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ASTR Dec 09. 2021

코로나 게임 : 1대 5천만

아스트랄 마이크로 단편선

"이대로 모든 사람이 다 감염될 거야."

절망적인 상황이었다. 코로나 판데믹이 사라질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바이러스는 변이를 반복하며 살아남았다. 바이러스와의 전쟁은 장기전이 되었고, 인류는 무력했다. 때마침 새로운 정권이 창출된 대한민국에서는 이 상황을 현명하게 타개할 묘책이 필요했다.


청와대에서 구체적으로 어떤 이야기가 오갔는지는 확실치 않다. 분명한 건 이 우울한 상황을 반전시킬, 그러니까 절망을 기대로 바꿔야 한다는 것이 제안의 핵심 내용이라는 것이다. 누군가 대통령에 그 내용을 제안했고, 다음부터는 일사천리였다. 


온 국민을 대상으로 하는 방역은 이제 노령층과 기저질환자들에게만 해당되는 핀셋 방역으로 전환되었다. 비판 여론이 있었지만, 사실상 다음 이어진 발표에 대한 국민 반응에 방역 정책은 모두 묻혔다. 정부의 발표 내용은 이렇다.


1. 국민 방역 비용을 국민에게 돌려준다

2. 그 국민은 코로나 감염되지 않은 국민을 대상으로 한다

3. 국민 방역 비용은 매일 적립된다.

4. 매주 감염되지 않은 국민은 일정 국민 방역 비용을 배당받는다.

5. 가장 마지막까지 감염되지 않은 국민 1인은 그 나머지 모든 국민 방역 비용을 받는다.


정부의 발표가 이어지자, 모든 정치인들의 입과 언론 뉴스와 소셜 미디어, 그리고 사람과 사람 사이의 이야기 주제도 온통 이 국민 방역 비용으로 뒤덮였다. 여당은 이 정책을 그들이 항상 작명하던 습관대로 '코로나 게임'으로 이름 붙였다. 코로나 게임. 정부가 국민 방역을 포기하고 국민 목숨을 가지고 게임을 한다고 야당은 비판을 이어갔고, 물론 언론과 국민들도 그랬다. 


하지만 정책이 발표된 그 주에 바로 배당이 시작되자, 비판 여론은 급격히 줄어들게 되었다. 정책 찬성 43%, 반대 32%, 모르겠음 25%로 찬성이 반대 의견을 앞서기 시작한 것이다. 그러자 정치인들도 눈치를 보기 시작했다.


매주 실제로 사용할 수 있는 현금이 입금되자, 사람들은 이 정책이 '진짜'라는 것을 인지하게 됐다. 정부는 이제까지 감염되지 않은 국민에게 '코로나 시국에 제대로 방역한 사람'이라는 배지를 달아주었고, 바이러스 창궐의 절망적인 시대의 '살아남은 자'라는 공식 트로피를 줬다. 백신 부작용이 걱정되면 이제 맞지 않아도 됐다. 마스크도 선택이 되었다. 강제는 없었다. 하지만 이제 감염에 대한 책임은 오로지 본인의 몫이 되었다. 감염이 되고 아픈 것이 - 그리고 감염된 사람의 1%가 사망하는 것까지 - 나라의 방역 실패 때문이 아니라 본인이 한 선택으로 일어난 일이라는 것. 그리고 매주 받는 배당도, 혹시 받을지 모르는 1인의 일확천금 기회도 날리게 되는 것이다. 방역 전환은 한순간에 이뤄졌지만, 사람들은 생각보다 빠르게 적응했다.


방역 강제가 없어지자, 백신과 마스크를 쓰지 않는 사람이 늘어났다. 하지만 그런 사람들만 있는 건 아니었다. 사회 분위기가 미묘하게 달라지기 시작했다. 유튜브에 '매주 받는 방역 비용으로만 살아가기'라는 영상 포맷이 인기를 끌었고, 자신을 감염시킨 것으로 추정되는 사람에게 폭력을 행사한 사건이 뉴스에 나오기도 했다. 코로나 감염을 피하는 것이 곧 돈을 벌 수 있는 기회로 인식됐다. 어떤 사람들은 아예 집 밖으로 나오지 않고 사람과의 관계를 끊어버리기도 했다. 그들은 #코로나게임_존버 라는 해시태그를 달며 이른바 생존 일지를 적는 것이 유행이 되었다. 기다긴 코로나 터널을 감염 없이 버티기만 한다면 그 어떤 로또보다 막대한 돈을 배당받을 수 있었다.


감염자 수는 하루에 10만 명 단위로 나왔다. 그래도 정부는 거리두기를 하지 않고 자유를 주었다. 사망자는 하루에 1천 명씩 나왔다. 주변에 확진된 사람은 있어도, 사망한 사람을 경험하지 않았던 국민들도 이제 '아는 사람'의 죽음을 경험했다. 감염자가 늘어날수록 누적 사망자도 늘어났지만, 지금껏 감염되지 않은 소위 '살아남은 자'들은 빠르게 줄어들기 시작했다. 매일 날아오던 지방자치단체의 확진자 알림 문자는 이제 이런 내용이 되었다.


"안녕하세요. 이번 주에도 살아남은 OOO 님, 축하드립니다. 이번 주 확진으로 인한 탈락자는 11만 5,320명이며 이번 주 확진자들에게 해당되었던 방역 비용은 OOO 님께 돌려드릴 예정입니다. 현재 전체 국민 수 대비 84%가 확진자가 되었으며 당신은 살아남은 상위 16%가 되었습니다. OOO 님의 개인 방역에 언제나 경의와 박수를 보냅니다. 감사합니다."


과연 누가 최후의 1인이 될지 초유의 관심사였다. 미확진자의 퍼센트율이 3% 아래로 떨어지게 되자 이들을 찾아 나서는 예능도 나타났으나, 모두의 예상처럼 그들은 사람 만나는 것을 거부했다. 지금까지 적립된, 그러니까 최후의 1인이 받게 될 방역 비용을 정부에서 공식 발표하자, 그 경향이 더 심해졌다.


"코로나19 환자 치료비 지원은 2020년 1월부터 2021년 6월까지 청구된 입원치료비는 5,064억 2,600만 원이었으며 이 중 4,372억 원 1,400만 원을 건보가 부담했습니다. 앞으로 나타날 최후의 1인 국민께는 지금까지 청구된 개인 입원치료비를 기준으로 약 6백 억을 제공할 예정입니다. 앞으로도 개인 방역에 협조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1대 5천만 코로나 게임의 상금 6백 억. 이제 남은 '살아남은 자'들의 진짜 싸움이 막을 올랐다.


매거진의 이전글 지옥 : 지극히 개인적인 지옥 안내서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