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회의원을 제비로 뽑는다면

아스크랄 마이크로 단편선

by ASTR

제비는 간단했다. 생방송으로 각 지역의 리스트를 가지고 랜덤 추첨을 하는 것이다. 기존에 투표를 하고 개표를 하고 예측 발표를 하고 새벽이 넘어서야 당선 확정을 하는 과정은 이제 생략됐다. 엔터 한번 누르면 그 지역구의 국회의원이 탄생했다.


민주주의를 위배한다고 했다. 모두의 민의를 담지 못한다고 비판했다. 하지만 여론은 제비뽑기로 흘러갔다. 납득이 됐기 때문이다. 어느새 국회는 갈만한 사람만 가는 - 그런 지연과 학연이 있거나 지역의 유지이거나 정치적 야심이 있거나 선거를 할만한 돈이 있거나 말 그대로 정치적인 계산이 빠르거나 정치를 해서 얻을 수 있는 이득에 밝은 사람들만의 장이 되었기 때문이다.


300명의 국회의원이 전국에서 랜덤으로 뽑혔다. 방송에서는 이런 당선자, 혹은 이런 당첨자라고 이모저모를 편성해 내보냈다.


30대 한 평범한 직장인은 본인이 살던 지역구에 20년 이상 거주한 토박이다. 집에서 치킨을 뜯고 있다가 자신의 당선 소식을 들었다. 누구보다 가장 먼저 직장 상사에게 전화가 왔다. 인수인계부터 하라고. 방송국 인터뷰는 따로 없었다. 그보다 특이한 - 주목을 받을만한 사람이 많았으리라.


사실 그는 국회의원이 정확히 무엇을 하는지도 몰랐다. 그에게 붙게 된 5명의 의원실 식구들이 그에게 브리핑을 시작했다. 알고 보니, 실제 국회의원은 그렇게 하는 일이 없었다. 얼굴 마담이랄까. 공식 행사에 얼굴을 내비치고 보좌관이 써준 글들을 읽고, 당이 정한 정책대로 따라가면 됐다.


“직장으로는 괜찮네”

“국회의원도 하기 나름이죠”

“응?”

“편하자고 하면 엄청 편하고 고되다고 하면 엄청 고되거든요”

“그런가요?”


서울의 부자가 많다고 유명한 지역구에서는 한 여성이 당선됐다. 아픈 노모를 돌보고 있고, 아버지가 집을 나간 지 오래된 집안의 장녀였다. 프랜차이즈 식당에서 설거지 일로 돈을 벌고 있었다. 가족 구성원이 있다는 이유로 기초수급자는 되지 못했다. 대학도 중퇴한 그녀는 처음에 국회의원 직을 사양했다.


“무식해서 나는 할 수가 없어요. 똑똑한 분들이나 하는 거죠”

“국회의원은 똑똑한 분들이 하는 게 아니에요”

“그럼 누가 하나요?”

“누군가의 고통과 아픔, 누군가의 절실한 필요를 자신의 것으로 느낄 줄 아는 공감 능력만 있으면 돼요”

“그럼 공감은 누구나 할 수 있는 거잖아요”

“그래서 당신도 할 수 있는 거죠. 그전에 분들은 잘 못했거든요”


방송에서 스포트라이트를 많이 받은 당선자는 19살 고등학생이었다. 올해 수능을 앞두고 있는 고3 여학생. 그는 유튜브와 틱톡을 즐겨하는 MZ세대였다. 사상 초유의 대국민 제비를 실시간으로 라이브 방송을 하다가 자신의 당선 소식을 알았다. 엄청난 소리와 함께 의자가 뒤로 넘어가는 그의 영상은 소셜미디어의 유명한 짤이 되었다.


인터뷰가 시작됐다.

“지금 고3인데 의정 활동하실 수 있을까요?”

“뭐 어차피 대학 가도 취업도 잘 안되고, 뭘 해야 할지 고민하고 있었던 차였어요. 해보는 거죠 뭐. 대학은 나중에 가고 싶을 때 가도 되고.”

“나름 인플루언서인데 정치인과 어느 부분 닮은 게 있습니다. 어떻게 활용하실 생각인가요?”

“활용이요? 그냥 저는 재밌어서 하는 거예요. 활용할 생각 없어요. 그런 생각하면 구독자도 다 알아채고 떠날걸요?”


논란이 된 당선자도 있었다. 전과 4범의 사기 전력이 있는 50대 남성이었다. 이 남성은 자신의 당선 소식을 알자마자 - 이제 사기를 치지 않고 자신의 입지를 이용해서 여기저기서 돈을 받아 논란이 됐다. 한 건설사에 유리한 조건으로 입법을 해주는 조건으로 15억을 받았다는 뉴스가 나왔다. 한 언론사 주필은 이 케이스가 제비로 뽑는 - 민주주의에 위배되는 초유의 실험이 실패했다는 증거라고 썼다. 하지만 사람들은 별 신경 쓰지 않았다. 이미 기존에 있던 선출직 의원들이 잘 해오던 것이었기 때문이다.


300명 중에는 그 외에도 이주민도 있었고, 장애인도 있었으며 성소수자도 있었다. 아마 우리나라 사람을 300명으로 압축한다면 분명 한 두 명씩은 반드시 존재하는 사람들이니까.


다양한 사람들이 사는 용광로 같은 대한민국. 이 실험은 어떻게 끝났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