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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STR Nov 29. 2021

지옥 : 지극히 개인적인 지옥 안내서

마이크로 아스트랄 단편선

김 씨는 이틀 전 지옥행을 선고받았다. 지옥행 일시는 오늘이다. 김 씨는 고개를 숙이고 흐느껴 우는 것인지 웃는 것인지 알 수 없다. 그를 위로할 틈도 없었다. 그는 순식간에 지옥이 되었다.


김 씨가 눈을 뜨자, 어떤 노인이 자신을 바라보고 있다는 걸 알았다. 주변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암흑 같았지만 그저 까만 것은 아니었다. 본능적으로 아무것도 없다, 라는 인식이 밀려들어왔고 자신이 발 디디고 있는 지구와 땅과 하늘이 없다는 것에 공포감이 들었다.


“이런 걸로 무서워하지 말게”

노인이 김 씨에게 말했다. 누구신가요,라고 김 씨가 묻자 노인은 자신을 안내자라고 소개했다. 지옥 안내자라는 것도 있군요, 라며 김 씨는 자조했다.


“좀 걸으면서 이야기하지”

암흑 아니 무 가운데를 걸으며 노인은 이야기를 이어갔다. 지옥행을 선고받았으니 많이 무서웠겠군, 이라고 노인이 말하자, 김 씨는 처음에는 그랬지만 살기가 너무 힘들고 현실이 더 지옥 같아 별반 다를 것 없으리라 자포자기하게 됐다고 털어놓았다. 물론 지옥일이 다가오면서 무척 무서웠다고도 했다.


그러다 아무것도 없는 무의 저 끝에 작은 빛이 있는 것을 보게 되었다. 김 씨가 그 끝을 가리키며 물었다.

“저 빛이 무엇인가요?”

“저게 당신이 가게 될 지옥일세.”

“어둠 속의 빛이 지옥이라니. 제 상상이랑 다른데요”

“당신의 상상과 맞는 부분은 하나도 없을 거요.”

“가기 전에 미리 이야기 좀 해줄 수 있나요. 마음의 준비를 하게요”

“그래요. 갈길이 머니 가면서 이야기를 해주겠네.”


노인은 몇 광년 떨어진 그 빛에 다다르기 전에 지옥에 대한 안내를 시작했다.

“우선 지옥은 장소가 아닐세. 단테가 사람의 관념을 배려두었어.”

“그럼 제가 가는 곳은 무엇이죠? 장소가 아니라니 무슨 뜻입니까?”

“지옥은 천국과 딱 나눠진 어떤 위치, 어떤 공간이 아니라는 말이야. 지옥은 장소가 아니라 상태일세.”

“상태라고요?”

김 씨는 이해가 되지 않는다는 식으로 눈살을 찌푸렸다. 그러다 문득 자신의 삶이 지옥 같았다는 것을 깨달았다.

“설마 제가 지금 가는 곳이…”

“맞네. 자네는 다시 살아갈 거야.”

“제가 다시 살아난다고요?”

“아니, 죽은 자네는 죽었지. 자네는 자네 인생 중 스스로 가장 지옥 같았던 그때로 돌아가 인생을 다시 살아갈 거야.”

“그럼 저에게 기회가 한번 더…”

“그게 기회일지 형벌일지는 그때 그 시절을 경험했던 당신이 더 잘 알 테지.”


그랬다. 형벌이었다. 퇴직금을 모아 작은 가게를 열었지만 때마침 코로나가 터져 폐업을 했다. 술을 먹고 아내를 때려 경찰서에 구금이 됐었다. 새벽에 이제 17살 된 아이가 김 씨를 보러 왔고, 김 씨는 그런 아이에게 집으로 돌아가라고 소리 질렀다. 불행은 서로가 어깨동무를 하고 나타난다. 며칠 뒤 암 진단을 받았다. 지옥행이었다. 지옥이라고 생각한 것은, 김 씨가 스스로 상처 준 사람이 많다고 - 특히나 가족에게 자격이 없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윤리적인 잘못과 상관없는 죄의식이었다. 권선징악 따위도 없다.


김 씨가 그 가장 지옥 같았던 순간을 떠올리자, 눈물을 흘리며 몸서리를 쳤다. 메인 목으로 노인에게 말했다.

“그… 지옥을 나가는 방법이 있나요?”

노인은 그런 김 씨를 바라보다, 조용히 말했다.

“방법은 있는데 당신이 그 지옥을 빠져나올 확률은 매우 희박하다.”

“방법을 알려주세요. 어떻게든! 나는 이 지옥을 반복하고 싶지 않아요.”

“그럼… 알려주지. 다시 현생을 살아가며 그 지옥 상태에서도 천국을 경험하면 되네.”

“네? 그게 말이 됩니까?”

“내가 말했잖아. 가능성이 희박하다고.”

“그런 지옥에서 어떻게 천국을 경험합니까? 상태가 지옥인데! 온통 지옥 같은데!”

“할 수는 있네.”

“무슨 근거로 그렇게 이야기하는 거죠? 당신이 경험해보고 그런 소리를 해봐요. 얼마나 끔찍하게 괴로운데…”

“… 나도 경험해봤으니까.”


노인은 김 씨를 뚫어져라 쳐다봤다. 김 씨는 아무 말도 못 했다. 노인이 말을 이어갔다.

“나는 당신이야.”

노인은 김 씨의 어깨에 손을 올렸다.

“나는 당신이 지옥을 빠져나오고 천국을 경험한 유일한 영혼이야. 이렇게 노인이 될 때까지 살았고. 하지만 당신 대부분은 더 일찍 죽었고 지옥 상태를 벗어나지 않았어. 말하자면 지옥을 선택한 거지.”

“어… 무슨 말인지 이해가…”

“당신은 하나가 아니야. 당신의 행동 하나 생각 하나 누군가에게 준 영향 하나하나가 우주에 기록돼. 아카식 레코드라고도 하더군. 모든 영혼의 기록소라고 할까. 3살 때의 당신, 14살의 당신, 35살의 당신, 퇴직할 때 당신, 암 선고를 받을 때 당신이 모두 분절되어 존재해. 이곳에서 보면 하나가 아니라 그 시간에 존재한 그 영혼이야. 그 셀 수 없는 수많은 영혼이 매 순간 천국과 지옥을 선택해.”

“나는 매 순간 다른 내가 있고… 살아있으면서 천국과 지옥을 선택한다고요…?”

“그래. 여기 당신이 지옥을 선택한 건 살아있으면서 대부분의 당신이 지옥의 상태를 선택했기 때문이야. 여기에는 여러 가지 버전의 당신이 와. 대부분 지옥을 선택했고 내가 이 말을 했을 때 당신과 같이 받아들이지 못하더군.”

“믿을 수 없어요. 나는 정말 행복하고 싶었는데… 스스로 지옥에 살길 선택했다니…”

김 씨는 혼란스러워했다. 노인은 그런 김 씨를 보며 복잡한 표정을 짓는다.


“이건 여담인데 지옥을 선택하고 죽은 뒤 또 그 지옥 구간에 갇히는 영혼이 더 많아지고 있다고 하지. 당신뿐만 아닐세. 어쩌면 당신 아니 내가 언젠가 말한 것처럼 인류가 살아가고 있는 현생 대부분이 지옥 상태가 되고 있는 것일 수도 있어. 대부분 지옥에 산다면 그곳이 바로 지옥이겠지. 그곳이 지옥이여서가 아니라 다들 지옥 같은 상태이기 때문에 지옥인 거야.”


노인이 말을 마치자, 어느새 광년을 넘어  가운데 빛나고 있는 영역에 도달했다.  씨는 아무 생각도 하지 못했다. 노인이 말하는 것도  받아들이지 못했다. 아니 받아들이는 것이 중요한가, 지옥에 빠지면  이야기를 모두 잊게  터였다. 자신이 없었다. 똑같은 지옥을 반복할  같았다. 하지만 한편으로 기회가 있다고 믿었다. 눈물을 흘리며 노인을 바라보았다. 노인은 아무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씨는  빛으로 유유히 사라졌다.


지극히 개인적인 지옥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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