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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STR Nov 15. 2021

남성 집단 히스테리 발생 건에 대하여

아스트랄 마이크로 단편선

봐봐. 원인을 굳이 따지자면, 모기였어.


모기 개체 수가 늘어나기 시작했지. 그해 여름은 무한대의 더위를 뿜어냈고 모기들에게는 그들이 가장 번성했던 초기 지구를 떠올리게 할 정도였으니까. 서서히 익어가는 지구는 인간들이 기후 위기라고 불러대는 걸 이해하지 못했다고 해. 그저 인류 위기였을 뿐인 거지. 그렇게 생태계의 고리 역할을 하는 - 하지만 인간 대부분은 그 존재 의미를 알지 못했던 - 모기는 지구온난화가 양육하고 있었어.


몇 해 전에 미국 T 대통령이 지구온난화는 과학자들이 꾸며낸 페이크 뉴스라고 강단 앞에서 소리치던 것이 어떤 사람들에게는 그대로 받아 들어졌어. 평소에 그에게 넘치는 듯 보였던 테스토스테론은 가짜였지만, 남극에서는 가짜가 아니었지. 지구의 열이 올라가자, 당연하게도 남극의 빙하가 녹기 시작한 거야. 새하얗게 위용을 자랑하며 햇빛 아래 눈부시게 빛났던 거대 빙하들은 마치 고대의 신화처럼 초라하게 몸짓을 줄였단다. 조각- 조각- 나면서 서서히 어쩌면 재빨리 모든 것의 끝을 잡아당겼어.


남극 빙하가 녹자 얼음으로 쌓였던 땅이 얼굴을 드러냈어. 지구에 한 번도 얼굴을 드러내 본 적 없는 땅. 땅 위에 축축하게 남은 빙하의 흔적은 이끼가 점령했고, 마르지 않는 물 웅덩이들을 만들어냈지. 땅들의 주인은 계획하지 않은 일이었어.


자, 이제 남극은 모기의 놀라운 인큐베이터가 되었어. 마르지 않는 물 웅덩이에서는 수천수만의 모기 유충이 자라났고, 성체가 된 모기는 또다시 자손을 만들어냈지. 남극 모기는 도시 모기와 조금 달랐는데, 크기부터가 남달랐다고 해. 큰 모기는 손가락 만했고, 모기 소리는 드론 소리와 같았다니 정말... 과학자들은 '슈퍼 모기'가 탄생했다고 보고했지만, 언론들에게는 그리 매력적인 헤드라인이 아니었나 봐. 도시 사람들이 이 모기를 마주했을 때의 감정이 외계 생물을 본 것 같았을 것은 분명했지.


한편 아프리카 대륙에서는,

글로벌 대기업들이 실험을 하고 있었어. 모기로 인한 풍토병이 없어질 기미가 보이지 않자. 모기를 퇴치하는데 바이오 테크 기업이 나선 거야. 매년 말라리아로 감염된 사람이 2억 명이고, 그중 93%가 아프리카인이었어. 인류에게 말리리아를 옮기는 모기는 해악 그 자체였고, 해악을 없애는 것은 사명이었어. 사명은 글로벌 대기업 홈페이지 한쪽 사회 공헌에 들어갈 만한 유전자 조작으로 확장됐어. 불임 모기를 만들자.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는 모기를 관리하기 위해 이런 기술이 또 없었겠지. 보고를 받은 윗선은 감동을 받고 기립 박수를 쳤대. 인류를 한 단계 더 성숙하게 만드는, 이것이야말로 기술의 승리라고.


모기는 생각했어.

"지금 무슨 일을 벌이는 거야?"


1년쯤 지났을까. 불임으로 만들고도 모기 출몰을 막지 못하자, TF팀은 시나리오를 급하게 바꿨어. 모기가 짝짓기를 하면 유충이 제대로 형성되지 않고 죽어버리도록 유전자 조작을 다시 했다고 하지. TF팀은 초조했을 거야. 이미 상부까지 보고가 들어간 상태고, 윗선이 매우 기뻐했다는 것은 그만큼의 성과가 확실해야 한다는 의미였으니까. TF팀은 1차 시도를 실패한 상태라 2차, 3차까지 계속 이어진다면 팀의 신뢰를 잃을 것은 자명했어. 팀장은 결단을 내렸어. 이번에는 확실히 박멸을 하도록 말이야. 비장한 목소리로 말했어. “이제 유충을 낳는 암컷 모기 또한 죽어버리도록 유전자 재설계를 합시다." 이제 모기에게 짝짓기가 죽음의 의식이 되었어. 의식을 설계한 인류는 마치 신처럼 장기말을 만지작 거리고 있었고, 물론 모기의 의사는 물어보지 않았지.


아프리카 대륙의 모기 출몰이 기하급수적으로 줄었어. TF팀은 매우 기뻐했고, 곧바로 본사에 보고했어. 이제 아프리카 파견 근무가 아니라 본사에서 더 좋은 급여와 더 좋은 자리를 받을 수 있을 거라 기대했어. 아프리카에서 일하는 것이란 사명감으로만으로는 되지 않는 것이니까. 어느 정도 인류에 봉사했으니, 이제 그 추억을 가지고 편하게 살고 싶은 것이 솔직한 속내였어. 그리고 그들의 시나리오에는 남극의 슈퍼 모기가 아프리카까지 날아올 것이란 예측은 전혀 없었지.


슈퍼 모기와 유전자 조작 모기가 다대다 미팅을 가졌어. 남극 깊은 곳에서부터 강인한 몸을 얻은 슈퍼 모기는 유전자 조작 모기와의 짝짓기도 서슴치 않았지. 몸에 폭탄을 가지고 있는 유전자 조작 모기와의 짝짓기는 처음에는 동반 자살과 같은 행위였는데, 모기는 한 둘이 아니었고, 돌연변이를 가진 - 그러니까 유전자 조작에 알맞게 대처할 수 있는 유전자를 가진 모기와의 짝짓기가 하나 둘 성공하기 시작했어. 모기의 성공이란, 인류에게는 실패였지. 인류의 실패란, 어쩌면 죽음을 의미했거든.


모기는 또 생각했어.

"나는 이렇게까지 하려고 한 건 아니라고"


이형의 모기를 발견하고 연구한 과학자 집단은 재빨리 과학 저널에 최신 논문을 올리기 시작했어. 제목은 '이형 모기가 관여하는 바이러스 전파 메커니즘에 대하여'. 이 말인즉슨 남극과 아프리카에 국한됐던 지역 풍토병 바이러스가 새로운 유전자 형태를 만나 전 세계 팬더믹으로 번질 수 있다는 경고였어. 하지만 어김없이 매력적이지 않았던 헤드라인 때문에 언론사의 외면을 받았고, 환경 보호 단체의 흔한 외침 정도로 치부되었다고 해.


빙하가 전성기의 3% 밖에 남지 않았을 때, 이미 미국의 T 대통령은 퇴임한 지 오래되었을 때, 여전히 가짜 뉴스의 망령이 돌아다니고 있었을 때, 모기떼들이 도시에 출몰하기 시작했어. 뉴스는 관측 이후 가장 더운 날이 이어지고 있다는 헤드라인에 모기떼의 출몰도 이어지고 있습니다 라고 덧붙이는 정도의 보통의 여름 뉴스처럼 보도되었지. 가장 더웠던 도시의 밤, 가장 많이 모기에게 흡혈당했던 그 해 여름, 그때부터였을 거야.


앞으로 아이가 태어나지 않을 수 있는 모든 것의 시작.


태아사망률이 늘어나기 시작했다. 태아사망률이란 건 그 나라의 의료 전문성과 비례하기 때문에 국가의 선진 척도로 취급되는 걸 알지? 선진국들로 분류되던 나라들의 태아사망률이 급증하게 되었고, 출산에 성공한 다음에도 인큐베이터에 갈 만큼 허약한 신생아들이 많아졌어. 그제야 언론은 이렇게 헤드라인을 내세웠다. "태아사망률 미스터리, 우리는 지금 어느 시대에 살고 있는 것일까?' 특히 한국이란 나라는 이 사태에 대해 정부가 의료 민영화를 하지 않아서 그렇다며 맹공격을 퍼붓기 시작했고, 더불어 대통령 지지율도 최저치를 기록했지.


얼마 지나지 않아 이것이 모기가 옮기는 바이러스 때문이라는 것이 밝혀졌어. 바이러스의 형태가 십자가와 닮았다고 십자가를 뜻하는 라틴어 크룩스(Crux)를 붙여 크룩스 바이러스로 명명됐어. 한편에서는 중국의 연구소에서 비밀리에 실험하던 모기가 유출된 것이라는 루머까지 돌더라고. 사실 그 루머는 미국에서 만들어낸 것이었고, 중국은 미국이 그동안 행한 유전자 조작 사례들을 내세우며 강하게 반박했지. 몇 해전 이미 종식된 코로나 사태의 재림이었어. 이들 G2의 충돌은 한동안 무역 보복으로 전 세계 경제를 덤으로 얼어붙게 만들었었지.


그 사이에 글로벌 제약사에서는 크룩스 바이러스 백신을 개발했어. 안 그래도 낮아지는 출생률 때문에 지도 상에서 사라질 위기에 놓였던 대한민국은 가장 서둘러 백신을 도입했어. 대상은 임산부와 가임기 여성. 하지만 백신 포비아는 여전히 있었고, 매우 낮은 접종률을 보였지. 임신을 준비하는 신혼부부들을 설득하는 산부인과 전문의들이 매일 밤 뉴스 인터뷰에 등장했고 산부인과협회에서 성명을 낼 정도였으니까. 성명 타이틀은 이랬다. '임산부와 태아 건강, 의사 책임으로 전가하지 말라' 몇 해 전 통과된 수술실 CCTV 덕분에 태아 사망 사건의 피해자 가족들이 병원에 거는 소송 건수도 급증하게 된 것이 무관하진 않았던 거지. 이제 의사들은 본인들이 살아남기 위해서는 백신의 전도사가 되어야 했어.


이런 전도사가 있었기 때문에 크룩스 백신을 개발한 글로벌 제약사는 코로나 사태 이후 또다시 핫한 테마 종목으로 분류되었어. 떼돈을 벌었다는 말이 정확할 것 같은데, 시총이 몇 배나 뛰었으니까. 제약사 CEO는 각 나라에 선심 쓰듯이 생산 공장을 짓겠다 발표했고, 더욱 싸게 백신을 생산할 수 있게 됐어. 물론 싸게 팔지는 않았지. 저소득 국가는 여전히 백신 사각지대에 있었고, 이들의 합계 출생률은 무한히 0을 수렴하고 있는 중이었어.


모기는 여전히 생각했어.

"내가 인류를 과대평가했어"


모기가 숙주가 되는 크룩스 바이러스는 이제 돌파 감염을 일으켰어. 여러 돌연변이가 일어났기 때문에 그중에서 가장 강력한 것으로 분류된 것이 오메가 변이. 이게 끝이었으면 좋겠다는 과학자의 염원이 담긴 이름이었어. 참 단순하지? 그런 염원을 비웃듯 오메가에서 거치지 않고 오메가-3029 따위의 라벨이 붙은 변이를 끊임없이 만들어냈으니까. 그렇게 드디어 등장하는 오늘의 주인공, 오메가-7192 변이가 탄생했어. Ta-da!


크룩스 오메가-7192. 이 바이러스가 순식간의 공포의 바이러스가 된 이후는 - 가임기의 여성에게만 국한되었던 바이러스의 공격 타깃이 모든 남성에게까지 확장되었기 때문이야. 자세한 기전은 복잡하니까 간략히 설명하면 바이러스 감염자는 테스토스테론 분비량의 급격한 변화가 생겼어. 고환의 기능성도 매우 떨어지고 말이야. 세계 남성들은 패닉에 빠졌어.


연구 결과, 크룩스 오메가-7192는 남성의 정자를 무한 생산하는 고환을 특히 공격하는 것으로 드러났어. 나아가 고환의 정자 생산 능력도 현저히 떨어뜨리는 것으로 나타났다,라고 처음에 발표를 했는데 실제 감염된 남성들을 추적 조사해보니 현저히 떨어뜨리는 수준이 아니라 아예 정액 속에 정자가 들어있지 않았다고 해. 충격적인 결과였지. 말 그대로 생식 능력을 완전히 상실해 버리는 것이었고 속된 말로 ‘속 빈 강정’이 되는 것이었지.


그 능력 상실의 과정은 매우 드라마틱해서 좀 설명을 해볼게. 감염이 되면서 정자 생산 능력이 하향 곡선을 타며 떨어지고 이미 고환에 가지고 있었던 정자들과 감염 이후 생산되는 정자들이 감염자의 유일한 정자가 되었어. 정자를 무한 생산하는 능력을 잃고 사정 몇 번 하면 무정자증이 되는 바이러스. 정말 무시무시하지?


원래 남성은 크록스 바이러스에 감염되면 감기 증상처럼 잠깐 앓고 지나갔기 때문에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는 경향이 있었어. 백신 접종도 여성만 필수로 접종했고, 남성은 여성들이 겪는 문제로 치부했다고 하지. 백신 포비아를 겪는 여성들을 온라인에서 조리돌림 하기도 하고 말이야. 여성들이 불안감을 토로하고 집단행동을 할 때 이기주의라며 조롱했지. 하지만 막상 본인들의 일이 되자, 이들은 역사상 누구보다도 앞뒤 가리지 않는 난폭한 집단이 되었어.


이 문제가 모기에게 시작하긴 했지만 모기의 잘못도, 아니 지구의 잘못도 아니고, 인류가 잘못하긴 했지만 그렇다고 누굴 콕 집어 탓할 수 없는 복잡한 문제잖아. 남자들도 그걸 알았어. 그래서 무차별적인 분노가 시작됐어. 왜 여성들에게 했던 대처만큼 남성들에게 해주지 않는지, 사태가 이렇게 심각해질 때까지 방치한 정부를 거의 전복할 만큼의 분노를 표현했고 또 한편으로는 결국 바이러스에 확진되어 정자를 잃어버린 피해자를 조롱하는 문화가 확산됐어. 전문가는 이런 문화가 피해자를 깍아내리면서 자신의 남성성을 확인하고 그 사이에 심리적 장벽을 세우는 행위라고 해석했어. 하지만 이런 해석이 무슨 소용이겠어. 남성들에게는 자신이 남성이 아니게 되는 인생 사상 최대의 위기이므로.


글로벌 제약사의 백신도 영원한 건 아니었어. 남성들은 서둘러 백신을 맞았지만 약발은 금세 떨어졌고 남성 확진자는 눈덩이처럼 불어났지. 그 이후에 알게 된 것인데 고환의 정자 생성 능력이 없어진 것과 동시에 남성의 테스토스테론 분비도 뚝 떨어졌어. 남성 확진자 중에 몸이 여성처럼 변했다는 보고도 그쯤이었지. 남성성을 신처럼 여기는 일부 남성들은 더욱 패닉에 빠졌어.


트랜스 된 피해자들은 모임을 만들었고 서로 연대를 했어. 일부는 정부이 피해 대책을 요구했고 피해자가 있으면 서로 적극적으로 도왔지. 이 중에는 평소 여성 혐오에 빠져있던 사람도 섞여있었는데 자신의 몸이 여성으로 변했을 때 무슨 생각이 들었을까?


바이러스는 아이를 죽이는 걸로 시작했지만 남성을 여성을 만들어 버렸어. 여성들만 있는 지구, 어때? 끔찍하다고? 흠. 글쎄. 모기의 이야기를 들어보자.


이렇게 말을 안 들었으면… 이 정도 충격요법 정도는 되어야지 않겠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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