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 양말변태 비긴즈
세상에는 보이지 않는 것들이 더 매력적일 때가 있다. 만질 수 없는 것. 만질 수 없지만 분명히 존재하는 것. 존재를 보는 것이 아니라 느끼는 것. 기억이나 연정 따위의 개념이나 우주의 암흑에너지 같은 것들. 시장경제나 국가 같은 것들. 콧속으로 빨려들어오는 정체불명의 기체들. 그리고 냄새.
사람의 얼굴에 코가 삐죽 튀어나오게 된 연유가 있다. 그냥 구멍 두개 있으면 될걸 왜 코 모양이 있는지 말이다. 그게 왜 그러냐 하면 우리 코끝에는 일종의 레이다가 달려있기 때문이다. 보이지 않는 냄새를 감지하는 레이다. 마치 심해의 잠수정이 미지의 섬을 탐사하듯 코 끝의 레이다는 매력적인 냄새에 반응한다. 킁킁. 그리고 바로 뇌에 신호를 보낸다. 여기라고. 이봐, 여기에 집중해. 그 어떤 눈의 시각보다, 어떤 귀의 청각보다 더 강력한 코의 탄생. 냄새는 위대하다.
눈을 감고 숨을 들여마시면 온갖 세상이 몸 속을 채운다. 누군가의 웃음과 어느 공장의 연기, 어떤 요리사의 음식, 외딴 섬나라에서 날아온 기억, 우주를 떠돌다 온 검은 흔적까지. 모조리 맡을 수 있었다. 맡는다는건 만난다는 것이였다. 시간과 공간을 초월해서 말이다.
나는 이 '냄새 맡기' 행위가 모두 기본으로 탑재되는 옵션인 줄 알았다. 나만 가지고 있는 일종의 '능력'임을 알았을 때는... 사실 충격이 컸다. 냄새를 못 맡는다고, 그럼 뭘로 느끼지. 그래서 싸움이 분쟁이 전쟁이 일어나나 싶었다. 나 이외의 수많은 다른 것들의 속성에 대해 냄새가 없다면 알아챌 수 있는 방법이 많지 않기 때문이다. 생각이 무엇인지, 어떻게 살아왔는지, 무엇을 좋아하는지 냄새를 맡을 수 없으면 그 모든 것들에 시간을 투자하는 수 밖에 없었다. 시간을 뛰어넘어 두 존재 사이를 자유롭게 유영하는 하이패스, 냄새를 맡을 수 없다니.
그러고보면 어렸을 때부터 좀 유별난 구석이 있긴 했다. 세살인가 네살 때 시내에서 엄마를 잃어버렸다. 몇 시간 후 난 제발로 집에 돌아왔다. 주소를 알 턱이 없었다. 하지만 냄새는 기억했다. 우리집 냄새. 엄마 냄새. 천리 밖에서도 냄새를 맡을 수 있었고 그 방향대로만 가면 우리집을 찾을 수 있었다. 엄마는 혼자서 집을 찾아온 나를 보며 안도하면서 당혹스러운, 복잡한 표정을 지었다. 그때 엄마에게는 시큼한 냄새가 났다.
엄마의 냄새처럼 사람에게는 고유의 냄새가 있었다. 주민등록번호처럼, 지문처럼. 어느새 나는 사람의 겉을 보지 않게 됐다. 그만의 냄새는 어떤 향수로도 숨길 수 없는, 그의 말과 행동으로 뿜어져나오는 분수 같은 것이었다. 나는 코로 맡기만 하면 됐다. 각양각색 가지각색의 냄새들이 나름의 인생을 뽐내고 있었다. 향기 좋은 꽃에 벌이 모이듯 나는 저절로 냄새 좋은 사람들 주위를 맴돌게 됐다.
대학은 가지 않았다. 후각이 발달해서 직업이 자연스럽게 정해졌기 때문이다. 요리사였다. 혀를 대지 않아도 정교한 냄새 맡기로 더 좋은 맛, 향을 찾아낼 수 있었다. 동료들이 나를 향해 말한 표현처럼 그건 '천부적'인 어떤 것이었다.
인천 시내의 유명한 레스토랑에서 일하게 됐다. 수석 셰프였다. 아직 별을 단 레스토랑은 아니지만 곧 달 수 있을거라고 확신했다. 너희들은 맡지 못하는 냄새의 세계, 나에게는 이 코가 있으니까. 하루종일 주방에서 칼질을 하고 있었지만 식당 안의 모든 이들의 냄새가 레이다에 잡혔다. 큰 냄새, 작은 냄새, 톡 쏘는 냄새, 달달한 냄새, 자극적인 냄새, 오묘한 냄새, 구역질나는 냄새 모든 냄새가 식당을 방문했다. 레스토랑은 냄새의 거대한 용광로였다.
그날의 셰프 추천요리는 스파게티 알레 봉골레였다. 바지락을 손질하면서 그가 건너온 바다의 여정이 눈에 그려졌다. 냄새는 그림을 더욱 선명하게 만들어줬다. 짠 맛의 심연. 흙과 모래의 냄새. 그 넓다란 갯벌이 이 작은 바지락의 집이었다. 그러다 그림처럼 그려진 한 폭의 냄새에 갑자기, 송곳처럼, 무엇이 불쑥 솟아나왔다. 그건 주방의 어떤 요리도, 식당 안에 내가 알던 모든 이들의 냄새도 아니었다. 아니, 이제까지 내가 맡았던 모든 냄새와 다른 - 다른 어떤 종류의 것이었다. 한마디로 표현할 수 없는 미지의 냄새. 내 코의 레이다는 말하고 있었다. 뭐지. 무슨 냄새지. 당장 알아봐.
멍한 얼굴로 칼을 내려놓고 조리모와 앞치마를 벗었다. 옆의 동료가 왜 그러세요, 라고 물은 것 같지만 대꾸하지 않았다. 조리실을 나섰다. 냄새의 방향은 창가 쪽 6번 테이블. 뚜벅뚜벅 걸어간다. 그 거리가, 이제까지 맡아본 적 없는 냄새와의 거리가 좁혀진다. 모든 냄새를 찢고 내 콧속을 자극하는 이 냄새를 마주하기 전, 내 손은 잔뜩 땀에 절어있었다. 보인다. 누구지. 누구의 냄새, 무엇의 냄새일까.
코너를 돌자 6번 테이블이 눈에 보인다. 밤 야경이 테이블 위의 물을 채운 유리잔과 함께 빛나고 있다. 빛나고 있었고, 테이블에는 세명의 가족이 앉아있었다. 한눈에 봐도 아빠, 엄마, 그리고 딸. 그들은 오늘의 메뉴와 마가리따 피자를 먹고 있다. 훌륭한 조합이다. 물 한잔, 그리고 능숙한 솜씨로 스파게티를 끌어올린다. 스파게티 한줄, 학교에서 글쎄 있잖아, 로 시작되는 대화 한줄이 시작된다. 그 사이 나는
냄새를 봤다.
에나멜로 반짝이는 검은 신발과 작은 발. 그리고 그 발을 감싸고 있는 순백의 양말.
정확히는 그녀가 신은 양말이었다. 양말이었고, 나는 순간 고개를 돌렸다. 쫒기듯 조리실로 돌아왔다. 양말이라니. 양말이라니.
분명 양말의 냄새가 아니었다. 바닥과 발 사이에 하루종일 압축된채 스며나오는 땀에 절어버린 그런 냄새가 아니었다는 말이다. 이 냄새를 정확히 표현할 수는 없지만, 모든 냄새 가운데 확실히 나를 노려보고 이있었다. 뭐지. 조리실에 돌아온 뒤로도 문신처럼 새겨진 그 냄새의 기억에 사로잡혀 칼을 들지 못했다. 음식의, 사람의, 아무런 냄새도 맡지 못했다. 마치 내가 그 냄새에 잡아먹힌 것처럼 내 온 신경을 자극했다.
그래, 알았다. 냄새가 나를 맡아버린거다. 지금 여기 있는 냄새 사냥꾼을 쫒아 살아움직이고 있다. 무섭도록. 냄새계 최상위 포식자가, 작디 작은 그곳에서 움크리고 눈을 반짝이면서 나를 기다리고 있다.
지체할 수 없었다. 냄새, 아니 그녀를 직접 봐야겠다. 봐야만 한다. 식사를 마치고 레스토랑 문 밖을 마지막으로 나서는 그녀에게 내 명함을 건넸다. 덜덜 떨리는 손으로, 다음에 찾아오면 특별 요리로 대접하겠다고. 내게 왜, 라는 표정을 하는 그녀에게 네 양말 냄새가 엄청나서 따위의 말을 할 수는 없다. 레스토랑 찾아주시는 고객 분들 대상으로 신메뉴 테스팅을 하고 있다는 말도 안되는 말로 얼버무렸다. 그리고 그런 말을 그녀는 쉽게 납득한 듯 보였다.
그날 이후 나는 조리실 한켠에서 그녀가 다시 연락하거나 방문하기만을 기다렸다. 아니, 그 냄새가. 그동안 나는 아무런 냄새도 맡을 수 없었다. 요리도 예전처럼 화려하게 하지 못했다. 요리를 하면서도 코의 레이다는 음식이 아니라 애궃은 방향을 계속 가르켰기 때문이다. 아마 양말이 있는 곳이겠지. 다른 모든 냄새들은 이제, 시시해지고 볼품 없어졌다. 회색빛이 됐다. 강렬하게 칼춤을 췄던 욕망의 세포들이 그 자극을 다시 기다리고 있었다.
그녀가 레스토랑을 다시 찾은 날은 내가 요리사를 그만 둔지 일주일째 되는 날이었다. 냄새를 쫒아 찾아갈 수 있음에도 그러지 않았던 이유는 냄새가 결국 나를 다시 찾아올 것이란 걸 믿었기 때문이다. 나는 손님으로 레스토랑을 계속 맴돌았고, 그녀는 혼자였다.
"오늘의 요리는,"
"아, 잠깐만. 그때 명함 주신 분이죠?"
"잊지 않으셨네요. 맞아요."
나는 침착하게 말했다.
"그럼요. 그때 참 당황했었는데. 여기 요리사 맞으시죠?"
"그때는 맞고 지금은 아니에요."
"그만 두셨어요?"
"네, 사정이 있어서."
"그럼 왜 여기 계세요?"
"사실 그 쪽 기다리고 있었어요. 명함 줬을 때부터."
"저를...요?"
당황해하는 그녀의 얼굴. 그럴만도 하지.
"네, 그때 한번 보고, 다시 보고 싶어서 기다렸어요. 레스토랑에 다시 올때까지."
"단도직입적으로 그렇게 이야기하니까 또 당황스럽네요. 살짝 무섭기도 하고. 저를 알지도 못하면서..."
"그냥 한번 다시 보고 싶었어요. 다른 이유 없어요."
"알겠어요. 그런데 죄송한데 저는 그쪽에 관심 없으니까... 여자한테 사근사근하게 호감 얻는 법 좀 배우셔야겠어요. 암튼 괜찮습니다. 요리나 주문해주세요."
장인이 몇년동안 간 칼처럼 날카로운 그녀의 단호함이 나를 찔렀다. 뭐, 상관없다.
"알았어요. 알겠습니다. 제가 너무 부담스럽게 접근을 했군요. 그럼 부탁 한가지만 해도 될까요?"
"네? 뭐요."
"...양말 좀 벗어주시겠어요?"
그 말을 내뱉자, 내 안에 무언가가 눈에 띄게 자라났다. 그것이 무엇인지는 모르겠지만, 그녀가 정색하는 것을 보면서도 내 눈은 양말에만 가 있었다. 양말, 양말, 양말. 저 앙증맞은 냄새 같으니라고. 널 갖고 말거다.
그때부터였을까.
내가 인천 양말 변태라고 불리게 된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