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사 전달에 의한 원자와 분자 내부의 에너지 변화
천문학에서 우주에 있는 원자나 분자의 존재를 확인하는 가장 확실한 방법은 원자나 분자가 가지는 고유의 에너지 구조에 따라 생기는 여러 종류의 방출선 혹은 흡수선을 관측하는 것이다. 선복사가 생기는 원리에 관해 설명한 이전 글에서 흡수선이 생기는 이유에 대해서 설명을 하였다. 뒤에 강한 광원이 있고 그 광원에서 나오는 빛이 앞에 있는 미지의 물질을 지나가게 되면 그 물질을 이루고 있는 원자나 분자를 자극하여 내부구조에 변화를 일으킨다. 흔히 생각할 수 있는 변화는 원자의 경우 원자가 가지는 전자들의 궤도 변화, 분자의 경우 회전과 진동이다. 그 변화에 해당하는 에너지를 가지는 광자는 그 물질에 흡수되어 사라지고 대신 그 물질들의 내부 에너지 상태가 변한다. 그래서 연속 복사의 스펙트럼을 관측하여 흡수선이 보이면 우리는 그것을 마치 원자와 분자들의 지문으로 간주할 수 있는 것이다 (수많은 원자와 분자들은 각기 다른 고유한 내부 에너지 구조를 가지고 있다).
이 말이 너무 추상적이라면, 우리 주변에서 볼 수 있는 전자레인지를 예를 들어 설명해 보겠다. 전자레인지는 음식 안의 물분자를 가열하여 음식을 데우거나 조리한다. 물분자는 알다시피 수소원자 두 개와 산소원자 하나로 이루어져 있다.
이 물분자를 자극할 수 있는 대표적인 방법은 물분자를 회전시키거나 물분자를 진동시켜 수소와 산소를 연결한 104.5도를 이루고 있는 결합팔의 각을 변화시키는 것이다. 전자레인지는 2.45 GHz의 주파수를 가지는 마이크로파 (12.2 cm길이의 파)를 발생시키는 데 이는 다양한 물분자의 다양한 진동 모드 중 특정 모드를 자극한다. 이렇게 자극된 물분자들은 열운동을 하기 시작하고 자연스럽게 뜨거워진다. 따라서 수분이 있는 음식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모든 음식에는 어느 정도의 수분이 있게 마련이다)를 전자레인지에 넣고 스위치를 켜면 음식이 뜨거워진다. 전자레인지에서 방출된 빛이 물분자의 에너지를 바꾸는데 쓰인 것이다.
천체의 스펙트럼을 관측하다 보면 이 물분자들 때문에 생기는 흡수선들이 종종 관측된다. 요즘 가장 주목을 받는 연구 중의 하나는 아마도 물이 있는 외계행성 일 텐데, 제임스웹 우주망원경이 실제로 외계 행성대기 중의 수증기의 증거를 흡수선을 통해 찾아내기 시작했다.
위에 보이는 그림은 외계행성 WASP-96b가 공전하고 있는 별의 앞을 지나가는 동안에 별 빛이 행성의 대기를 통과하는 과정에서 얼마나 흡수되었는지를 나타내는 스펙트럼이다 (많이 흡수될수록 값이 크다). 아주 작은 변화를 감지해야 하는 굉장히 어려운 관측임에도 불구하고 놀랍게도 행성 대기중에 존재하는 물분자들이 일으키는 흡수선을 확인할 수 있다.
이러한 흡수선들을 만들어 내는 것은 위와 같은 물분자의 진동모드들이다. 각각의 모드들 사이에는 미세한 에너지 차이가 있고 이들을 일일이 구별하는 일은 양자화학을 이용한 정밀한 계산을 요구하는 일이라 필자도 더 깊은 얘기를 할 수 있는 전문지식이 없다. 하지만 하나 말하고 싶은 것은 요즘 천체 물리학은 과거와는 달리 물리학을 넘어서 다른 과학분야(화학과 생물)들과의 협업이 점점 중요해지고 있다는 사실이다. 왜냐하면 관측기술이 그만큼 발전하여 더 자세한 부분까지도 테스트를 해 볼 수 있게 되었기 때문이다.
전자레인지에 관한 얘기하나를 더 하면서 글을 마치기로 한다.
전자레인지에서 나오는 마이크로파는 우리에게도 굉장히 위험한 것이다. 왜냐하면 우리 몸의 70%는 수분이기 때문이다. 그럼 음식을 데우는 동안 전자레인지에서 멀리 떨어져 있어야 하나? 하지만 그리 걱정할 필요가 없는 것이, 전자레인지의 문 안쪽에는 안전장치가 있다. 바로 작은 구멍이 촘촘하게 뚫린 그물 망이 붙어있기 때문이다. 빛의 간섭과 회절에 대한 글에서 얘기했듯이 빛의 파장에 비해서 구멍의 크기가 작으면 그물망을 통과한 빛은 간섭을 일으켜 세기가 급격히 약해진다. 필자의 집에 있는 전자레인지의 문에 있는 구멍의 크기는 한 2 밀리미터정도로 전자레인지 마이크로파의 1/60 정도이다. 이 정도면 마이크로파를 상쇄시키기에 충분하다. 하지만 우리 모두 잘 알고 있듯이, 전자레인지가 내는 마이크로파를 반사시키는 금속물질이 함유된 그릇을 집어넣고 전자레인지를 돌리는 일은 절대로 삼가해야겠다. 반사된 마이크로파가 그릇의 모서리 가장자리에 모여 전하가 쌓이면 공기중으로 방전되어, 마치 번개치는 것과 같이 스파크가 튀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