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ASTR Dec 21. 2021

냉동인간이 되지 말걸 그랬어

아스트랄 마이크로 단편선

은영이 눈을 떴다. 가만히 숨을 내쉬었고, 불안한 눈으로 주변을 바라보았다. 공백 같은 새하얀 방. 은영은 그 방에 혼자 누워 있었고, 문득 그녀의 몸에서 딸기향 같은 달콤한 게 난다 생각했다. 손과 발, 자신의 얼굴과 머리카락을 만져보았다. 은영은 긴 꿈을 꾼 것 같았다. 아-주 길고 지루한 꿈.


“안녕하세요.”

은영 앞에 화면 하나가 떠올랐다. 이쁘게 생긴 여자가 있다. 은영은 허공에 뜬 화면이 신기한 듯 손으로 만져보려고 한다.


“저는 은영 님의 생환을 돕는 AI입니다. 지금부터 제 안내에 따라주세요.”

은영은 AI가 말하는 대로 따랐다. 예전부터 그랬다. 고분고분했고… 다른 길로 새는 일이 없었다. 적어도 은영에게는 그것이 삶의 방식이었다. 은영은 방 한쪽에서 별안간 튀어나온 옷장에서 실크 재질의 옷을 입고, 서랍에서 은영의 정보가 담긴 서류를 확인했다.

“은영 님은 189년 전, 은영 님의 남편 되시는 경환 님의 요청으로 냉동 처리되셨습니다. 이를 확인하셨으면 승인해주세요.”

딸기향은 죽음의 향이었던가. 은영은 말기암 환자였다. 남편은 미래의 의료 기술이라면 암을 고칠 수 있다며 내가 누운 병실 침대에 얼굴을 묻고 아이처럼 울었다. 그 울음소리가 아직도 들린다. 바로 전에 있었던 일처럼.


“승인되었습니다.”

은영은 남편의 생사가 궁금했다. 189년이나 지났으면… 그러다 문득 남편이 죽었다면 자신이 어떻게 살아날 수 있었는지 궁금해졌다. 은영은 조심스럽게 정이 가지 않는 AI에게 물었다.


“은영 님의 남편이었던 경환 님은 123년 전 사망하셨습니다.”

아, 나를 얼려놓고 당신은 죽었구나. 은영은 갑자기 멍해졌다. 이 미래에 나를 홀로 던져두고 어떻게 하라는 건지 어지러웠다. 눈을 감고 헛구역질을 하자, AI는 기계적으로 나의 건강을 걱정했다. 은영은 정신을 차리고 자신이 어떻게 살아나게 됐는지 물었다.


“은영 님의 계약은 미래 의료 기술이 사망 후 냉동된 육체를 해동하여 생환시킬 수 있을 정도로 발전할 때까지 보관하는 것이었습니다. 계약은 월 납입으로 진행되었고, 하지만…”

은영은 불길한 생각이 들었다. 무언가 잘못되었다는 예감이 들었다.


“남편 되시는 경환 님께서 은영 님이 냉동 처리된 지 3년 차부터 비용을 납부하지 않으셨습니다.”


은영이 남편을 만난 건 그의 적극적인 구애 때문이었다. 비혼주의자였던 은영의 마음을 돌린 것은 경환의 곁에 갔을 때 은근히 달콤한 냄새가 났기 때문이었다. 항상 패배감과 우울감에 빠져있던 그녀에게 그 냄새는 커피였고, 담배였고, 마약이었다. 경환은 항상 그녀의 마음을 돌봐주었고… 그녀가 암 선고를 받자, 경환은 하던 일을 내팽개치고 투병을 함께 했다. 경환이 습관처럼 하던 말이 아직도 은영의 귓가에 맴돈다.


“괜찮아. 다 잘될 거야.”


잘되긴 뭐가 잘된다는 거야. 은영은 뭔가 잘못되었다는 확신이 들었다. AI의 말을 듣고 은영의 머릿속이 복잡했다. 은영은 자신을 못 잊는다며 냉동 인간으로 만들어버린 경환의 그 뒤 이야기가 궁금해졌고 동시에 불안해졌다.


하얀 방을 이리저리 돌아다니다, AI에게 남편의 행방을 물었다. 하지만 AI는 프라이버시의 문제로 말해주지 않았다. 그러면서 3년이 지난 뒤 186년 동안 어떻게 냉동 처리가 유지될 수 있었는지 궁금하지 않냐고 말했다. 은영은 궁금하다고 대답하며 AI가 인간처럼 물어본다고 생각했다.


“당시에 불법이었단 냉동인간이 극적으로 통과되었습니다. 비용 납부가 되지 않아 폐기처분 대상이았던 은영 님과 모든 냉동 인간은 정부 관할이 되었습니다. 지난해에 사후 육체를 되살리는 기술이 발명되었고, 이렇게 되살아나게 되신 겁니다. 물론 암세포도 이제 없습니다”


사람에 대해 폐기처분이라는 단어라니,  잔인하다고 생각했다. 게다가 궁금하지 않았다. 죽었다 살아난 마당에. 은영은 다른 생각에 가득  있었다. 자신을 살린 사람이 남편이 아니고, 어느 순간 자신을 잊었던 사람이 남편이라는 사실. 그리고 이미 죽어버린 남편과 미래에 혼자 남아버린 자신. 하얀 방이  아득하느껴졌다.


3 뒤에는 다른 사람을 만났을 것이다. 경환 말이다. 은영은 확신했다. 경환은 운명을 믿었다. 자신을 운명이라고 여겼다면,  다른 사람을 운명이라고 정당화하는 것도 충분히 가능했다. “   거야라는 속삭임도  사람과 했을까. 가족을 이뤘을까. 아이도 있었을까.


은영은 AI에게 언제 하얀 방을 나갈 수 있는지 물었다. AI는 몇 가지 단계가 조금 남아있다고 대답했다.

매거진의 이전글 멈출 수 없어 하트비트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