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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Freenautes 프리나우트 Sep 02. 2022

저는 말이죠.

덕질에 관하여...

2W 매거진 27호에 투고했던 글입니다.

한창 가족여행 중이라 마감날에 맞춰 투고하지 못했네요.


열심히 글 한편을 완성한 자신을 다독임과 동시에 좀 더 바지런하지 못한 스스로를 반성해봅니다.


이번 달 매거진이 발매되었습니다.










제가 덕후냐고요? 음… 그러니까 오타쿠인지 아닌지 알고 싶다는 거죠? 

저는 오타쿠는 아닙니다.


검은 뿔테 안경도 쓰지 않았고, 떡진 머리가 모세의 기적처럼 딱 갈라져 붙어 있지도 않으며 물광을 먹인 것처럼 얼굴에서 살짝궁 윤이 나지도 않거든요. 살집이 조금 있기는 하지만 카라가 달린 셔츠 같은 옷을 즐겨 입지도 않아요. 집구석에서 꾸준히 뭔가에 몰두하거나 가방 속에 나만의 별들을 응원하기 위한 부채와 빛나는 응원도구 등을 넣어 다니는 일도 없습니다. 


무슨 소리인가 싶으시군요? 제가 대중매체를 통해 접한 오타쿠의 이미지가 방금 말한 식이거든요. 물론 사람마다 가진 개성이 다 다르듯 오타쿠라는 말을 듣고 있다고 다 저런 틀에 박힌 모습을 하고 있다고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저는 그래요.


뭐든 하나에 심취하면 정말 뽕을 뽑고 싶어지거든요. 예를 들면 이런 거죠. 제가 오래전에 말도 제대로 못 하는 채로 일을 한답시고 일본에 왔어요. 영어는 정말 죽기보다 싫어서 한자는 학교에서도 배웠겠다 문법도 한글과 비슷하겠다 괜찮겠다 싶었죠. 막상 와서 일을 하려고 보니 알아듣기를 하겠나 말이 되나 미소만 짓다가 얼굴 근육에 쥐가 나겠더라고요? 하도 답답해서 한국을 좋아하신다는 선생님을 찾아가 일본어를 공부했습니다. 얼마나 열심히 했는지 감이 잡히시나요? 태풍이 온다고 난리법석이거나 눈이 날려서 전철이 늦는 날에도 갔습니다. 하도 그러니 선생님이 저보고 ‘크소 마지메(くそ真面目 : 너무 고지식한 사람을 이르는 말)’이라고 하시더군요.


뭘 열정적으로 좋아하면 끝을 봐야 합니다. 덕질 역시 마찬가지일 것을 아니 시작조차 하지 않고 있어요. 괜히 시작했다가 덕질을 위해 일에 몰두하게 되는 때가 와 버리면 어떻게 합니까. 저는 지금 바빠요. 아이가 넷이나 있고 매일 끝나지 않는 집안일과 ‘나’에 대한 탐구로 정신이 없거든요.


네? 제가 매일 뭔가 끄적이고 어딘가에 카메라를 들이댄다고요?


맞습니다. 일상에 떠오르는 생각들과 잡아두고 싶은 순간. 그런 거 있잖아요. 놓치고 싶지 않은 찰나 말이에요. 저는 그 모든 것들을 될 수 있는 한 기록하고 찍어둡니다. 남겨둔 기록들을 되새기며 글을 쓰거나 생각을 할 때 저는 참 즐겁습니다. 멈출 수 없는 재미가 있는 반면에 사소한 것 하나하나 다 남기고 싶어 져서 해야 할 일을 위한 시간을 뺀 나머지를 활용하기가 여간 쉬운 일이 아니에요.


순간을 남기고 싶은 것뿐인데 열정적이라고 하니 부끄럽네요. 아! 덕질이 바로 좋아하는 것을 열정적으로 모으거나 찾아보는 행위라고 들은 기억이 있는데 저는 일상의 순간을 덕질하고 있군요. 화분에서 꽃대가 나와서 꽃봉오리를 내 밀고 통통하게 살찌우던 꽃망울을 소리 없이 터트린 순간. 아이가 통통한 발에 힘을 잔뜩 주고 두 팔을 하늘 높이 뻗어 점프하며 뛰어오르는 순간. 천둥번개가 번쩍! 하며 멋진 궤적을 남기는 순간 등


언제까지나 남기고 싶은 순간을 붙잡는 일은 쉬운 일이 아닙니다. 매일 일어나는 일을 열심히 들여다봐야 해요. 그래야 놓치지 않고 붙잡을 수 있거든요. 매 순간을 알차게 보내게 되는 건 덤입니다.


아직은 이 덕질이 질리지 않아요. 같은 날이 하나도 없으니까요. 저는 아마도 이변이 없는 한 이 덕질을 쭈욱 해 나갈 겁니다. 아. 재미있겠다고요? 두말하면 잔소리입니다.


당신은 어떤 덕질을 하고 있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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