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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STR Jun 06. 2022

두 줄에서 한 줄로

임테기의 농락

어제는 정말 롤러코스터의 하루였다. 아침에 B가 임테기를 한 이후로 말이다. 교회 가기 전까지 둘은 구글링 유튜브를 엄청 찾아봤고, 임신이 확신됐다.


교회 가는 길에도 계속 임신 이야기를 했다. 둘 다 가만있다가 갑자기 마주 보고

우리 임신?”

이러고 깔깔 웃었다. 뭔가 바뀐 일상에 둘 다 어리벙벙하면서 아직은 부모님께 알리지는 말자고 이야기했다. 교회에서는 안 하다가 나온 뒤에 또 바로 임신 이야기. 원래는 집으로 바로 가는 일정인데 도서관을 같이 갔다.


도사관 임신 육아 코너로. 한 5권을 골랐다가 너무 많다 해서 2권을 추려서 빌렸다. 하나는 첫 임신 출산 Q&A 였고, 하나는 첫 임신 멘붕 탈출법 비슷한 제목의 책이었다. 우리에게 딱 맞는.


그리고 집에서 좀 쉬다가 - 쉬면서 책을 읽으면서 둘 다 이건 이렇대 저건 이렇대 하면서 조잘조잘 댔다. 원래 예약했던 영화 보러 가는 길에 약국 들려서 임테기 몇 개를 샀고 - 약국 사람이 우리가 부부가 아니라 사고 쳐서 사러 온 줄 알고 약간 조심스럽게 이야기한 게 웃겼다 - 서점도 들러서 다들 산다는 임긴 출산 대백과 사전을 샀다.


책을 더 사고 싶었지만 왠지 당근 거래를 하는 게 더 좋을 거 같아서 몇 개를 찜해뒀다. 영화가 끝나고 집에 온 뒤에도 내가 바로 깐 임신 관련 앱 가지고 이야기하다가 잠들었다.


그리고 오늘 아침.

새벽에 “아 오늘 임테기 해봐야지”라고 생각이 들었지만 휴일인 만큼 꽤나 늦잠을 잤고, B가 어느새 일어나 임테기를 들었을 때 나도 부스스 일어났다.


오늘은 크로스체크를 위해 임테기 두 개를 같이 하기로 했고, 같은 제조사의 다른 제품 2개를 썼다. B의 화장실 앞에서 보조하며 이제 기다리는 시간을 가졌다.


그런데 어제와는 약간 다른 반응. 하나는 아주 약~간 흐린 줄이 나왔는데 하나는 거의 나오지 않았다. 설명서를 보니 다른 임테기보다 더 민감하게 판정하는 임테기였기에 더 의아했다. 그 흐린 것도 어제 흐린 것과 다르게 정말 엄청난 매직아이로 봐야지만 보이는 선이었다.


설명서 뒤에 설명에는 모든 수태의 3분의 1이 자연적으로 소멸된다는 이야기가 있었다. 임신 판정이었다가 다시 음성으로 나온 경우에 말이다. 그럼 혹시 우리도? 심란해지는 마음을 어쩔 수 없었다.


몇 시간 후 다시 임테기를 해보았지만 두 줄이 뜨지 않았다. 나는 B에게 호르몬이 농축된 첫 소변이 묻은 임테기만 지금 연하게 한 줄이 나온 거고 농축되지 않은 소변을 묻힌 나머지는 판정이 안된 거라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내일 다시 해보자고 했다.


어제는 확신 있게 임신이라고 생각했는데 지금은 다시 확신이 없어졌다. 우울해하는 B 옆에서 쓰다듬어 주면서 괜찮다고 말해줄 수밖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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