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력렌즈효과
사람들에게 천문학 연구 관련 기사나 사진을 보면서 신기함을 느끼는 때가 언제인지를 물어보면, 구부러지고 활처럼 휜 은하 모양을 만들어 내는 중력렌즈 효과를 볼 때라는 대답이 종종 돌아온다. 필자는 중력렌즈 효과에 의해 왜곡된 은하 이미지들을 볼 때 과장을 조금 보태서 소름이 돋는다. 그것은 단순히 은하의 모양 때문만은 아니다. 중력렌즈는 인간의 과학적 사고와 영감이 얼마만큼 완벽하고 아름다울 수 있는지 보여주는 좋은 예이다. 아인슈타인이라는 한 사람이 만들어 낸 물리학 이론이 중력 렌즈 효과를 예견하고 그것이 정확히 관측으로 확인되는 너무나 완벽한 이 상황이 신기함을 넘어서 경이롭기까지 하다. 이번 주의 천문학은 중력렌즈에 관한 얘기이다.
위의 이미지에 나오는 푸른색 활꼴 혹은 원 모양은, 뒤에 있는 은하가 앞에 있는 노란색 은하가 만들어낸 중력렌즈 효과에 의해 변형되어 생긴 결과이다. 어떻게 해서 이런 모양이 생길 수 있는지는 길게 설명하지 않아도 와인잔을 렌즈로 이용한 아래의 그림을 보면 쉽게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왼쪽의 검은 점을 배경 은하라고 하고 와인잔 바닥을 배경은하와 우리 사이에 있는 중력렌즈 라고 해보자. 배경은하와 중력렌즈 사이의 거리가 가까워질수록, 한 개 이상의 이미지가 생겨나기 시작하고 점점 활꼴 모양이 되다가 배경은하와 중력렌즈가 시선방향을 따라 일직선상에 놓이게 되면 고리모양의 이미지가 생겨난다. 배경은하와 중력렌즈 역할을 하는 은하가 시선방향에서 정확히 일치할 경우에 생기는 고리모양의 이미지를 아인슈타인 고리 (Einstein Ring)라고 부른다.
자 그러면, 질량을 가지고 있는 물체가 어떻게 해서 와인잔이 만들어내는 렌즈와 같은 역학을 하는 것일까? 이 질문에 대한 답을 생각하기 전에, 우선 렌즈를 통해 보이는 검은 점의 모양이 왜 실제 검은 점의 위치와 다른 곳에서, 하나도 아닌 두 개 이상으로 보이는지를 생각해 보자. 실제 위치와 다른 위치에서 보이는 이유는 빛의 경로가 렌즈를 통과하면서 꺾이기 때문이며, 한 개 이상의 이미지가 생기는 이유는 렌즈의 각각 다른 부분을 통과하는 빛이 꺾이는 각도가 다르게 때문이다. 그럼 진공이 아닌 매질을 통과하는 빛은 왜 꺾이는 것일까?
빛의 속도는 진공에서의 맥스웰 전자기 방정식을 파동방정식 모양으로 변환하는 과정에서 나타나는 상수로서, 유전율과 투자율의 곱으로 정해진다. 유전율은 전하 사이에 전기장이 작용할 때, 그 전하 사이의 매질이 전기장에 미치는 영향을 나타내는 물리적 상수이다. 투자율은 매질이 전기장 대신 자기장에 미치는 영향을 나타내는 물리적 상수이다. 여기서 매질이 진공이 아니라면, 유전율과 투자율도 달라지므로 진공이 아닌 매질을 통과하는 빛의 속도는 진공에서의 빛의 속도보다 느려진다. 이것이 빛이, 유전율과 투자율이 다른 매질의 경계를 통과하면서 꺾이는 이유이다. 속도가 달라지면 경로가 바뀌어야 하는 이유는, 보통 아마도 한 번쯤은 들어보았을 페르마의 원리를 이용하여 설명한다.
페르마의 원리: 빛은 이동시간이 제일 짧게 걸리는 경로를 택해 진행한다.
이 원리에 따르면, 진공이 아닌 매질을 지나는 빛은 속도가 느려지므로 늘어지는 시간을 보상하기 위해서는, 매질에 진입할 때, 원래의 진행 방향에서 경로를 틀어서 매질 안에서 전파하는 경로를 최대한 줄이려 한다. (가장 잘 알려진 비유는, 해수욕장에서 인명구조 요원이 바다에 빠진 사람을 구하기 위해 최단시간 내에 사람이 빠진 곳까지 도착하기 위한 경로이다). '원리'라고는 했지만, 사실 왜 빛이 페르마의 원리를 따라야만 하는지는 명확하지 않다 (그래야만 할 것 같은 느낌이고 또 그것이 관측되는 빛의 반사, 굴절을 잘 설명하기는 한다). 하지만 좀 더 근본적으로 왜 빛이 최단시간이 걸리는 경로를 택해야 하는지 (빛이 의식적으로 그러한 경로를 고른다는 의미가 아니라 왜 그러한 결과가 생겨나는지)를 이해하려면, 물리학자 리처드 파인만이 그의 책 "양자전기역학 (Quantum Electrodynamics, QED)"에 써 놓은 설명을 따라가야 한다.
양자역학의 관점에서 우리가 관찰하는 현상은 확률적으로 가능한, 일어날 수 있는 모든 경우들이 중첩된 결과이다. 아래 그림에 보이는 것처럼 빛의 반사를 예로 들면, 빛이 출발한 곳 (S)과 표면에서 반사하여 검출기에 도달하는 곳 (P) 사이에는 무수히 많은 '가능한' 경로 (S-A-P, S-B-P, S-C-P, 등등)가 존재한다. 빛이 각각의 경로를 따를 확률은 같다 (빛이 특정 경로를 선호할 이유가 없으므로) 하지만 각각의 경로를 따라갈 때 걸리는 시간은 다르다. 중간에 있는 도표는 빛이 A, B, C, D,..., M에서 반사되는 경로를 택했을 때 걸리는 시간을 보여준다 (S-A-P와 S-M-P를 따라갈 때 가장 오랜 시간이 걸리고 S-G-P를 따라갈 때 가장 짧은 시간이 걸린다). 각각의 반사 지점 A, B, C,.., M에 나와 있는 화살표들을 보면 길이는 다 같은데 방향이 다르다. 길이의 제곱을 하면 확률이 되는데 (왜 그런지는 양자역학을 좀 더 공부해야만 한다) 화살표들의 길이는 다 같으므로 확률도 같다. 그런데 각각의 반사지점에 해당하는 화살표의 방향을 정하는 것은 바로 그 반사지점을 따라 빛이 진행했을 때 검출기에 도달하기까지 걸리는 시간이다.
양자 역학에서 어떤 상태가 시간에 따라 변하는 것을 풀 수 있는 방정식에 빛의 초기 상태 (S에서 출발했을 때)를 대입하고 검출기에 도착할 때까지 걸리는 시간 (경로에 따라 다르다)만큼이 지난 후의 상태를 계산하는 것은 화살표를 회전하는 것과 비슷하다 (초기상태에서 회전하기 시작한 화살표는 검출기에 빛이 도착하는 순간 정지한다, 오랜 시간이 걸릴수록 더 많이 회전한다). 이 논리를 따라 화살표들을 각각의 경로를 따랐을 때 걸리는 시간에 맞게 회전시키면, A, B, C,..., M 글자 밑에 보이는, 길이가 같지만 방향이 다른 화살표들을 얻게 된다. 거의 다 왔다. 이제 마지막으로 이렇게 얻어진 화살표들을 다 더해보자. 이때 우리는 벡터의 합을 구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처음 화살표의 머리와 그다음 화살표의 꼬리를 붙여 연결하는 방식으로 모든 화살표들을 연결하면 제일 아래에 나온 것과 같은 굵은 선으로 표시된 큰 화살표를 얻게 된다.
우리가 관찰하는 거시적인 빛의 반사현상은 양자적 규모의 작은 화살표들이 더 해져서 만들어진 큰 화살표의 상태로 표현할 수 있다. 그런데 큰 화살표를 만드는 데 가장 중요한 역할을 하는 작은 화살표들은 E, F, G, H, I 지점에서 반사하는 경로에 해당하는, 방향이 비슷한 (즉 검출기에 도달하는 데 걸리는 시간이 비슷한) 화살표들이고 이 화살표들이 영향이 지배적이기 때문에 빛이 G지점에서 반사하는 것으로 관측될 확률이 가장 크다. 그리고 이때 걸리는 시간도 가장 짧다.
양자역학적 관점에서 본 페르마의 원리: 빛은 그저 확률적으로 가능한 모든 경로를 따라갈 뿐이고 우리가 관측하는 현상은 이 모든 양자적 상태 (가능한 경로들)의 중첩이 만들어낸 결과이다. 이때 가장 확률적 기여도가 높은 양자적 상태들이 (최단시간이 걸리는 경로) 두드러진 역할을 하기 때문에, 우리는 빛이 최단 시간이 걸리는 경로를 따라 반사되는 것으로 관측할 뿐이다.
굴절도 마찬가지로 빛은 최단 시간이 걸리는 경로를 따라 진행한다. 이제 와인잔과 같은 매질이 아닌 진공을 지나는 빛이 휘는 이유를 알아보자.
진공인 평평한 공간을 전파하는 빛이 페르마의 원리에 의해 따라 최단시간이 걸리는 경로를 따라 움직인다면, 그 경로는 직선이 돼야 할 것이다. 그런데 아인슈타인의 일반 상대성 이론에 따르면, 질량을 가지는 물체 주변의 시공간은 휘어진다. 하지만 휘어진 시공간을 자세히 확대해서 들여다보면 어느 순간부터 국지적으로 평평하게 보이게 된다. 그 국지적으로 평평한 공간을 따라 진행하는 빛은 매 순간순간 직진하고 있다. 하지만 그 국지적 직진 경로들을 합쳐놓으면, 거시적으로는 휘어진 경로를 따라 진행하는 결과를 낳는다.
아인슈타인은 이를 바탕으로 태양 주변을 지나가는 빛이 얼마만큼 휘어져야 하는지를 계산하고 이를 천문학자 조지 엘러리 헤일에게 편지 (아래)로 알려주고 어떻게 하면 이를 관측으로 증명할 수 있겠는지 조언을 구하였다.
재미있게도 이 편지에서 아인슈타인은 일반상대성 이론을 쓰지 않고 빛의 휘는 각도를 0.84"라고 썼지만, 사실 일반 상대성 이론으로 엄밀히 계산하면 그 두 배인 1.68"정도가 된다. 아인슈타인의 이 예측은 1919년 천문학자 아서 에딩턴이 이끄는 관측팀에 의해 사실로 확인이 되었다 (측정값 1.60-1.90").
그 당시 뉴욕타임스에 기사가 날 정도로, 오늘날의 중력파 검출이나 블랙홀 사건의 지평면 관측에 버금가는 놀라운 사건이었다. 실험, 관찰과는 별 상관없이, 순전히 인간의 머릿속의 물리적, 수학적 논리에 기반해서 나온 이론이 중력렌즈 현상이 있어야 한다고 예견하고 실제로 우주에서 이것이 관측되는 것을 보고 있노라면, 아인슈타인의 업적은 뉴턴이 만유인력의 법칙을 찾아내고 행성의 운동을 예측했던 것과 어깨를 나란히 하는 참으로 경이로운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