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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이 틀렸어요

베아트리스 틴슬리, 은하 진화 연구의 기폭제

by astrodiary

*틴슬리에 관한 일화는 2024년 7월 11일 미국 천문학회의 "이달의 천문학 역사"라는 칼럼에 실린 글을 바탕으로 했습니다.

july-01-1978-beatrice-tinsley_0.jpg 예일대 교수로 재직하던 시절의 베아트리스 틴슬리


1967년 미국 텍사스 주립대의 댈라스 캠퍼스. 20세기 천문학의 가장 중요한 인물 중의 하나이자 에드윈 허블의 제자인, 당시 천문학계를 주름잡던 41살의 천문학자 앨런 샌디지가 우주의 운명에 관한 거창한 주제로 강연을 하고 있었다. 강연도중 당시 26살의 대학원 생이던 베아트리스 틴슬리가 일어나 얘기한다. '당신이 지금 얘기하고 있는 것들은 모두 틀렸어요'. 순간 강의실에는 정적이 흘렀고 모두가 샌디지의 눈치를 보기 시작했다. 당시 그 상황이 어떻게 마무리되었는지 남아 있는 기록을 찾을 수는 없지만, 그 뒤의 일련의 행보를 보면 샌디지는 기분이 엄청나게 상했고 틴슬리에게 좋지 않은 감정이 남아있었음을 짐작할 수 있다.


샌디지에게는 안 좋은 기억일 수 있겠지만, 그때가 바로 천문학자들이 은하의 진화에 대해서 심각하게 고민을 하고 연구를 하기 시작한 시점이다. 그럼 샌디지는 대체 무슨 얘기를 하였고, 틴슬리는 왜 그것이 모두 틀렸다고 했을까?

샌디지는 우주가 수축하여 소멸할 운명이라고 주장했다. 우주가 팽창 혹은 수축한다고 생각해 보자. 그러면 그 안에 있는 은하들 사이의 거리도 달라지기 마련이다. 아래의 그림에 보이는 것처럼, 우주가 팽창을 한다면 은하들 간의 거리(y 축)가 시간(x 축)이 지남에 따라 점점 멀어질 것이고 수축을 한다면 반대로 점점 줄어들 것이다. 그래서 보통 팽창하는 우주를 '열린 우주', 수축하는 우주를 '닫힌 우주'라고 말을 한다.

Oscillation_lg[1].jpg https://w.astro.berkeley.edu/~basri/astro10-03/lectures/lec22.html

우주론 모형에 따르면 천체의 거리와 적색편이 사이는 일정 관계가 있다. 일반적으로 적색편이가 크면 거리도 멀지만 적색편이에따라 거리가 증가하는 정도는 열린 우주와 닫힌 우주의 경우 약간의 차이가 있다. 많은 천체에 대해서 천체까지의 거리를 재고 스펙트럼 관측으로 적색편이를 재면 "거리-적색편이 관계"를 잴 수 있다. 샌디지는 허블의 관측적 유산과 더불어 그 당시 최신의 관측자료를 독점하고 있던 터라 이 연구의 최전선에 있는 사람이었다. 그런 그가 거리-적색편이 자료를 분석한 바에 따르면 우주는 수축하는 닫힌 우주였던 것이다. 그와 같은 결론에 이르게 된 과정에는 중요한 가정하나가 있었는데, 바로 특정한 종류의 은하 (은하단 중심부에 있는 제일 밝은 은하)는 모두 일정한 광도 (절대밝기)를 가진다는 것이었다 (샌디지가 이런 가정을 하게 된 이유는 관측된 샘플이 많지 않은 데다가 은하들 모두가 비슷비슷한 밝기를 보여주었기 때문이다). 일정한 광도를 가진다는 것은 천문학에서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왜냐하면 천체의 관측된 밝기 (겉보기 밝기)는 그 천체까지의 거리의 제곱에 따라 줄어들기 때문에 겉보기 밝기가 절대밝기에 비해 얼마나 줄어들었는지를 재면 그 천체까지의 거리를 알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과연 그 가정은 옳은 것일까? 틴슬리는 동의할 수 없었다. 왜냐하면 별들의 집합으로 이루어진 것이 은하이기에 은하 안의 별들이 태어나고 죽는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별들의 광도가 변할 것이고 따라서 은하들의 밝기는 시간이 지나면서 줄어들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이 자연스럽지 않을까? 그렇다면 멀리 있는 적색편이가 큰 '과거의' 은하들은, 같은 종류이지만 가까운 곳에 있는 은하보다 더 밝아야 한다는 결론에 다다른다. 즉 은하들이 모두 같은 절대 광도를 가진다는 가정하에 도출한 은하의 거리는 거리가 먼 은하일수록 점점 더 커다란 오류를 가지게 된다. 이렇게 해서 다다른 우주의 운명에 대한 결론은 틀릴 수밖에 없을 것이다. 하지만 26살의 나이에 더구나 그 당시 찾아보기 힘든 천문학 박사과정의 여학생이 41살의 거물 남성 천문학자에게 공개적으로 당신이 틀렸다고 말하는 것은 정말 쉽지 않은 일이었을 것이다.


틴슬리는 그 당시 알려져 있던 시간에 따른 항성 진화 모형과 별들이 무리 지어 생겨날 때 가지는 질량분포를 가정하여 각각의 별들의 광도 변화를 시간에 따라 추적하고 이렇게 변하는 별들의 광도를 더하여 은하 전체의 광도 변화를 모델링하는 정말 회기적인 방법을 고안하였고 이는 오늘날 은하연구를 하는 거의 모든 천문학자들이 계속 발전시켜서 사용하고 있다.


틴슬리는 대학원을 2년 만에 (전설적인 기록이다) 우수한 성적으로 졸업하고 동료들이 모두 획기적이고 훌륭한 연구라고 입을 모아 칭찬한 연구 주제로 박사학위를 받았으나 직장을 잡을 수가 없었다 (지금의 상황과 비교해서 그 당시 사회를 살아가던 많은 여성 과학자들은 본인의 능력을 맘껏 펼치고 이를 제대로 인정받기가 어려웠던 것이 사실이다). 당시 결혼해서 아이가 있던 틴슬리는 자신의 커리어를 위해 이혼과 양육권 포기라는 어려운 결정을 하고 연구에 매진한 끝에 예일 대학에 교수직 (최초의 여자 교수였다)을 받았지만 안타깝게도 불과 몇 년 후 피부암 진단을 받고 병마와 싸우다 1981년 마흔 살의 이른 나이에 세상과 작별하였다.


여담으로 말하자면, 샌디지 본인도 젊었을 때, 태양과 같은 주계열 성이 적색거성으로부터 진화해 온 것이라는 당시의 대세론이 틀렸으며 반대로 주계열 성이 적색거성으로 진화해 간다는 사실을 발견하여 항성 진화 연구로 스포트라이트를 받았던 사람이다. 하지만 본인이 은하를 연구할 때는 별의 집단으로 이루어진 은하의 광도 변화를 심각하게 고려하지 않았다는 점은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틴슬리로부터 시작된, 항성 진화 모형에 기반한 은하의 광도와 화학적 원소함량의 변화 모형은 은하 진화 연구에 새로운 패러다임이 되었고 오늘날 우리가 알고 있는 은하의 성질과 진화에 관한 많은 부분의 토대가 되었다. 짧지만 커다란 임팩트를 남기고 간 틴슬리의 연구와 후대에 계속된 후속 연구들은 나중에 다시 얘기할 기회가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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