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스트랄 마이크로 단편선
이번에는 이 박사의 공이 컷다. 주변에서는 20년 동안 랩실에만 처박혀 있더니 드디어 결실을 보네, 라며 돌려까기 아닌 칭찬을 했다.
”국가생활과학연구소에서 연구비를 지원하기로 했다면서. 축하해.”
김 교수가 이 박사의 어깨에 손을 올리며 말했다.
“아, 김교수님. 감사합니다. NLS 말이죠? 아니였나, NNL 이였나”
“뭔든 무슨 상관이야. 연구비 공식 지원은 모든 학자들의 꿈이야. 나랏돈 먹으면서 안정적으로 연구하기 쉽지 않지. 자네도 이번 기회에...”
“근데 NLS 맞죠? 맞는 것 같은데...”
이 박사는 중얼거렸다. 김 교수의 얼굴은 찌푸려진다. 이 박사는 안경을 검지로 올리며 국가생활과학연구소에서 어떤 연구 지원을 했는지 검색해본다.
2018년 1월 7일 공식 지원의 기초 자료가 된 연구.
겨울 횡단보도를 보행하는 시니어의 사고율 감소를 위한 노안 발생 감소를 효과적으로 일으키는 눈 요가 운동에 대한 방법론 효용 조사.
이게 뭔 말이야. 지원 규모를 살펴보니 3년 간 10억원이 지원됐다. 눈 요가? 횡단보도에 교통 관련 부서가 붙었겠고, 시니어에 복지부가 붙었을 거고, 노안에 보건 쪽이, 요가 쪽에는 또 온국민체조 개발하던 거기서 붙었겠지. 아무리 봐도 지난 3년간 눈 요가의 요자도 볼 수 없었는데 10억원은 모두 어디로 간걸까? 눈 요가가 좋긴 좋지. 근데 아무리 그래도 광장에 몇 백명 세워두고 눈 요가 체조로 한번에 다 눈을 희번뜩 뜨고 눈알을 굴리는 걸 보고 있긴 역시 고역이군 이라는 요지로 이 박사는 김 교수를 올려다봤다. 그는 눈을 돌리며 눈 요가를 하는 모양이다.
이런 허투른 연구 성과가 되지 않도록 하겠다는 것이 이 박사의 생각이었다. 수많은 연구들이 용두사미가 된다. 실적을 위한 전시행정의 제물이 되거나 국가 예산 낭비의 오명을 쓰기 쉽다. 지원이 밀려오면 거기에 중독되기 마련, 나태해지게 되는 것이다.
“자네 듣던대로 정상이 아니군. 그래서 지원 받기 싫어?”
“지원 감사합니다”
이 박사는 조용히 랩에 돌아왔다. 그의 연구 주제는 분노였다. 한국인만 있다는 파이어 디지즈, 즉 홧병을 포함해 최근 일어나고 있는 분노와 연관된 원인을 파악하고 그걸 줄일 수 있는 단서를 연구하는 것이었다. 정부에서도 국민의 정신상태에 좀 문제가 있다고 판단한거 같다. 그렇다고 해도 분노 없는 대한민국. 뭔가 밥 없는 김밥 같지만 일단 그렇게 하기로 했다.
하지만 문제가 있었다. 연구의 핵심은 데이터. 유의미한 데이터를 수집하기 어려웠던 것이다. 분노라는 것은 정말 불 같아서 그 불길이 휩싸이고 있을때 관찰해야 의미가 있었던 것이었다.
“소스가 엉망이야.”
랩실 동료인 한 박사에게 고개를 떨구며 말했다.
“분노, 라는게 추상적인 개념이여서 더 그렇겠네요. 주관적이기도 하고.”
“맞아, 그리고 연구하기가 정말 까다로와. 단순히 문진하고 설문하고 그렇게 결과를 낼 수 없어. 왜냐. 분노했던, 이런건 텍스트에 불과한 것이거든.”
“그럼?”
“분노하고 있는, 이게 중요하지.”
그렇다고 넋놓고 있을 순 없었다. 다음날부터 이 박사는 전국에서 분노조절장애자들을 섭외했다. 강남불주먹부터 화나면 머리부터 박아버리기로 악명 높은 부산 앵그리버드까지. 섭외는 어렵지 않았다. 돈만 있으면 이런 사람들을 한 군데 모을 수 있다.
“분노가 치밀어 오를 때를 묘사해주세요”
“그게, 말로 설명하기 어려운데. 안에서 갑자기 울화가 치밀어올라요. 그거 알아요? 심장이 막 뛰는거”
“아드레날린이 막 분비되는 거 같은?”
“맞아요, 아드레 뭐시기”
“그 분노를 표출시키는 원인이 보통 뭡니까?”
이 박사가 묻자, 잠시 가만히 생각하는 얼굴을 한다.
이들은 사실 선량하기 짝이 없는 자기 엄마나 동네 할머니에게 시비를 걸며 사소한 것에 분노를 표출하는 양아치들이었다. 이런 말이 돌아다니던데 틀린 말 하나 없다는 것이, 그들을 직접 만나보고야 이 박사는 알았다.
자기 입으로 분노조절 있다고 말하는 얘들 특징 :
자기보다 쎈 놈 앞에서는 분노조절 잘됨
분노조절장애자에 이어 실제 감옥에 복역하고 있는 분노 범죄자들. 대학병원에 홧병으로 내진한 환자 를 만났다. 인터뷰를 통해 이들도 모두 분노가 어떤 상황적인 것에 대한 일차원적인 반응에 불과한 듯 보였다. 이 박사가 원하는만큼 라이브한 데이터들은 아니었고, 허공을 손으로 휘젓고 있는 듯 했다.
모두가 퇴근하고 어두운 복도와 스탠드 하나 켜져 있는 연구실 안에서 이 박사야말로 몇번이나 소리를 질러댔다. 쌓인 것이 영 달아나지 않았다.
소리를 질러대고 난 뒤에 정적은 언제 그랬냐는듯이 부끄럽게 찾아온다. 정적이 한참 동안이나 흐른 뒤 그제서야 뭔가를 깨달았다듯이 그는 켬퓨터를 켰다. 미친 사람처럼 논문 서문을 쓰기 시작했다.
“분노는 실제적인 감정의 한 종류가 아니라는 것이 이 연구의 중요한 단서이다. 매운 맛은 맛의 종류에 포함되지 않고 실제 고통인 것처럼. 분노는 개인의 기질적인 형태와 무관하다. 개인의 안전과 평안이 깨지고 불균형이 생김에 따른 자기방어본능이다. 공격성을 내포하는 자기방어본능이 최근 더 많이 더 많은 사람에게 발현된다는 것은 그만큼 그들의 삶이 위협받는다는 반증이 된다. 물론 그 공격성은 안정을 깨뜨리는 그 대상이라고 볼 수 있다. 그렇다면 이 분노라는 자기방어를 어떻게 데이터화할 수 있을까. 기질이 아니기 때문에 그 때 그 당시의 생생한 즉시성이 중요하다. 실험이 아닌 실제 위협받는 상황에서 그들의 반응을 조사할 수 있다면...”
그때 한 박사가 갑자기 소리를 지른다.
“아이, 이 놈의 폰을 바꾸던가 해야지. 매달 돈 먹어가면서 맨날 불통이야! 확 던져버릴 수도 없고”
“저기 한 박사, 저번에는 진짜 하나 던졌지않나”
“툭 하면 꺼지고 전화도 안되고 벽돌 들고 다니는거 같아요, 열불 납니다”
“기계 불량인 것 같은데, 서비스센터에 전화는 해봤어?”
“서비스센터 전화하는 것도 불통이에요!”
“아...”
부들거리며 폰을 들고 한 박사를 가만히 보더니 이 박사는 뭔가를 깨달았다듯이 의자에서 박차고 일어났다.
“나 좀 밖에 나갔다올게”
“어디 가세요?”
“연구주제 단서를 찾았어”
그가 연구소 법인차를 한참 몰고 도착한 곳은 한 통신회사의 강남지사였다. 이 통신회사로 말한 것 같으면 대한민국의 유무선 통신 서비스 매출액 1위의 선두 업체다. 거의 혼자 해먹는 독과점을 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데 대한민국의 땅덩어리에 통신회사 라는게 몇개 없기 때문이다.
이 박사도 이 통신회사의 서비스를 이용하고 있었다. 연구실의 와이파이도 이 회사, 인터넷도 이 회사다. 그 건물 앞에서 이 박사는 가만히 스마트폰을 바라보다 화면 위에 박힌 회사의 이름을 본다. 그리고 주변의 행인들, 모두 스마트폰만 바라보고 있는 그들.
이 박사는 준비한 조끼를 입고 건물에 들어갔다. 쿠팡에서 산 공사용 형광조끼다. 건물 안에는 물론 신원 확인 절차가 있다. 카드가 있어야만 위층이든 아래층이든 갈 수 있게 되있었다.
“어디서 오셨죠?”
무표정의 정장 입은 직원이 이 박사에게 묻는다.
“데이터 복구팀인데요. 긴급으로 연락 받고 왔습니다”
“데이터 복구팀이요. 잠시만요.”
귀에 걸린 인이어로 뭐라뭐라 말하는 듯 보인다. 입모양을 살펴보니 데이터 복구팀을 부른게 맞냐 정도. 그게 맞다면 이 박사는 바로 쫒겨날 것이 분명했다. 사실 아무 말 생각나는대로 지껄인 것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네 들어가십시오”
문이 열렸다. 이 박사는 순순히 내부에 들어올 수 있었다. 조끼의 힘인가, 라고 생각하고 있는 찰나 엘리베이터 맨 아래 층을 눌렀다. 주머니 속에서 신나통을 꺼낸다.
귀에 이어폰을 꼽고 분노의 역류 OST를 듣는다. 장엄하다. 분노가 밀려오는 이 기분. 사람들의 욕지거리가 환청처럼 들린다. 이 박사는 의미 모를 미소를 짓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