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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지영 Apr 20. 2020

아이가 보이는 질문대화

서로에 대한 이해가 깊어가는 질문대화

     

아이들과 질문하며 대화할 때 누리는 가장 큰 유익함은 아이들의 존재를 발견해 가는 기쁨입니다.      

 대화에서 아이라고 무시하지 않는다면, 대화가 아닌 강의를 하려고 하지 않는다면 아이들의 속마음과 속생각을 들을 수 있습니다. 내 뱃속에서 나온 아이지만, 독립적인 존재인 아이들의 진짜 모습을 알게 됩니다. 서로를 더 많이 알아가며 더 깊이 사랑하게 되는 기쁨, 아시죠? 우리 아이들과 참 기쁨 넘치는 대화의 비밀이 바로 질문대화에 있습니다. 


아이의 진짜 생각 듣고 싶으시죠? 질문하세요!     


 모양이며 색이 너무 예뻐 먹기도 아까운 마카롱을 한 상자 선물 받은 날. 둘째는 병아리 모양 샛노란 마카롱을 골랐습니다. 등원길에 먹겠다던 병아리 마카롱을 그만 식당 테이블에 놓고 왔다는 걸, 둘째는 차 안에서야 깨달았습니다. 어린이집 끝나고 먹겠다며 흔쾌히 생각을 바꿨지만, 무방비 상태로 테이블에 놓고 온 것이 여간 신경 쓰였나 봅니다.      

“모기가 먹으면 어떻게 하지?”     

초겨울 11월이었습니다.      

“겨울인데, 모기가 있을까?”     

그리고 별생각 없이 덧붙였습니다.      

“그런데 모기가 마카롱을 먹을까?”     


아이들과 모기는 알을 낳기 위해 암컷만 피를 빤다는 이야기를 나눈 적이 있었습니다. 물론, “모기는 왜 우리를 물어서 간지럽게 하는 걸까?”라는 질문에서 시작한 대화였지요. 꽁지가 닷 발, 주둥이가 닷 발이나 되는 커다란 새가 물어간 엄마를 찾아 온갖 역경을 이겨내고 엄마를 구해낸다는 소년의 이야기를 읽었을 때도 물었습니다. 새 두 마리가 시커멓게 타서 재가 되자 바람에 날렸는데 티끌 하나하나가 모기가 되어 날아갔다는 옛날이야기였지요.      


“옛날 사람들은 소년한테 당한 이 새의 재가 왜 모기가 되었다고 생각한 걸까?”     

(여러분은 어떻게 생각하세요? 꽁지가 닷 발이고, 주둥이가 닷 발이나 되는 새는, 왜 하필 모기가 된 걸까요? 모기의 모습을 떠올려보면 짐작되시지요? 피를 빠는 모기의 주둥이가 삐죽하니 나와 있으니 말입니다.)     

“그런데 모기가 물면 왜 가려울까?” 

“작은 상처가 나서 피가 나면 금방 멈추잖아. 그런데 모기는 어떻게 피를 계속 빨 수 있을까? 왜 안 굳지?"


둘째가 그날 아침 왜 모기를 떠올렸는지는 모르겠습니다. 우리를 성가시게 괴롭히는 모기에 대해서 질문할 거리가 많아 행복했던 여름이 생각나서였는지도 모를 노릇이지요. 아무튼 엄마는 모기에 대한 어렴풋한 추억을 떠올리며 운전하고 있었지요. 바로 그때였습니다. 둘째의 사뭇 진지한 걱정을 들은 큰애가 점잖게 끼어들었습니다.      

“내가 말해볼까? 당연히 못 먹지.”     


물론이지요. 모기는 마카롱을 못 먹지요. 너무 당연한 사실이라는 뉘앙스가 형의 목소리에 잔뜩 묻어납니다. 자기 마카롱을 모기에게 뺏길까 봐 염려하는 동생을 향해 형의 어른스러움이 폭발하는 순간입니다. 그런데 잠시 후 덧붙인 큰 애의 말에 저는 말 그대로, 웃음이 빵 터졌습니다.      

“마카롱은 피가 없잖아.”     


그랬습니다. 듣고 보니 흠잡을 데 없는 답변입니다. 모기는 사람의 피만 흡혈하는 게 아니니까요. 포유류나 조류, 파충류, 양서류를 포함한 척추동물의 피를 먹이로 삼을 뿐 아니라 종류에 따라서는 어류 심지어 절지동물까지도 공격하니 말입니다. 마카롱에 피가 있었다면, 모기가 빨아 먹을 수 있을지도 모릅니다.      

     

짐짓 진지한 큰애의 대답에 그날 아침 등원길에 우리는 한참을 웃었습니다. 눈물이 핑돌았지요. 마카롱에는 피가 없어 모기가 먹을 수 없으니 안심하라는 큰애의 답은 진지하면서도 우스개를 입힌 표현이었습니다. 약간 “차도남: 차가운 도시 남자” 스타일인 큰 애는 그렇게 간혹 재미있는 이야기를 툭툭 던지듯 하는 아이입니다. 첫 만남에는 너무 진지해서 재미없을 것 같았는데 몇 번 만나니 뜻밖의 매력이 묻어나는 소개팅남 같다고나 할까요. 귀여운 캐릭터 장식이 되어 있는, 엄마 주먹보다 작은 도너츠 하나를 건네주면 한 귀퉁이를 떼어내 그릇에 챙겨두는 아이. 왜 남기냐고 물어보면 할머니 드릴 거라면서 한라장사급 식탐으로 무장한 동생에게서 도너츠 조각을 지켜내는 큰애입니다. 자기주장과 표현이 적극적인 둘째와 아주 다릅니다. 그래서 질문하며 대화할 때 알게 되는 큰애의 속내가 더 의미 깊습니다. 만약 질문하지 않으면, 아이의 속마음을 직접 듣지 않는다면 엄마로서 제가 알고 있는 아이의 모습과 실제 큰애의 모습에 큰 차이가 있을 겁니다. 내성적인 아이들과 대화할 때는 더 적극적으로 질문해 의견을 물어봐야 합니다.      


그날 아침 식당 테이블에 놓여있던, 살아있는 것 같지만 정작 혈관은 없는 노란 병아리 마카롱. 피가 없어 모기의 공격을 피해낸 마카롱 덕분에 우리 가족은 행복한 또 하루를 누렸습니다. 이런저런 질문으로 서로를 더 깊이 알아갈 수 있어서 행복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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