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별 잔치

잔치 같던 순간

by Lulina

부모님은 자신들의 장례를 소박하게 가족장으로 치르고 싶어 하셨다. 그래서 아빠는 지인들에게 연락을 거의 하지 않으셨는데, 엄마의 입원 소식은 소문이 날대로 나있던 상황이라 장례소식은 빠르게 전파되어 갔다. 우리 삼 남매도 주변에 소식 전하기를 망설였다. 나의 입장으로는 일단, 너무나 갑작스러운 상황이라 연락할 정신이 따로 없었다. 그리고 SNS로 친구들의 소식은 알고 지내지만 따로 연락을 하지 못한 수년간을, 엄마의 부고로 메우고 싶지 않았다. 부고를 전하게 되면 정말로 인정하게 되는 것 같아서, 엄마가 이 세상에 없다는 걸 모두 다 알아버리는 게 감당이 되지 않았다. 아빠는 패닉상태라 무언갈 결정할 여력이 없으셨다.

“너희가 하자는 대로 진행하면 된다.”

그렇게 말씀하시고선 친구분들에게 둘러싸여 간신히 버티고 계셨다. 우리 삼 남매도 정신이 없기는 매 한 가지라, 장례절차와 필요한 것들을 몇 번이고 다시 전달받아야 했었다. 여차저차 오후 늦은 시간부터 손님을 받기 시작했다. 아빠는 엄마의 영정 사진을 보고 또 한 번 울음을 토해내셨다.

“저렇게 예쁜 사진으로 여기 있음, 내가 어떻게 들어갈 수 있나….. “



엄마는 그늘이 시원한, 아주 큰 나무 같은 사람이었다. 누구든 그 그늘에서 쉬어가길 원했고, 그때마다 기꺼이 자리를 마련해 편히 대해주는 사람이었다. 그래서였을 것이다. 가족장이라고 한 말에도 손님들이 부지런히 찾아오셨다. 근조 화환과 바구니들도 밀려들어왔다. 외동이시라 썰렁할 줄 알았던 장례식장을 많은 친구분들과 친척분들이 채워주셨다. 그렇게 정신없는 시간들을 보내며 , 오랜만에 얼굴 보는 엄마 친구들, 선배분들, 엄마의 이야기들 속에서만 존재하던 지인분들, 오랜만에 뵙는 친척분들….. 그리고 몇몇 내 지인들과 동생들의 지인들. 그 많은 사람들이 엄마의 그늘 안에서 마지막 잔치를 벌이러 온 것 같았다. 여기저기서 눈물 섞인 소리도, 오랜만에 얼굴을 보며 안부를 묻는 이들도……정신없이 손님맞이 중에 마주한 모습은 잔칫집 같았다. 탓할 사람이 없었다. 이 어마어마한 사건에서 책임을 물을 사람이 아무도 없었다. 누군가를 비난하고 화풀이를 하고 싶은데, 엄마는 마지막도 참 한결같았다. 나에게 긍정적인 면이 조금이라도 있다면 아마 엄마의 영향일 것이다. 엄마는 타인에게 배려가 넘치고 긍정적인데, 남 탓을 하는 모습을 본 적이 없다. 내가 아는 한 가장 지혜로운 사람, 어떤 문제가 닥쳐도 엄마와의 조언이면 만사형통이었다. 엄마 친구들은 너도 나도 할 것 없이 말했다.

“내 제일 친한 친구는 니네 엄만데, 니네 엄마한테는 누가 제일 친한 친구인지 모르겠다. ”

그렇게 비통함과 속상함과 안타까움 같은 여러 감정들로 뒤섞인, 누구 하나 탓할 수 없던 장례식이 반짝거리고 있었다.




예전엔 한국 장례문화를 싫어했었다. 시끌벅적함이 슬픔을 뒤덮는 그 모습이 고인에게 미안하다는 생각을 들게 했었다. 조부모님들의 장례식에선 그런 생각을 하곤 했었는데, 엄마가 돌아가시고는 그런 감정이 들지 않았다. 그저 엄마의 마지막 모습을 같이 기억해 주는 이들에게 동질감과 감사함이 밀려왔고, 이 감사함을 어찌 갚아가며 살아가야 할지, 어떻게 전하며 살아야 할지에 대해서, 이렇게 많은 이들 가슴에 따뜻하게 남아있는 엄마라는 사람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하게 되었다. 그분들 마음에 엄마가 따뜻하게 남아 있다는 사실이 내게 얼마나 큰 위로가 되던지……


그렇게 엄마의 장례식이 반짝이며 마무리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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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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