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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STR Jun 28. 2021

내가 대신 낳을까

마이크로 아스트랄 단편선

아내와 오랜 상의를 마쳤다. 아이는 남편인 내가 낳기로 했다.


요즘에는 임신 출산에 세 가지 옵션이 있다. 여자가 임신하고 낳는 전통적인 방식이 첫 번째. 아직 가장 많은 사람들이 택하는 방식이다. 시간이 지나면서 새로운 대안이 나왔는데 인공 자궁이 바로 두 번째 그것이다. 최첨단 의료 기술로 여성의 자궁을 그대로 재현했고, 아이가 건강하게 자랄 수 있는 최적의 영양소, 스트레스 정도, 심지어 모차르트 감성 태교를 뛰어넘는 아이큐 이큐 복합 모더레이터까지 등장했다.


하지만 이 같은 기술이 있어도 그렇게까지 할만한 돈이 없었다. 자본주의 시대에는 최고의 유전자로, 최고의 인공자궁을 쓸 수 있는 사람들은 돈 있는 사람들이었다. 일반 사람들은 가끔 TV에 연예인들이 관찰 프로그램에 나와 인공자궁 이식하러 가요, 라는 박탈감 넘치는 이야기를 들을 뿐이었다.


그 와중에 대중화되기 시작한 것이 인공 자궁을 뛰어넘는 남성 자궁이다. 이전에 해외 토픽으로 가끔 나오던 케이스였는데 여성의 권리를 위해 임신과 출산 선택권이 강화되면서 정식적인 의료 서비스로 급부상하게 되었다. 나도 몸이 허약한 아내에게 그 긴 임신 기간과 출산의 고통을 전가하는 리스크를 안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이렇게 남성자궁 전문 병원에 와 있는 거다. 아내는 내 손을 꽉 잡고 있다.


“협의는 충분히 하셨지요? 아무래도 전통적인 임신 출산 방법에 비해 상호 간의 협의가 가장 중요합니다”

“그럼요”

아내와 나는 서로를 바라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의사는  모니터를 돌려 보여주면서 우리 부부에 설명을 시작했다.

“원리는 시험관 시술과 크게 차이가 없습니다. 차이가 있다면 주입을 여성이 아니라 남성에게 하는 거고요.”

“자궁 부분은 어떻게 하나요?”

“그 부분이 사실 가장 어렵고 기술적인 부분입니다. 인공 자궁 들어보셨죠?”

“네. 엄청 비싸다고… 저번에 영화배우 최 모 씨가 했다고 티비에 나오던 거 맞죠.”

“맞습니다. 그 인공자궁 기술을 복부에 이식할 겁니다. 육아낭이라고도 합니다. 아마 가장 걱정하실 것 같은 게 아이가 엄마 뱃속에 있는 것 같은 편안함을 느낄 수 있을지 일거 같네요. 수치적인 것만 보자면 크게 차이가 없습니다.”


의사는 반복해서 아이의 안전함과 편안함을 강조했다. 원리가 이해가 안 됐는데 전통 방식과 인공 자궁 방식 사이 정도라고 설명하는 걸 듣고 고개를 끄덕였다.


먼저 복부에 아이가 자리 잡을 육아낭을 이식하는 수술을 했다. 캥거루 새끼가 어미 품에 들어가는 주머니 같은 거다. 평소 수술 이력이 없는 내가 칼 대는

걸 무서워하자 의사는 나를 안심시켜주려는 듯 이렇게 말한다.

“제왕절개를 미리 한다고 생각하시면 돼요. 어차피 그 절개 흔적을 통해 아이가 나올 겁니다”


한 시간 수술이 끝나고 나는 아이를 밸 수 있는 남자의 몸이 되었다. 하지만 그것은 시작이었다. 흔한 시험관 시술의 연속이 기다리고 있었기 때문이다.


아내의 건강한 난자를 채취하고 나의 정자를 골랐다. 인공수정을 시켜 내 몸에 주사기를 꽂아 착상시키는 과정이 남았다. 착상은 정말 어려웠다. 아내에게 어렵게 채취한 난자의 숫자는 한도가 있었기 때문에 마음까지 초조해져 갔다. 배에 주사를 꽂으며 피멍이 드는 것은 덤이었다. 뒤돌아보면 가장 스트레스가 많았을 때였다.


그러다 13개의 건강한 난자 중 12번째 난자와 인공 수정한 그 녀석이 드디어 내 몸에 안착했다. 정말 버저비터였다. 엄마의 몸이 아니라 많이 고생했다. 많이 낯설었지. 이런 아빠여서 미안해.


배가 불러오면서 나는 그제야 실감 나기 시작했다. 아내는 나를 요양하기 시작했고, 함께 태동을 느꼈다. 일부 호르몬 요법에 의해 우울증도 찾아왔다. 그때마다 아내가 자기 몸인 것처럼 나를 안아주었다.


“오빠.”

“왜?”

“나 대신에 임신한 거 후회하지 않아?”

예상치 못한 질문에 잠깐 멍해졌다. 그러다 이제 만삭이 된 배를 쓰다듬으며 말했다.

“전혀. 힘들긴 하지만 나는 두 가지가 너무 좋아. 아이를 이렇게 가까이 느낄 수 있을 때가 있을까. 그 가까움 말이야. 그리고 네가 아프지 않아서. 네가 아픈 걸 보면서 내가 아무것도 할 수 없는 고통에 비하면 이건 아무것도 아니야. 그래서 나는 너무 좋아”


   나는 아빠가 되었다. 언론에 대서특필 되는 일은 없었다. 아빠가 아이를 낳는  특별하지 않는 시대가 되었으니까. 물론 남자의 육아 휴직은 아직도 남자가 출산한 경우에만 관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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