질문지 만들기
질문하는 습관이 없는 부모 입장에서 질문으로 대화하려고 하면 가장 먼저 막막함을 경험합니다. 정말 어쩔 수 없는 현실입니다. 저도 그랬습니다. 뭔가 물어는 봐야겠는데, ‘헉, 뭘 물어봐야하나?’ 그래서 방법을 바꿨습니다. 상황에 닥쳐서 질문하려고 생각하기보다 먼저 물어볼 질문거리를 만들어서 연습해 두는 방법으로 말입니다.
이건 사실 제가 외국어를 배울 때 사용하는 방법이기도 합니다. 특정 상황을 대비해서 이럴 땐 이런 말을 해야지 하고 연습해서 준비해 놓는 거죠. 질문하기 어려운 이유가 외국어를 배울 때 어려움과 크게 다르지 않다는 걸 알게 되었습니다. 외국인을 만났을 때 영어로 시원하게 말하지 못하는 이유가 뭔가요? 우선 그 상황에서 해야 할 외국어 표현을 정확히 알지 못합니다. 그러다 보니 말하는 타이밍을 놓칩니다. 질문도 마찬가지입니다. 우선 어떤 질문을 할 수 있는지를 모르다 보니 질문거리가 없습니다. 외국어로 치면 표현을 모르는 셈이지요. 그래서 결국 머릿속에서 우왕좌왕하다 아이와의 대화에서 타이밍을 놓치는 겁니다.
타이밍의 경우 실전 연습을 통해서 훈련할 수 있습니다. 자꾸 질문하는 연습을 해야 하는 거지요. 그러려면 우선 말할 거리, 질문할 거리가 있어야겠죠. “이럴 땐 이런 영어표현”처럼 미리 질문거리를 정리해 놓고 연습했습니다. 영어문장을 외우듯이 중얼중얼 외웠다고 해야 할 겁니다. 처음에는 망막했지만 그래도 서면으로 미리 준비하는 과정이다 보니 실제 상황보다 시간적 여유가 있어서 좋았습니다. 그렇게 드라마 대본 쓰듯이 미리 외워서 준비한 질문들을 실제 하나하나 적용해 가면서 큰 변화가 생겼습니다. 처음에는 준비해서 외운 대사였던 질문들이 진짜 제 말로 변했습니다. 질문하는 타이밍이 좋아진 건 말할 나위도 없었지요.
학교에서, 직장에서, 가정에서 질문을 받아본 적이 별로 없고, 질문을 한 적은 더더군다나 희박한 저와 같은 부모님들에게 질문하기는 외국어를 말하는 일과 별반 다르지 않습니다. 하루아침에 말문이 터지지 않지요. 그런 분들에게 적극 추천하는 방법이 있습니다. 질문이라는 외국어를 배우는 효과적인 방법입니다. 상황별 가능한 질문을 몇 개만이라도 외워보세요. 처음엔 어색하고 닭살 돋는 남의 나라말일 수 있지만, 아이에게 몇 번 시도해보시면, 그 질문들을 통해 아이와 나눌 수 있는 또 다른 대화의 매력에 흠뻑 빠지게 될 겁니다.
제가 연습한 질문들을 소개합니다. 아이와 대화하다 보면 한창 호기심이 있는 어린아이들일수록 질문을 많이 하지요. 그런데 그 질문 중 상당수는 자기 확신을 얻기 위해 하는 내용도 있습니다. 답을 몰라서 질문한다기보다 재확인하기 위해 묻는 내용이 여기에 해당합니다. 그럴 땐 아이의 질문에 답하기보다는 되묻는 방법을 사용합니다.
되묻는 질문
큰아이가 한창 수개념에 열을 올리고 있을 때 많이 물었습니다.
“엄마, 250이 커, 100이 커?”
“엄마, 2시간이 더 길어, 10시간이 더 길어?”
이런 질문을 받으면 바로 답해주고픈 유혹이 큽니다. 소위 단답형 문제니까요. 하지만 한 박자 쉬어 갑니다. 아이가 필요한 건 답이 아니라 확신일 때가 많거든요. 답을 주는 대신 아이에게 생각할 기회를 질문으로 유도할 수 있습니다. 이런 질문도 마찬가지입니다.
“엄마, 달은 왜 우리를 따라와?”
“엄마, 빨간불에는 왜 멈춰야 해?”
아는 질문에는 답해주고 모르는 질문은 패스하거나 다른 자료를 이용해 답을 찾는 식으로 아이의 답에 대응하는 방식은 단점이 있습니다. 아이의 생각을 알 수 없다는 겁니다. 아이가 왜 그 질문을 하는지, 아이가 진짜 원하는 점이 무엇인지 파악하기 어렵습니다. 또 다른 한계는 답을 아는 데서 대화가 끝난다는 점이지요. 아이에게 즉답하지 않고 되물으면 반대로 대화는 확대됩니다.
“네 생각엔 어때? 어떤 수가 더 클까? (더 길까?)”
“네 생각엔 왜 그런 것 같아?”
수개념에 대한 경우, 큰아이가 하는 대부분의 질문은 자기 확신이 필요해서였습니다. 아이는 자기가 하는 질문의 답을 이미 알고 있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아이의 질문에 바로 답하는 대신 아이의 생각을 물었을 때 가장 좋은 점은 대화가 확장된다는 사실입니다. 달이 차를 타고 가는 우리를 따라오는 것처럼 보인다는 질문에 아이의 생각을 되물어보면 아이는 여러 가지 답을 이야기합니다. 책에서 읽은 소위 “정답”인 경우도 있고 자신의 상상력에서 나온 조금은 황당한 답도 있습니다. 그런 경우는 엄마에게 질문거리가 더 풍부해지니 더 좋습니다.
“그래? 그렇게 생각했구나. 명아, 그럼 달이 얼마나 크면 우리가 이렇게 빨리 달리는데도 따라오는 것처럼 보이는 걸까? 달이 지구보다 더 큰가? 지구가 더 큰가? 달의 크기는 어떻게 알 수 있을까?”
당장 답을 구하는 것은 아이의 질문회로를 활성화하는 것에 비하면 그리 중요하지 않습니다. 답은 걱정하지 말고 되물어보세요. 지금 답을 못 구해도 됩니다.
2. 생각을 여는 질문
아들 둘을 키웁니다. 어쩜 그리 아롱이 다롱이인지요. 큰애와 둘째는 동이 서에서 먼 것처럼 다르답니다. 첫째에게는 정리정돈이 전혀 문제가 되지 않았습니다. 큰애는 물건 정리하라는 말을 따로 하지 않아도 자기 물건이 어디에 있는지 정확히 아는 아이입니다. 반면에 둘째는 자유로운 영혼이지요. 물건이 어디 있냐고 물어보면, “몰라. 어디로 갔지? 다리가 달렸나?”라고 능청을 떱니다.
그런 둘째에게 물건을 제 자리에 놓자는 잔소리가 늘어가던 어느 날이었습니다. 이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변화가 없었으니까요. 아이에게 정리하자는 제 말은 순도 100% 잔소리로 들린다는 확신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방법을 바꿔서 질문했습니다.
“명아, 왜 물건을 제 자리에 놓아야 할까? 정리는 왜 해야 할까?”
질문을 던지고 이야기하는데 아이가 ‘자유’라는 단어를 사용했습니다. 자기는 치우고 싶지 않다는 강한 주장이었지요. 순간 깜짝 놀랐지만 태연하게 다시 물어봤습니다.
“그래? 명이는 자유라고 생각하는구나. 자유가 뭘까? 명이가 하고 싶은 대로 다 하는 게 자유일까?”
정확한 표현은 기억이 나지 않지만, 자유와 책임이라는 취지로 둘째와 한참 이야기 나눴습니다. 둘째는 놀고 난 다음 자기 물건을 정리해야 다음에 놀고 싶을 때 자유롭게 놀 수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물건 정리하기는 아직도 둘째에게 어려운 부분입니다. 하지만 그날 자유가 무엇인지 물었을 때 진지하게 생각했던 아이의 표정을 기억합니다. 막연히 자기 뜻대로 하는 게 자유라고 여겼던 둘째에게 제가 한 질문은 아이의 생각을 열어주었을 겁니다. 진짜 자유가 무엇인지 고민하던 둘째의 눈빛을 기억하기 때문에 아이들에게 질문하기를 멈출 수 없습니다.
다음으로 미리 공부해서 할 수 있는 베갯머리 질문이 있습니다. 아이들이 하루를 마무리하고 잠자리에 드는 시간은 정서적으로 매우 중요하다고 합니다. 인격체인 아이들에게도 하루를 정리하고 새 하루를 위한 육체적 에너지뿐 아니라 정서적인 에너지도 충전할 시간이 필요한 셈이지요. 자기 전 책을 읽어주고 차분해진 상태는 질문하기에 최적의 시간이기도 합니다. 하루를 보듬어 주는 질문에는 다음과 같은 것들이 있습니다.
3. 베겟머리 질문
“오늘 하루 어땠어?”
“오늘 네 마음이 어땠어?”
“어떤 일이 제일 좋았어?”
“마음이 안 좋았던 일이 있었니?”
유대인 엄마들이 잠자리에서 묻는 말이라고 합니다. 정서적 대화의 물고를 트는 질문으로 정서적이고 감성적 이야기를 나누기 위한 질문입니다. 그런데 여기서 기억해야 할 점이 있습니다. 베겟머리 대화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대화가 아닙니다. 공감하고 더 나아가 칭찬으로 보듬어주는 대화가 되어야 합니다. 칭찬이 주는 유익함에 대해 해박한 부모님들이 많아졌습니다. 과정을 칭찬하는데 역점을 두어야 한다는 점도 많이 알려졌습니다. 예를 들어 이런 식의 칭찬을 부모님들이 많이 합니다.
“반복해서 연습하는 모습이 멋지더라.”
그런데 제가 직접 해보니 칭찬보다 어려운 일이 공감하기였습니다. 물론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제 경우는 그랬습니다. 그런 제가 사막의 오아시스를 발견한 순간이 있었으니, 어느 유명 강사의 강의에서 배운 표현입니다. 얼마나 강력했는지 한 번도 해본 적 없는 이 말은 제 뇌리에, 입술에 새겨졌답니다.
“엄마가 이렇게 좋은데 00이는 얼마나 좋을까?”
아이들에게 이 말을 처음 했던 순간을 잊을 수 없습니다. 아이들의 만면에 흡족한 미소가 퍼졌습니다. 그 시간 아무 말도 더 필요하지 않았습니다. 아이는 제 품에 안겼고 행복해했습니다. 칭찬해주었을 때와는 또 다른 성격의 만족감을 아이는 표현했습니다.
아이들의 질문에 바로 답하는 대신 아이들 스스로 생각을 정리할 수 있도록 되묻기, 다시 생각해볼 수 있는 질문하기, 잠자리에서 정서를 매만져 주는 질문하기. 이 세 가지 구체적인 질문지만 연습해서 적용해도 아이들과의 질문대화가 훨씬 편안해지고 풍성해짐을 경험할 수 있습니다. 연기자들이 대본연습하듯 처음에는 약간 인위적인 과정이긴 해도 이 질문들이 얼마나 놀라운 대화시간의 변화를 가져오는지 경험한다면 기꺼이 질문대본을 쓰고 연습하실 거라 확신합니다. 지금 바로 시작해보세요. 노트를 꺼내고 펜을 챙겨서 그냥 쓰시면 됩니다. 어색한 분들은 제가 예문으로 드린 질문을 다시 적어보시는 것도 좋은 시작점이 될 겁니다. 아이들이 잠자리에 들었나요? 깨어 있을 땐 이 땅의 기쁨이요, 잠들면 온 세상이 평화로워지는 우리의 아이들이죠. 이 귀한 평화로운 시간을 가장 효율적으로 쓸 수 있는 방편이 있답니다. 질문지를 만들어보세요. 바로 지금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