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스트랄 마이크로 단편선
1.
오늘은 그가 사형을 당하는 날이다. 대중들에게는 정의가 실현된 축제의 날이었다. 그는 별다른 유언을 남기지 않고 눈을 기증해달라는 말을 남겼을 뿐이다. 이날 호루스의 주가는 사상 최고를 기록했다.
2.
사형 선고일이 얼마 남지 않았다. 그는 이제 삶에 아무런 미련을 두지 않게 되었다. 공포와 후회가 뒤섞였다. 자신의 사후는 까마득했다. 그것은 암흑의 심플한 이미지, 그 안에서 허우적 되는 자신이 떠올랐다. 완전히 사라지는 나. 신의 존재를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다. 신이 있다면... 아니, 신이 있었다면 이 지경까지 오지 않았을 것이다. 거짓이 진실을 가리는 현실 세계에서 그것만이 확실한 진실이라고 그는 차가운 벽을 맞대고 중얼거렸다.
3.
그의 변호인이 변호를 포기했다. 접견 자리에서 그는 아이처럼 울부짖었다. 아무도 자신의 말을 듣지 않았다. 변호사는 “말은 필요 없어요. 당신의 눈이 다 이야기하고 있으니까. 더 이상 항고의 의미가 없어요. 이제 그만 포기해요. 당신의 업보입니다.”라고 말하며 가방을 챙겨 일어났다. 이제 세상에 그의 편이 아무도 없다.
4.
그럼에도 그의 눈은 사건의 결정적 증거였다. 대법원에서도 판사는 “이 사건은 명확하게...”로 시작되는 쐐기를 박았다. 원심인 사형을 확정한 것이다.
5.
그는 한동안 자신의 사형 선고보다 동생의 죽음에 빠져있었다. 자신이 동생을 죽인 것이 아닐까 하는 무한한 자책에 시달렸다. 그가 호루스의 임상 실험에 자원하지 않았다면, 그저 실명된 채 살았다면, 호루스의 공고를 보지 않았다면... 호루스... 호루스... 그의 눈이 욱신거렸다.
6.
검찰이 호루스로부터 입수한 그의 안구 기록에 의하면 그는 이제까지 8건의 끔찍한 살인을 저지른 살인마다. 검찰을 당연히 사형을 구형했다.
7.
유일한 혈육이었던 동생이 죽었다. 기자가 다녀간 지 2주 지난 뒤였다. 변호사에게 소식을 들은 그는 믿을 수 없는 듯 오열했다. 그 와중에 차분하게 소식을 전하던 변호사에게 그가 그게 무슨 말이냐고 물었다. 동생이 죽을 이유가 없었다. “당신이 무죄라고 믿는 유일한 사람이었어요. 저에게 무슨 음모가 있다고 그랬었었죠. 그가 말하던 음모들이 다 허황된 것들이었지만요...” 그는 그 말을 듣다가 다시 물었다. 그의 동생이 죽은 방식에 대해. 변호사는 동생이 향정신성 수면제를 과다 복용했다고 했다. 동공이 모두 열렸기 때문에 안구 기록을 찾을 수 없었다고 덧붙였다. 그는 머리가 복잡했다. 그가 아는 한 동생은 수면제를 복용한 적이 없었다. 게다가 안구 기록도 없다니. 영 찜찜했다. 변호사는 “비관하면 그럴 수 있죠. 밖에서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이 없을 테니까.”라고 말한다. 그는 변호사의 말을 듣다 또 호루스가 떠올랐다.
8.
접견실의 TV에서는 호루스의 최신 삽입형 렌즈의 광고가 나오고 있었다. Your World, Another Space.
9.
기자가 찾아온 뒤로 세상에 버려진 듯한 기분이 들었다. 억울한 마음을 판사도, 기자도, 자신의 변호사마저 들어주지 않았다. 동생뿐이었다. 면회를 하며 그의 동생이 했던 말이 계속 맴돌았다. “호루스 쪽 사람이 계속 주위에 있어. 이상해. 나를 미행하는 것 같아. 형이 호루스 때문에 억울하게 누명을 썼다고 너무 많이 이야기하고 다녔나 봐.” 동생에게 미안하다고 했다. 그런 하찮은 위로뿐 할 수 없었다.
10.
기자가 찾아왔다. 기자는 녹음기를 내려놓으며 말했다. “요즘은 증언이 필요 없는 시대예요. 아시잖아요. 하지만 저 같은 사람도 있죠. 이야기를 듣고 싶어요.” 이야기를 듣던 기자는 거슬릴 정도로 이죽거렸다. 살인자의 뻔뻔한 거짓말이라고 생각하는 게 분명했다. “당신의 사형을 찬성하는 여론이 90%입니다. 혹시 피해자들에게 사과할 마음이 있나요?”라고 말하는 기자 앞에서 그는 아직 죄를 모르겠다고 말했다. 기자는 한숨을 쉬더니 녹음기를 끄며 말했다. “당신의 이야기는 흥미롭지만 현실은 냉혹하네요. 당신이 실제로 저지른 살인 말이에요. 그래도 당신이 죽은 이후에도 이 이야기가 남아있을 겁니다. 그게 제 일이니까요.”
11.
변호사가 내 말을 정리하면서 다시 말했다. “그러니까 호루스의 안구 이식 임상 실험에 참가했고, 그 이후에 안구 기록에 하지도 않은 살인 기록이 떴다는 말씀이시죠?” 그는 고개를 끄덕거렸다. 안구 해킹, 이라는 말을 덧붙였다. 아무래도 해킹을 당한 것 같다고 말하며 호루스의 실험에 어떤 문제가 있었던 것 같다고 중얼거렸다. 중얼거린 이유는 그도 자신이 없기 때문이다. 어느 순간이 되자, 진짜 그가 자신도 모르는 새에 살인을 저질렀던 것이 아닐까 생각이 들기도 했으니까. 게다가 상대는 호루스다. 시가총액 2위의 초 글로벌 기업. 그들이 잘못을 인정할 리가 없었다.
12.
구속이 되면서 그의 살인 기록이 매스컴을 탔다. 안구에 기록된 잔인한 살인의 추억들. 모자이크를 한채 한껏 자극적인 헤드라인을 하고 뉴스를 뒤덮었다. 국민들은 분노했다. 피해자 가족은 법원 앞에서 1인 시위를 시작했다. 그들이 든 팻말은 ‘정당한 죗값을 치르게 하라’였다.
14.
동생이 면회를 왔다. 동생은 이 상황을 납득하기 힘든 것처럼 보였다. 가방 속에서 서류 뭉치를 꺼내 그에게 보였다. 호루스에서 안구 기증을 받는다는 뉴스였다. “형, 형이 하지 않은 일이 지금 안구 기록 때문에 한 게 됐어. 나는 호루스 안구 이식 실험 때문이라고 생각해. 이거 봐. 혹시 진짜 살인을 저지른 사람이 호루스에 안구를 기증했고 형이 그 안구를 베이스로 이식을 받았다면..?” 동생은 매우 흥분하여 교도관이 말리는 수준이 되었다. 문을 나서는 순간까지 동생은 나의 무죄를 밝히겠다며 소리를 질렀다.
15.
그의 말을 아무도 믿지 않았다. 그럴 만하다. 모든 것이 호루스의 기술 아래 있으니. 그의 안구 기록을 스캔한 기계도, 기록 재생 홀로그램도, 안구에 기록을 입력하는 기술도 다 호루스의 것이었다. 거짓을 말할 수 있는 사람의 증언보다 거짓을 말할 수 없는 눈의 기록을 믿는 것이 이 기술지상주의 시대의 자연스러움이었다.
16.
경찰이 안내한 작은 방은 취조실이었다. 경찰 두 명이 들어오더니 작은 홀로그램을 띄운다. 자세히 보니 어떤 여자가 괴로워하는 영상이었다. 키가 작은 경찰이 그에게 물었다. “이 여자 알아요?” 그는 모른다고 말했다. 그리고 이게 무슨 일이냐고 물었다. 키 큰 경찰이 작은 경찰과 눈이 마주치더니 이렇게 말했다. “당신이 2년 전에 저지른 살인 기록이에요. 당신을 긴급 체포합니다.”
17.
호루스의 연구실을 나온 뒤 그는 집으로 향했다. 대중교통을 이용하기 위해서는 모든 사람이 안구를 스캔해야 했다. 안구 안에 주민 바코드가 있었기 때문이다. 그가 하이퍼루프 지하철을 타기 위해 안구를 스캔하자 개찰구의 경찰이 그를 제지했다. 당시에 그는 경찰이 단순히 행정상의 실수로 자신을 제지하는 줄 알았다. 경찰은 그에게 “잠시 따라오시죠”라고 하며 작은 방으로 안내했다.
18.
하루 뒤 붕대를 풀었다. 어떠냐고 묻는 연구원 말에 그는 눈알을 굴려보았다. 매우 깨끗했다. 거의 한 치 앞도 안보였던 시야가 이제는 연구실 창 밖의 숲까지도 넓게 보였다. 아주 잘 보인다고 말하자 연구원은 흡족한 듯 웃었다. 그러면서 아직 공식 출시되지 않은 호루스 제품의 베타 버전이라며 눈을 두 번 빠르게 감아보라고 했다. 그러자 눈 앞에 있는 연구원의 얼굴이 클로즈업되어 보였다. 그는 무척이나 신기해하며 진작 시술을 받을 걸 그랬다고 웃으며 말했다.
19.
수술은 밤 10시에 진행됐다. 이제까지 안구에 IT 렌즈를 삽입하는 기술로 최정상에 오른 호루스가 이번에는 안구 자체를 인공으로 제조하여 삽입하려고 한다. 그는 그 첫 번째 임상 실험자였다.
20.
스마트폰 대신 안구 렌즈로 정보를 탐색하고 소통하는 시대에 그는 구닥다리 사람이었다. 아직도 사람과 직접 이야기하는 걸 좋아했다. 그런 그에게 동생이 뉴스 하나를 보내며 말했다. “형, 호루스에서 안구 이식자를 찾는데. 형 눈도 많이 안 좋은데 이번 기회에 바꿔봐.” 그는 내키지 않았지만 동생의 부탁에 안 보이는 눈으로 홈페이지 신청을 넣었다.
그가 대상자로 선정됐다는 소식은 얼마 지나지 않아 전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