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회
한국으로 가는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누가 도와주는 듯 표도 구해지고 없던 자리도 생겼다. 눈물이 솟아오르다 멍하니 있다 다시 눈물을 쏟아내며 15시간을 견뎌냈다. 내가 눈물을 흘릴 때마다 둘째는 나를 위로해 주느라 온 힘을 다 한다. “괜찮아?”라며 품에 파고들며 안아주거나 뽀뽀를 해준다. 아이의 노력 덕분일 것이다. 그 시간을 버틸 수 있었던 건. 세 살짜리 둘째는 기나긴 비행을 그렇게 씩씩하게 있어주었다. 직항이 있어서, 이렇게라도 표를 구할 수 있어서 너무나 다행이라는 생각만으로….. 이것만으로도 충분히 감사하다는 생각만 하며 한국에 도착했다. 그렇게 도착한 공항에서 정신없이 짐을 찾다 곳곳에서 들리는 전화소리에 눈물이 왈칵 쏟아진다.
“엄마~.”
나도 그랬는데, 지난 6월 공항에 도착했을 때….. 나도 엄마한테 연락을 했는데…….. 타인의 반가운 목소리들 사이에서 서둘러 짐을 챙겨 택시를 타고 고향으로 내려갔다. 가는 도중 도착지는 집에서 병원으로 바뀌었다. 그렇게 엄마를 마주했다.
꼭 영화 한 장면 같았다. 내 일이 아닌, 스크린으로 남의 인생을 들여다보는 것 같았다. 헤나로 매번 염색하던 엄마의 구불거리던 머리는 수술을 위해 밀려져 있었고 온몸은 호스와 여러 선들로 감싸져 있는 듯했다. 어쩜 이렇게 급작스럽게 다른 모습을 한 사람이, 내 엄마 일 수 있을까. 내가 유일하게 할 수 있는 말은 엄마를 사랑하고 있다는 말뿐이었다. 유난히 짧은 면회 시간은 지금 상황이 더 비현실적이라는 사실만 확인해 주었다. 비행기를 타고 오는 내내 마음의 준비를 하고 왔던 터라……. 나의 상태는 의외로 덤덤했다. 아니, 현실감각이 없었던 듯하다. 엄마의 상태는 좋지 못했고, 나는 서둘러 남편과 첫째를 한국으로 불렀다.
며칠을 견뎌내 주셨을까. 그 사이 엄마를 보고 싶어 하던 이들의 발길로 대기실은 붐볐다. 엄마가 있던 중환자실은 하루에 한 타임, 딱 삼십 분만 면회를 할 수 있었다. 그 시간들은 엄마를 그리워하는 이들로 가득 메워졌다. 엄마가 그렇게 좋아하던 남편도 인사를 했고, 제부도 인사를 했고, 엄마의 친한 친구들과 사촌들이 인사를 했다. 엄마는 남편을 참 좋아했는데. 면회를 다녀온 남편 눈에 눈물이 그렁그렁 매달려 있었다. 그 후, 엄마가 아무도 모르게 생명연장거부를 신청해 놓았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렇게 우리에게는 2-3일의 시간이 주어졌다. 승압제로 억지로 살려 놓고 있는 엄마의 남은 삶을 결정 내려달라는 최후통첩이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