 생각을 열어가는 도구로 질문을 이용합니다. 질문은 마치 자동차가 달릴 수 있도록 시동을 거는 키와 같습니다. 열쇠를 돌려서 시동을 걸면 자동차 엔진이 작동하는 것처럼 우리 뇌도 질문을 받으면 답을 찾기 위해 생각하기 시작합니다. 아이의 생각이 활발히 움직이면서 대화가, 좀 더 깊은 대화가 가능해집니다. 아이에 대한 이해가 커지고 깊어집니다. 전에는 몰랐던, 아이가 표현한 아이의 생각과 느낌을 살피며 깊어지는 관계를 경험합니다.
소개팅, 해보셨나요? 서로 어색한 첫 만남에서 대화가 잘 풀리는 경우도 있지만 반대의 경우가 부지기수입니다. 그런 경우 두 사람 다 여한 없이 자리 털고 일어나기도 하고, 어느 한 사람이 죽어가는 소개팅 살리기 위해 고군분투를 벌이기도 하지요. 대화가 끊어지는 어색함을 극복하려고 분위기 띄우기 멘트에 열심을 내는 겁니다. 아쉽게도 첫인상의 한계를 극복하지 못하는 경우가 대부분이지만 말입니다. 어느 한쪽이 일방적으로 대화를 이끌어 가는 건 이처럼 부자연스럽고 힘든 일입니다. 아이와의 대화도 그렇습니다. 아이와 부모의 대화에서 부모가 일방적으로 모든 대화의 키를 잡고 있으면 대화가 아니라 부담스러운 훈계와 잔소리로 전락합니다.
부모는 아이들과의 대화시간을 질문으로 채워야 합니다. 자녀를 향한 부모의 사랑스러운 시선은 자녀들에게 질문하기 가장 좋은 사람이라는 자격을 부여합니다. 사랑하면 알고 싶어지니까요. 질문할 거리를 찾으려면 호기심이 있어야 합니다. “너는 왜 그렇게 생각하니?”, “너라면 어떻게 말할 것 같아?”와 같은 질문이 대표적입니다. 자녀에 대한 호기심이 가장 큰 사람이 부모입니다. 대화라는 이름으로 포장한 잔소리나 지시를 내리지 않고 아이들의 생각과 느낌에 대한 진짜 호기심으로 질문할 때 서로를 더 잘 이해할 수 있습니다. 이해의 폭이 넓어지면 관계는 깊어지고 풍성해집니다.
질문의 기술을 습득하는 데는 분명 노력이 필요합니다. 노력의 대가로 주어지는 열매가 더 충만한 자녀와의 관계라면 투자해볼 만하지 않을까요? 사고력의 발달만을 위해서, 학습효과를 올리기 위해서 질문한다면 다른 사람들이 자녀들에게 질문하기까지 기다릴 수 있겠지요. 그러나 내가 질문하지 않으면 내 자녀에 대한 깊은 이해는 얻지 못합니다. 질문의 날을 벼려야 하는 또 하나의 이유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