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스트랄 마이크로 단편선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가 창궐하면서 지구가 바빠졌다. 이럴 때마다 한 번씩 입장 대변 대회를 열어야 했기 때문이다. 지구는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와 관련되어 있는 이해관계자를 모두 불러 모았다. 그들은, 다들 할 말이 많은 것처럼 보였다. 물론 처음은 - 바이러스의 입장이었다.
안녕. 나는 이번에 새로 나타난 신종 코로나. 아니지. 박쥐 속에 원래부터 있었는데 사람한테 가서 그 난리가 난거지. 암튼 신종이란 말은 사람이 붙인 거고 신종은 아니야. 박쥐 안에서 계속 신종이 나오니까 내가 신종이 아닌지도 오래됐어. 너네 인간들이 맨날 신상 신상 하면서 1년만 지나면 떨이 취급하는 거랑 비슷해. 나는 원래 박쥐한테 그런 존재였어. 코로나가 내 엄마야. 박쥐 생태계 안에서 신종인 내가 태어났고 그 뒤에도 무수히 많은 바이러스가 박쥐한테 태어났어. 흠, 아-주 잘 공생했어. 불만도 없어. 내가 굳이 튈 이유도 없고 내 존재는 그냥 기생해서 살아만 있으면 되니까. 나는 명예도, 성욕도, 부에 대한 욕심도, 다른 바이러스보다 잘나야 하는 우월감도 없어. 나는 그냥 박쥐 안에서 잘 살고 싶어. 지구 안에서 박쥐 만한 동물이 없거든. 나를 받아주는 게. 그런데 갑자기 내가 유명 바이러스가 됐네? 인류를 위협하는 바이러스로?
하아, 한숨부터 나온다. 벌써부터 인간들이 나를 혐오 동물로 만들고 있어. 인간들이 취약한 바이러스를 많이 품고 있긴 하지만 굳이 내가 있는 동굴이나 산림까지 찾아와서, 굳이 나를 잡아다가, 굳이 나를 시장에 내 팔고, 굳이 나를 탕 속에 대쳐서 먹지만 않았어도 나는 이번 사건과 아무런 연관이 없을 예정이었어.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의 입장도 들어봤지만 우리 박쥐도 이번 사건에서 정말 손 떼고 싶어. 인류에 개입하고 싶지도 않았어. 안 그래도 자꾸만 괴롭히는데 왠지 우리 종을 멸종시킬 명목을 만드는 거 아닌가 몰라. 인간이 우리를 어떻게 생각하는지는 잘 알아. 뱀파이어 같은 거지. 뭔가 끼림직하고 절대 가까이해서는 안 되는. 사람 먹고 전염시키는. 그 공포를 이겨낸 인간 히어로가 배트맨인가 뭔가 하더만. 배트맨 필요 없어. 그냥 우리를 엮지만 마.
몰랐어. 그렇게 될 줄. 중국 사람들은 먹을 수 있는 건 다 소화한다고 생각한다니까. 박쥐 안에 그런게 있을 줄 꿈에도 몰랐지. 내가 묵었던 곳에서 기침하고 설사했던 그것들 때문에 전염자들이 많이 나왔어. 미안하지. 정말 맞나 봐. 인류를 바꾼 세 가지 총, 균, 쇠 중에 바이러스가 들어가 있는 게.
절대 우리 동네로 들어오지 마. 중국인들 입국도 다 막고, 우한에 살았던 우리나라 사람들도 우리 동네는 안돼. 이기적이라고 많이 욕하는데 너네 동네여도 그런 말 할 수 있어? 가슴에 손 얹고 솔직히 말해봐. 다 자기 입장되면 그럴 거잖아. 이기적인 게 아니라 우리는 우리 생존권을 투쟁하는 거야. 그러다가 우리 동네에 다 퍼져서 다 죽으면 책임질 거야?
그런 불안을 만드는 데는 제가 일조했죠. 왜 그렇게 어그로를 끄냐고요? 그게 돈이 되거든요. 자극적인 제목을 짓고 갈등을 만들고 혐오를 만들어야 사람들이 모입니다. 온라인에서는 사람들이 모이는 것이 곧 돈이에요. 우리도 그러고 싶어서 그러겠어요. 다 먹고살려고 그러는 거죠. 누구 사람 죽인 것도 아니고.
이번 바이러스 사태가 호재예요. 누군가에게는 재앙이지만 공장을 24시간을 돌려도 모자랄 만큼 완전 매출 쑥쑥입니다. 오늘 아침 조례에는 마스크 값을 5배 올려서 받으라고 지시를 내렸어요. 아니, 이 재앙과 같은 시기에 금쪽같은 마스크 만들고 공급하는 그 값을 제대로 치러야 하지 않겠어요?
인간들은 이제 그만 이야기하고. 이제 내 차례네. 이번 대담을 통해 각자 입장을 좀 알았을 테니, 한번 잘 정리해봐요. 나는 원래 중립이니까 개입은 보통 안 하는데 여름을 좀 빨리 오게 해서 바이러스 확산을 늦추는 방안에 대해 고민 중이에요. 안 그래도 인간들이 남극 빙하 다 녹게 만들어서 여름이 길긴 한데 그래도 불쌍하니까. 다들 지구야 미안해 이러면서 캠페인 하는 것도 알아. 고맙기도 하고요. 그런데 미안해할 필요 없어. 나는 하나도 안 아파. 아프고 고통받는 건 인간 스스로야. 그걸 의외로 잘 모르더라고.
지구의 입장을 듣다 보니 원래 의견을 잘 안 내는데, 작디작은 별에 일어난 바이러스 사태에 대해 한마디 보태겠습니다. 은하계와 국부 은하군, 성단을 쭉 보다 보면 가끔 별들이 상하거나 기능을 상실할 때가 있는데 그걸 우주 용어로 ‘바이러스 먹었다’라고 해요. 바이러스가 아마 인간이 생각하는 그 바이러스가 아닐 거예요. 지구가 지금 바이러스를 먹은 상태고, 그 바이러스 이름은 인간입니다.
지금은 지켜보고 있는 중이에요. 지구를 좀 먹고 있는 바이러스를 어떻게 해야 할지. 최근에 달 탐사도 하고 화성 이주 계획도 있는 것 같던데 우주 곳곳에 감염이 되지 않게 방역도 하고 격리 조치할 생각입니다.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 씨, 그게 맞는 거겠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