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사 A의 사정

영화 덩케르크의 이야기

by ASTR

어머니는 때론 겁쟁이라는 말로 나를 달랬다. 그녀의 얼굴에는 엄한 공기가 묻어있었고 나는 그때마다 고개를 숙였다. 괜찮다는 말은 그로부터 8년은 지나서 내가 죽어서야 들을 수 있었다.


학교에서도 말이 없는 편이었다.

"알랭, 또 창 밖을 보고 있구나. 밖에 뭐라도 있니?"

"...밖에 하늘이 있어요"

그들은 나를 몽상가로 불렀고, 굳이 그들과 말을 섞지 않았다. 무표정한 얼굴로, 교실 안의 아이들에게 "Caio(챠오)".


아이들은 빨리 취직하거나, 대학 입시를 준비하는 그룹으로 나뉘었다. 나는 후자였다. 전부터 관심 있던 역사학과로 진학해, 고등학교 선생이 되는 것이 항상 멍하니 있던 내가 나름 꾸었던 길이었다. 흐릿했던 나의 인상과 정반대로 역사는 항상 명확했고, 그 뚜렷한 이미지가 명쾌했다. 사건이 일어났고, 그럼으로 일어난 일들. 그건 마치 명화같은 것이다. 어쩌면 그 일들 가운데 지금 삶이 세워진 것이라 생각하면 그 역사라는 그림에 경외가 드는 것이다.


"알랭, 네 성적이라면 국공립은 충분히 갈 수 있겠다."

담당 선생님의 그 말을 듣고 입시원서를 작성하던 찰라였다. 책상에 앉아 고민하던 나를 현관에 선 아버지가 불렀다. 오전에 집 앞에 도착한 우편을 뜯어본 아버지의 표정. 번갈아 나를 바라보시며.

"징집통지서가 왔다"


프랑스가 참전을 결정했다.




2차 세계대전으로 불릴 거대한 화염 속에 우리나라도 휘말리게 됐다. 나를 포함한 수많은 젊은이들이 하루아침에 총을 들게 됐다. 다 어떤 명분을 걸고, 정치인들이 결정한 것이겠지. 명분은 있겠지, 있겠지.


하지만 그 명분은 저 지구 밖에서 바라봤을때나 알 수 있을거다. 프랑스의 작은 마을 덩케르크 해변에 시체를 묻으며 생각했다. 혹은 역사라는 그림을 통해서나. 그 명분이나 역사 위에 아슬아슬하게 선 우리는 개미들처럼 아주 작고 연약하다. 수십만 개미떼들 중에 몇마리 죽었다고 슬퍼하지 않는다. 그냥 개미들은 그 죽음이 자신의 몫이 되지 않기를 기원할 뿐이다.


폭탄이 또 떨어진다. 해변에 모여있던 병사들은 바짝 업드린다. 독일군 비행기를 향해 용기있게 총을 발사하던 병사는 사지가 분리되어 공중에 흩뿌려졌다. 그 핏비를 맞은 그 주변 병사들은 그들의 죽음보다 먼저 자신의 생존에 안도한다. 아마 전쟁이 일어나지 않았다면 - 너무나 평범하게 살았을 청년들.


영국군은 덩케르크에서 철수 작전을 준비하는듯 보였다. 이 해변에는 약 30만의 영국군이 독일군의 포위에 사로잡혀있었는데, 줄지어 고국행 배에 올라탈 생존의 순서를 정하고 있었다. 그들은 아무 말이 없었고, 표정도 없었다.


나의 부대는 독일의 프랑스 침공에 이미 전멸한지 오래다. 그 침공에 어찌어찌 이 해변까지 흘러들어왔는지, 어머니가 부르던 겁쟁이가 지금까지 죽은 전우를 넘고 살아남았는지도 모른다. 이곳은 내가 어떤 선택이나 능력이 출중해서가 아니라 '살아남음'이 하늘에서 내려지는 축복과 같은 것이기 때문에.


이름 모를 영국 청년의 시체를 묻으며 그의 인식표 목걸이를 영국식 발음으로 읽어보았다.

"깁..슨."

나는 그대로 프랑스군 옷을 벗고 그 청년의 이름이 되었다. 영국군의 군복과 인식표를 그대로 나는 알랭에서 깁슨이 되었다.


내가 막 깁슨이 되었을 때, 지금 막 해변에 도달한 듯 보이는 한 병사가 내 쪽으로 걸어왔다. 그는 무척 지쳐보였고, 금방이라도 쓰러질 것만 같은 무기력한 얼굴을 하고 있었다. 여기 있는 모두 그런 거울 같은 얼굴을 하고 있겠지. 나를 물끄러미 바라보는 그에게, 내가 가진 생수통을 건넸다. 정확히 말하자면 깁슨의 생수통을. 그는 고맙다는 눈인사를 하고 물을 마신다. 목을 축이고 내가 마져 덮지 못한 시체를 함께 묻는다.


함께 묻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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