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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STR Jun 23. 2021

아기가 귀여워 보이기 시작했다

아무래도 호르몬의 장난

신기하다. 서른 살이 기점일까. 아이들에게 눈이 가다가 결혼 후에는 아기가 보이면 우리 부부는 아이에게 눈을 떼지 못한다. 다른 이유가 없다. 아이가 그저 너무 귀여운 것이다.


유모차를 탄 아기, 아빠 품에 보자기를 싸고 있는 아기, 엄마 손을 잡고 아장대는 아기, 아니 사실 그냥 아기 존재만으로 뭔가 말 못 한 마력 같은 것이 있다. 같은 공간에 아직 다 자라지 않은 미성숙한 생명체가 있다는 사실이 내면으로부터 말 못 할 감정 같은 걸 만든다.


나의 뇌피셜은 결혼을 하거나 임신과 출산을 앞둔, 그러니까 가임기의 남녀에게 그런 감정이 더 잘 올라오는 것 같다는 것이다. 어떤 호르몬 같은 게 작용하는 것이 분명하다. 아기에 대한 호감도를 상승시키고 그를 보호하고 애착하도록 만드는 호르몬 말이다.


그도 그럴 것이 가면 갈수록 아기에 대한 애착 같은 게 생기는 것 같아서 말이다. 우리도 빨리 아이를 만들어야지, 라는 생각이 들기도 전에 마음이 간다. B가 친구의 아기를 보고 온 뒤 나에게 문득 보여주는 사진만으로도 그런 마음이 든다. 나의 아이가 아닌데도 그 생명의 삶이, 아무 탈 없이 잘 자라날 수 있도록 기도하게 되는 것이다. 이게 나와 B만 그런 건지 모든 인류의 공통적인 유전자 안에 있는지 확실치는 않지만- 분명한 건 이런 마음의 동함이 타인의 아이도 공동으로 관심을 기울이고 함께 키워나가는 사회적 육아의 시작이 된다는 것이다.


그리고 우리 부부 개인적으로도 아이를 낳고 싶어 하게 하는 어떤 힘으로 작용한다. 그런 또 다른 한 면으로는 마치 TV 육아 프로의 귀여운 아이들이나 인스타그램에서 보는 귀여운 아이 모음집이 인기를 끄는 것처럼 단순히 ‘귀여움’만으로 아이를 소비하는 것 아닌가, 또는 그런 트렌드에 내가 따라가는 것 아닌가 하는 이상한 죄책감 같은 것도 있다. 아이에게 끌리는 것은 분명 귀엽다는 감정이지만 그 이후에는 아이를 둘러싸고 책임을 비롯한 다양한 것들이 필히 기다리고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육아와 출산, 임신도 전의 연인의 입장에서는 물론 먼 이야기처럼 느껴진다. 눈앞에 귀엽게 애교를 피는 아이가 생길 거라는 상상이 잘 가지 않는다. 아직까지는 남들의 아이를 보며 우리 귀여운 아이를 어렴풋이 그리는 것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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