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른 성에 살고 있는 당신에게
나는 남자다. 그래서 평생 궁금했다. 여자의 몸으로, 여자의 정신으로 사는 건 어떤 삶일지. 부러워보였을 때도 있고 안쓰러워 보일 때도 있었다. 많이 공감해보려고 했다. 이십대 때는 스스로 페미니스트 라고도 했다. 하지만 난 영영 여자를 이해하지 못할 것이다. 난 남자기 때문이다.
반대로, 여자도 남자를 이해하지 못하는 건 매한가지다. 남자의 생각과 고민들. 커가면서 마주치는 변화들. 우리는 절대로 한번도 살아보지 않은 삶에 대해 왈가왈부 할 수 없다. 하루만이라도 바꿔 살아본다면 이해할 수 있을까. 안타깝게도 그럴 수도 없다. 우리는 주어진 이 몸과 정신과, 사회가 범주해둔 테두리 안에서 평생을 살아야만 한다. 남자와 여자 모두.
비유를 하자면, 남녀는 다른 모양과 다른 테두리, 다른 색깔을 가진 성 안에 살고 있는 것 같다. 그들만의 소통 방식에 나름의 법칙들과 습관들. 문화와 고민들. 성이라는 성 안에서 말이다.
실제 현실에서는 그 성들이 부딪힌다. 서로의 다름이 부딪힌다. 다름을 인정하기도, 다름을 인식하기도 쉽지 않다. 그 다른 삶을 고작 상상만 할 수 있을 뿐, 나는 나의 성에 갇혀서 작은 창 밖으로 다른 성을 바라볼 뿐이다.
사랑하는 사이는 어떨까. 이 성 간의 격차는 사랑하는 연인도 마찬가지이다. 다르기 때문에 불꽃 튀었던 열정적인 애정이 식은 뒤에는 놀랍도록 다른 ‘타인’이 옆에 있는 것을 발견할 수 있다. 처음에 새로웠던 것이 낯설어지고 달랐기 때문에 매력적이였던 점이 이해하기 힘든 ‘다름’으로 다가온다.
이성에 다가간다는 건 그런 것이다. 철저하게 다른 타인을 내 안에 들이는 것. 단순한 이해로 되진 않는 것. 그렇다면 이 멀고 먼 성과 성 사이,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할까.
한 신문에 철학자 강신주가 기고한 ‘타인의 고통에 반응할 수 있는 감수성을 그리며’라는 글이 있다. 이 글에는 타인을, 심지어는 나와 아무런 상관 없는 다른 존재를 ‘나의 것’으로 만들 수 있는 힌트가 있다.
그것은 바로 ‘반응하는 것’이다.
무엇에 어떻게 반응하라는 것일까.
내 팔을 꼬집어보면 아프다. 아프다는 것은 나의 것이라는 것이다. 나의 것과 아닌 것을 구분하는 것은 반응할 수 있는가로 나뉜다. 다른 존재로 확장해보자. 길가에 꺽인 꽃을 보고 아파한다면 그 꽃은 단순한 꽃이 아니다. 이 우주의 수많은 꽃 중 나와 연결된 유일한 꽃이다. 내가 우리집 강아지가 아파할 때 슬퍼하면 그 강아지는 나와 연결된 것이다. 뉴스에 흘러가던 어떤 화재사고로 죽은 일가족 이야기를 보고 눈물을 흘린다면 나는 그 가족과 연결된 것이다.
반응함으로서 연결된다.
이는 단순히 시적인 표현이나 어떤 철학적인 개념만은 아니다. 끊임없이 단절되고 개인화되는 이 시대에 어쩌면 우리가 연결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일 수 도 있다.
남자와 여자 사이에서도 마찬가지이다. 여기서 현대철학이 중요하게 여기는 ‘Responsebility’ 리스폰즈빌리티라는 개념을 짚어봐야 한다. 우리는 책임이라는 뜻으로 배우는 리스폰즈빌리티. 소유나 사후처리 같은 뉘앙스의 뜻인데, 원문의 의미를 더 살린다면 리스폰즈+빌리티, 즉 ‘반응할 수 있음’으로 풀어낼 수 있다. 반응할 수 있음.
누군가에게 반응하는 것. 그것이 연결의 시작이자 연결의 증거라고 믿는다. 연결되었기 때문에 나의 것이 되었고, 나의 것이 되었기 때문에 의무와 책임도 생기는 것이다. 그렇다. 아무리 멀고 다른 성에 살아도, 이 반응할 수 있는 마음이라면 어떤 이성과도 연결될 수 있다.
연인이 아플 때 내가 아픈 것 같은 느낌을 가져본 적이 있을 것이다. 왜 그럴까. 내 것이 되었기 때문이다. 내 안에 그 사람이 있기 때문이다. 그 사람의 마음이 내 마음이고, 그 사람의 슬픔과 기쁨이 내 슬픔과 기쁨이다. 그것은 ‘반응할 수 있는 단계’이고, 이 단계가 지속되는 것이야말로 사랑의 최종 목적이라고 할 수 있다.
아쉽게도 시간이 지나면 이 반응할 수 있는 감수성이 닳는다. 이 반응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내가 내 몸 돌보듯, 내 마음 돌보듯 그 정도의 관심과 노력이 필요하다. 반응하지 않음에 민감해야 하고, 상대에 집중하고 관찰하며 이입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우리는 점점 멀어지는 거리를 느끼며, 성 안에서 작은 창에 보이는 흐릿하고 일부만 보이는 상대만을 볼 수 밖에 없다.
우리 대부분은 그 작은 창으로 본 상대를 평가하며 살아간다. 타인의 삶을 한번도 살아보지 못할, 단 한번의 나만의 삶이지만 - 그럼에도 우리는 연결되어야 한다. 상대를 온전히 느끼고 싶고 알고 싶다면 이제 반응해보자. 내 몸처럼 내 마음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