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고 싶으면 웁시다. 마음 가는 대로

가끔 숨기지 않고 감정만 따라가고 싶을 때

by 진이

너무 속이 상해서, 울고 싶어 질 때가 있다. 아무도 봐주지 않는 곳에서 서럽게 울고 싶다. 그러면서도 한구석엔 울고 있는 내 모습을 누군가에게 들키고 싶은 마음이 있다. 초라하고 측은한 모습이겠지만 그 모습을 봐줄 수 있는 사람이 그립다. 그리고 기대고 싶다.


날이 차다. 제법 매서운 게 옷 깃을 여미게 만든다. 낫부터 내린 비는 봄비라는 말이 무색하게 한기를 품고 있다.


한물갔구먼


이 정도 추위에 벌써부터 몸을 움츠려야 하다니…

얼마 살지도 않은 게 이런 소릴 하고 있으니 제작 연도 오래되신 분들이야 오죽할까. 그래도 점점 무거워지는 삶이 버거워서, 겨우겨우 버텨가고 있는 요새 젊은것들 체력 많이 고갈되어가고 있다고 쓸데없는 자문자답을 해본다.


지금 어딘가의 목적지를 향해 가는, 지하철 귀퉁이에서 무심하게 바라본 풍경은 뭔가에 찌든 듯한 젊은이들의 모습이 가득하다. 노인 양반이 눈앞에 있었도 일어날 힘조차 없고, 그보다 더한 귀차니즘의 무게에 짓눌려 있다. 그도 아니면 휴대폰 오락에 빠져서 기묘한 전자음을 방출하기도 한다. 소리가 예술이다. 역시 비싼 휴대폰은 음질부터 다른가 보다. 감탄하고 있다가도 슬며시 내 휴대폰을 꺼내본다. 괜히 만지작 거리고 메시지 확인하고 웹브라우저를 체크하기도 한다. 수많은 인파들이 있지만 모두 각자의 휴대폰에, 각자의 귀차니즘에 열중하고 있다. 사람들로 북적거리는 이곳 어디에도 우리는 없고 개인이 있을 뿐이다. 새삼스러울 것도 없지만 외롭다는 생각이 든다. 한참을 만지작 거리던 휴대폰 어디에도 마음 놓고 술 한잔 하자고 할 상대가 잡히지 않는다. 전화번호부 가득한 목록 어디에도 통화 버튼을 누를 수 없다. 무기력하다. 언제 어디서든 상대방과 대화하기 위해 존재하는 휴대폰. 그 작은 숫자판 위에서 한참 동안 길을 잃어버린 채로 남겨진다.


눈을 감으면 그리고 눈을 뜨면 가물거리는 모습이 있다. 쉽게 찾아들고 더 쉽게 사라져가는 얼굴이다. 늘 아쉬워하고 그리워하면서도 좀처럼 잡히지 않는 희뿌연 윤곽이다. 나를 닮은듯해서, 잡히지 않는 것을 찾고 있는 나를 닮은 듯해서…


지갑을 열었다. 돈 없다. 하긴 없는 게 돈뿐이랴. 나를 증명해주는 신분증이 눈에 띈다.

고놈 참, 뭐라 할 말이 없다. 왠지 안타까운 마음이 스쳐 지나간다.

30에 “而立” 이라시던 공 선생님의 말이 들어온다. 변명한다면 성인도 서른에 섰으니 저 같은 범부야 마흔에나 서야 되지 않겠습니까? 안 통하겠죠.


조금씩 익숙해져 가는 나이 들어감과 일상들. 어느 때 학교를 다니고 어느 시기에 직장을 다니고 그리고 또 결혼을 하고 … 이것 저것 새롭게 매겨진 시간표들이 내 신분증 안에서 돌아간다. 그것이 내 신분을 보장하고 신용카드 발급 자격을 주겠지. 그런 거지.


이 시간표를 따라가지 못하면 어떻게 될까?


신용카드를 못 쓰게 되겠지. 그리고 누구 말마 따라 바닥을 친 인생, 정확히 말하면 바닥을 치기만 하는 인생이 되겠지. 틀에 박힌 인생을 싫어하면서도 그 틀 안에 갇히지 않으면 늘 불안해하는 모습. 스스로를 속이는 것만이 가장 효과적이며 합리적인 선택 일지도 모르겠다. 홀로 선다는 것은 참 무섭고도 두려운 일이다. 그런 만큼 누군가가 그리워지는 것 같다. 기대고 싶어서, 힘들 때 맘 놓고 이야기할 수 있는 상대를 그리워하는 것 같다. 답을 찾을 생각은 없었으니 싱거운 자답을 던진다.


별 달리 방법이 있는 것은 아니다. 그냥 열심히 사는 거지, 뭐.


무슨 사연인지 전철 안에서 눈물 흘리면 휴대전화에 매달리는 사람을 보았다. 눈물을 훔치고 콧물도 훔치고. 그러면서도 주위 사람들 눈치 보느라 제대로 울지도 못하는 그이가 안타까웠다. 왜 그런지 몰라도 어깨에 손을 얹어주고 싶었다. 힘내라고 툭 쳐주고도 싶었다. 저이가 만약 혼자만 있을 수 있는 곳에 있었다면 어떻게 행동했을까? 소리를 지르고 컥컥 숨 막히는 소리를 내며 울었을까? 아님 지금처럼 그렇게 혼자 있는 방안에 혼자서 조용히 눈물을 찍어내고 있었을까. 그게 더 서러울 것 같다. 뭐가 무서워서 제대로 울지도 못하고 그렇게 눈물 찍어낼까.


재미있는 지하철 풍경은 늘 그렇듯이 상반된 이야기가 동시에 전개되는 곳이다. 연인끼리 콧소리 썩어가며


자아 기야아~

를 아무렇지 않게 키득거리는 커플이 있는가 하면 이렇게 눈물이 콧물이 뒤 석이는 광경도 벌어지니 말이다. 오늘은 내가 울고 싶었는데. 왠지 모르게 답답해서 내가 울고 싶었는데 다른 사람이 벌써 울고 있었다. 그 사람에게 누군가 의지처가 되어주고 따뜻하게 다독여 주는, 그런 사람이 있길 바란다.


날이 차다. 여전히 차다. 꼭꼭 창문을 걸어 잠근다. 커튼도 쳐둔다. 그리곤 오늘 밤 내가 나만의 공간을 만들고 조용히 울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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