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팥죽 한 그릇

찹쌀로 빚은 새알심, 엄마가 해 주시던 팥죽 한 그릇이 먹고 싶다.

by 진이

토요일 아침.

당직근무를 서기 위해 일어났다. 속이 좀 부글부글 했지만, 뭐 대수롭지 않았다.


'회사 가기 싫어~'


학교 가기 싫은 어린아이처럼 몸보다 무거운 마음을 짊어지고 자동차에 시동을 걸었다.

찌뿌둥한 몸이지만 굳건한 식욕을 채우기 위해, 살 안 찌는 사발면을 먹었다.

당직을 같이 서는 직장동료와


라면은 살 안 쪄
탄수화물이 아니라 대부분 미네랄과 비타민이래

라며, 서로의 몸뚱이를 보며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차곡차곡 밀린 업무들은 잘 정리해서 쌓아두고, 당장 터지는 일들만 주섬 주섬 처리하고 있으니 벌써 집에 갈 시간이다. 집에 있을 식구들에게 전화를 걸었다.


뭐 먹고 싶은 거 있니?


응. 라면


'계란'아니면 '라면'인 딸아이에게 살짝 고마움을 느끼며, 우리 식구들이 모여서 저녁을 먹었다.

같이 모여 먹는 이 시간이 참 좋다.


양치를 하고 자리에 누었지만, 명치끝에 걸려 있는 라면 면발이 느껴지는 것 같았다. 사람도 살린다는 소화제와 매실차를 마시고 자리에 누웠다. 자고 일어나면 괜찮겠지. 선잠을 자면서 문득문득 한기를 느꼈다. 매일 이불 뺏어간다고 혼나지만… 추운걸 어떻게 하나. 이불을 똘똘 말아서 덮었다. 이 와중에 내일 아침에 또 혼나겠지 하며 생각하니, 피식 웃음이 나왔다.


잔 듯 만듯한 밤을 보내고, 고맙게 찾아온 휴일 아침이다. 축 늘어진 몸을 일으켜 보았다. 문화센터에 큰아이를 데리고 갔다 오면서 오늘 하루는 그냥 자야겠다는 생각이 가득했다. 식구들 몰래 입안에 손을 넣고 속을 비웠다. 잠깐 눈을 감았는데 주위가 어두워지고 어느새 밤이 되었다. 약국에 갔다 온 아내와 아이들이 소화제를 내민다. 다 알고 있었나 보다.


월요일 아침. 병원에 먼저 갔다. 무수히 콧속을 오가는 기구들. 독감이었다. 격리조치.

사정을 말하고 연차를 냈다. 시기가 시기인지라 이러다 쭉 회사와 격리되는 것은 아닌지 약간의 불안함을 하나 더 짊어졌다.


열은 없었다. 이번 독감은 열이 나지 않는다고 한다.

근육통은 있었다. 특히 마스크를 쓰느라 끈이 걸리는 양쪽 귀 끝이 아팠다.

메스꺼움과 무기력함이 있었지만, 식욕은 왕성하다.


그래서 그랬는지..

엄마가 해주시던 팥죽이 생각났다. 평소 특별히 좋아하던 음식도 아니고 아플 때 해주시던 음식도 아니었다.

그런데 엄마가 해주시던 팥죽이 생각났다.


찹쌀을 반죽해서 새하얀 새알심을 만들었다. 아이들과 엄마가 자리 잡고 않아 무슨 이야기를 했는지는 모르지만, 그냥 그렇게 둘러앉아 두 손으로 새알심을 빚던 모습이 생각났다. 유독 내가 빚는 새알심은 색이 검었다.


'기분 탓이겠지'


검붉은 팥물과 앙금을 끓이고 새하얀 새알심을 넣는다. 눌어붙지 않도록 저어주면, 용암처럼 묵직하게 끓어오르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팥죽을 둘러쓴 새알심들이 둥글게 둥글게 떠오른다. 몽글몽글하게 익었을 새알심을 한 그릇 가득 담아내어 놓는다. 김이 모락모락 오르는 그릇에, 숟가락을 들어 새알심을 반으로 가른다. 하얀 속살이 보인다. 팥물에 다시 담갔다가 후후 불면서 입안에 넣는다. 그 맛은... 입이 아닌 마음이 알고 있다.


그냥 엄마가 보고 싶었나 보다.

아프다고 칭얼거리면 엄마가 다가와 토닥였으니까..

그런데 엄마가 보고 싶다고 전화 한 통 걸지 않고서, 못나게, 동네 죽 집을 어슬렁거렸다.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울 엄마는 생일이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