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망에 대한 짧은 생각 2/3(2004)
'희망'이란 게 있을까…
있겠지? 어딘가엔…
행복이라면...
행복의 파랑새와 세 잎 클로버가 있기에 가까이에서, 지금 삶의 주위에서 찾아보려 애쓸 것이다.
하지만 이 ‘희망’이란 놈은 도대체 어떻게 된 놈인지 종잡을 수가 없다. 있다가도 없는 것 같고, 없다가도 빼꼼히 고개를 내미니 사람 환장할 노릇이다. 밉다. 요사이 부쩍 이 ‘희망’이란 놈에게 의심을 품게 된다. 최악의 청년실업도 그렇고 아침 뉴스 첫머리를 보아도 그렇다. 교통사고 사망자 수를 넘어섰다는 자살률도 인상을 구기게 만드는 이야기들이다. 아이들을 먼저 집어던지고 자신도 아파트에서 몸을 날리는가 하면, 차를 몰고 강으로, 저수지로 돌진하기도 한다. 어디를 봐도 희망이란 것이 어디에 있고 무슨 역할을 하는지 알 수가 없다.
특히 아이를 내던진 후에 스스로 생을 마감한 경우는 도무지 이해가 가지 않는다. 내 아이가, 내가 없는 세상에서 겪어야 할 고통을 먼저 생각했기에 자신의 손으로 아이를 먼저 보낸 것일까? 이기적이다. 논리적이지 못하다. 하지만 한편으론 수긍이 되기도 한다. 매정하고 자식을 노예처럼 생각하는 나쁜 부모임에 틀림없다. 하지만 쉽사리 고개를 끄덕이지 못하는 나를 느낀다. 그저 할 수 없이 고개를 저을 뿐이다. 다른 선택의 기회도 많이 남아있었을 것이다. 왜 하필 자살로 끝을 맺어야 했을까 하고 반문하기 보다는 과연 그들의 선택지 중에 희망이라는 답안이 제시되어 있었을지 의심이 간다. 또한 그 희망이 정말로 세상을 살아가게 만드는 희망이었을 지도 장담하기 힘들다.
하기야 씨도둑질은 못한다고 했으니…
의심을 한층 깊게 만드는 것은, 이 희망이란 것의 출신 성분이 확실하지 않다는 것이다.
希望. 억지 해석을 해 보자면 드문 것을 바란다는 말이 되겠다. 쉽사리 주어지거나 얻을 수 없는 앞일에 대한 바람. 그게 희망이란 단어의 본모습일까? 가능성 없는 것을 바라는 망상도 희망의 또 다른 모습은 아닐까?
서양 신화 속의 희망은 지금까지 희망이란 것에 대한 사람들의 태도를 보여준다. 신이 인간을 벌주기 위해 판도라를 보낸다. 자신이 앞으로 어떤 계획의 희생양이 될지도 모르는 한 여인이다. 스스로의 의지대로 선택할 수 없는 판도라 역시 희망이라는 것을 알지 못하는 가엾은 인간이었다. 그리고 잔인하게도 신은 선택의 권리를 인간에게 주었다.
열지 마
그러시라면 그래야지요. 하지만 판도라는 인간이다. 호기심을 가득 넣어 만들어 보낸 나약한 인간일 뿐이다. 주어진 각본대로 판도라는 뚜껑을 연다. 그리고 고통이 퍼져나간다. 후회란 소용이 없다. 만약 죄질에 따라 이 고통들이 풀려나왔다면 어떻게 될까? 판도라의 상자 속에서 마지막까지 남아있던 것이 희망이라고 한다. 아마 희망이라는 것은 고통 중에서도 죄질이 나빠 무기수의 삶을 살고 있었을 지도 모른다. 어떤 사람은 끝까지 상자 속에 희망을 담아 놓았기 때문에 우리 가슴속에 남아 있는 것이라고 한다. 그것이 고통인지도 모르고 말이다. 또 다른 사람은 희망이 온갖 고통이 빠져나간 뒤에 판도라에게 사정하여 제일 늦게 빠져나가게 되었다고 한다. 그래서 온갖 고통이 지나고 난 뒤에야 제일 늦게 사람을 찾아간다고 한다. 최후의 일격을 가하는 것이다. 여기서만 본다면 누가 뭐라고 하든 희망의 출신 성분은 고통이라고 생각된다. 신이 인간을 벌하기 위해 보낸 잔인한 시나리오의 하나 일 뿐이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이 희망이란 놈을 대단히 소중하게 생각하고 그저 ‘좋은 것’이라고 생각들 하고 있다. 사실처럼 굳어져 버린 이런 생각이 바로 편견이 아닐까?
프로메테우스.
고통에 각성된 뼈와 근육들이 뒤틀려 있다.
부리에 찢겨 붉은 피가 흐르고 발톱은 이마를 파고든다.
오늘을 견디고 나면 내일 또 돋아날 새살이 찢겨야 한다.
보고 있는가
고통에 떨리는 입술과 앙다문 이로 일그러졌지만
내 눈은 피하지 않고 고통을 바라본다
판도라의 시작은 프로메테우스에서 시작된다.
희망을 바라보는 나의 시선도 프로메테우스에서 시작된다.
신은 고통으로 그를 벌하고자 했지만, 결코 그를 벌할 수는 없었다. 끝나지 않을 형벌의 고통을 피하지 않고 노려보고 있다. 끊임없는 고통은 끊임없는 거부와 신념을 지키는 힘이 되어 주고 있다.
희망은 고통을 품고 있다. 사람들의 가슴에 파고들었고 우리 곁에 있었다. 비록 희망이 현실과는 멀리 떨어져 있다고 해도 희망은 프로메테우스의 마지막 선물이다.
인간을 위한....
하루하루가 힘겨워질 때면 희망은 그 가치를 발한다.
견딜 수 없을 만큼 힘에 겨워 쓰러져 버려도 다시금 일어나게 해주는 힘. 그것이 희망이다. 더딘 발걸음이라도 반드시 목적지에 닿을 수 있다는 희망은 결국 인간을 포기하지 않고 움직이게 만드는 원동력이 된다. 희망이라는 고통은 프로메테우스가 보낸 선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